씀 어플 키워드 '기차역'





 나는 피아를 구분할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줄곧 죽음을 생각했다. 아직 죽음이라는 단어조차 알지 못했는 어린애 시절부터 계속해서. 어느날 아름드리 큰 나무에서 제일 굵게 뻗어나온 가지에 목을 매달아 죽은 이모의 파리한 시신을 마주했을 때, 그때까지 어렴풋하던 나의 소망은 뚜렷한 방향성을 갖게 되었다. 아, 저게 바로 죽음이구나. 내가 은밀히 숨겨왔던 나의 오래된 바람.

 나는 대체 왜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이런 삶 따위 전혀 원하지 않았는데. 외관상으로나마 귀한 댁 아가씨인 나를 어미 잡아먹고 태어난 년이라고 대놓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나는 때로 사용인들에게서, 무생물에서조차 내게 향하는 질책의 시선을 느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나이를 먹고 이모부가 주최하는 낭독회의 주연이 된 후에  갈망은 더욱 강렬해져만 갔다. 입으로는 남녀간의 뜨거운 정사를 생생하게 연기하면서도 내 내면은 항상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선별된 음서들의 그 어떤 격렬한 묘사도 나를 근본적으로 달아오르게 하지는 못했다. 이모부는 어쩌다 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시체처럼 차갑다고 표현했다.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차갑게 식어있었으니까. 이모부가 처조카인 나와 혼인할 생각이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자연스레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어느정도 나이가 찬 후에도 이모부는 나를 자신의 처로 맞이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이렇게 물새처럼 찬 손발을 가진 여자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모부는 내 서늘한 체온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모도, 나처럼 몸이 차가웠던가? 이모도 나처럼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며 몸도 마음도 추운 겨울을 살고 있었을까.

 아마 나는 그 해 안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이모처럼 목을 매든, 면도칼로 동맥을 끊든 이 지긋지긋한 생에서 탈출하고 말았을 것이었다. 만약 백작과 타마코- 숙희가 내 삶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이모부의 손님으로 내가 음란한 구절을 읽고 때로는 직접 시연하는 것을 지켜본 남자가 과연 나를 온전히 자유롭게 해줄 수 있을지, 뭔가 함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의 유혹은 그럴 듯했지만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그의 제안 중 나를 매료시킨 것은 자유로운 미래도, 더이상 음서를 읽을 필요 없다는 것도 아니었다. 마시면 이모부의 지하실로 끌려갈 염려 없이 죽을 수 있다던 극약이 담긴 작은 병이 그것이었다. 나는 백작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타마코를 만났다. 타마코, 아니…… 나의 숙희.

 새앙쥐처럼 어리고 날랜 계집아이였다. 쉽게 속일 수 있게 어리숙한 애로 데려다달랬더니, 고 자그마한 머리통으로는 제 스스로 제법 똘똘하다고 생각하는건지 날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로 여기는 것이 빤하게 보였다. 착각하는 게 귀여워서 멋대로 내버려뒀더니 도둑의 딸 아니랄까봐 어느순간 내 마음까지 가져가버렸다. 숙희에게는 내게 결여된 생기가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누구나 가지고 있을 생기, 하지만 내게는 결핍되어 있는 그것을 그 애는 차고 넘치도록 발산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껏 유령같이 살아온 내게 그 애는 더없이 매력적으로 비쳤다.

 처음에는 분명 내 명의로 평생 본토의 정신병원에 처박아두려고 했던 하녀 계집애는 아주 훌륭하게 내 인생을 망쳤다. 내가 그토록 파괴하기를 원하고 또 소원했던 내 일그러진 삶을 그 애는 단숨에 망가뜨렸고, 지옥같은 밑바닥에 있던 내게 손을 뻗어 나를 지상으로 끌어올렸다.


 아가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자, 표 사왔어요.


 반들반들 반짝이는 눈동자가 보석처럼 예뻤다. 백작은 그 애가 물욕이 많으니 장신구들을 슬쩍슬쩍 보여주라고 했지만, 내가 지니고 있었던 어떤 보석보다도 더 빛나는 것은 나를 바라볼 때 그 애의 눈빛이었다. 슬쩍 물어봤더니 이제까지 제가 입히고 씻긴 것 중 나처럼 예쁜 게 없었다나. 정말이지 맹랑하기가 그지 없었다. 그러니까 널 사랑하게 된 거겠지만.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자그마한 손바닥에 기차표가 두 장 놓여있었다. 기차를 타고 이 기차역을 떠나는 순간 나는 자유의 몸이 된다. 더이상 공포스러운 지하실에 끌려갈 염려도, 매번 그 구성이 바뀌는 한 무리의 신사들 앞에서 음란한 소설을 읽을 필요도, 나이든 이모부와 혼인할 필요도 없는.


 그럼 우리 같이 탈래? 숙희야.


 기차표를 내밀고 있던 숙희의 손을 감싸쥐자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서늘한 나와 대조적으로 숙희의 손발은 항상 따뜻했다. 내게 자신의 온기를 나눠주기라도 하듯, 그 애도 내 손을 마주 잡았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나의 하녀. 연옥에서 함께 탈출한 나만의 베아트리체.

 나는 더이상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삶을 원했다. 숙희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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