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멸자여, 넌 아름다워."



 이계의 신이 속살거리듯 그 혀와 입술로 내뱉는 언어는 그야말로 뱀과 같았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신은 영락없이 한 마리 뱀을 닮아있었다. 그것도 매우 치명적인 독기를 품은 녹색의 독사. 쉿쉿거리는 듯한 유혹적인 목소리와 교활한 빛을 띠고있는 총기 어린 눈동자. 이브에게 선악과를 베어무는 죄를 저지르길 종용했다던 파충류는 아마도 이 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겠지. 이 어찌 모순이 아니란 말인가. 스스로 인간보다 우월하고 고귀한 신이라고 칭하면서도 그는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없이 독살스럽고, 또 우아하다. 차라리 광야 한복판에서 마주친 악마라면 모를까. 핥는 듯한 시선이 끈적하고 서늘하게 나타샤의 피부에 들러붙었다. 시선으로 범해질 수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얼핏 드러난 맨살마다 성적인 함의가 짙게 배인 시선이 집요하게 엄습해왔다.



 "미안, 내가 외계 생명체의 생리에는 좀 지식이 부족해서. 그쪽 동네에선 신에게도 발정기가 있다는 설정이었던가?"


 "오, 지구의 관용구 중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는 표현이 있다더니 그게 바로 그대를 뜻하는 거였나 보군. 로마노프 요원."

 


 로키가 달큰하게 지껄였다. 길쭉한 눈매가 보란듯이 유연하게 휘어지는 모습은 제법 아름다웠다. 성적인 긴장감이 마치 대기를 타고 흐르는 것처럼 팽팽하게 느껴졌다. 



 "그대는 붉게 피어난 장미처럼 아름답고, 고혹적이며 또 그에 걸맞는 가시를 품고 있지."


 "고전 문학같이 장황한 네 서설은 그 정도면 됐고.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로키."


 "네게 은혜를 내리겠다."


 "……뭐?"



 뭔가 핀트가 엇나간 문장이 끼어든 듯한 느낌에 그녀가 저도 모르게 반문했으나 로키는 나타샤의 반응을 신경쓰지 않고 유유히 제 할말을 이어나갔다.



 "비록 우리같은 아스가르드 인에게 너희 미드가르드 인들은 염소와 비슷한 수준의 저급하고 하등한 생명체일 뿐이지만, 그 중에서 그나마 우수한 개체인 듯한 네겐 특별히 시혜를 베풀지. 고귀한 신인 이 몸과 육체적으로 교합할 기회를 주겠다."


 "그러니까-, 너랑 떡이라도 치게 해주겠다고?"


 "이런, 이런. 독거미같은 혀를 가진 여인이여. 그렇게 저속한 표현을 택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 미드가르드 여인들 중 아무도 겪어보지 못했을, 살아있는 신과 동침할 수 있는 영광을 네게 친히 베풀어 주지."



 나타샤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로키를 가라앉은 녹색 눈동자로 한동안 말없이 응시했다.


 

 "뭐지? 혹시라도 내 제안에 너무 감격에 겨워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건가. 북받쳐오르는 기분에 당장 내 가슴에 뛰어들고 싶어진다면 말리지는 않겠다만-"


 "로키."


 "드디어 본인의 감회를 그 매력적인 목소리로 표현할 생각이 들었나, 로마노프 요원?"


 "엿이나 먹어, 사슴뿔 외계인. 떡치자는 소리를 잘도 돌려서 하는군. 자의식과잉도 어느 정도지……"



 어릴 때부터 전문적인 암살자로 키워진 나타샤가 제일 먼저 배운 것은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기술이었다. 환희, 고통, 분노, 그 어떤 감정이든 간에. 그 다년간의 교육과 실제 현장에서 수년간 겪으면서 다듬어진 -물론 지금은 전향한 몸이지만- 노련한 베테랑인 그녀가 대놓고 스스로의 감정을 드러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아기사슴은 칭찬받을 만 했다. 물론 정작 나는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지만. 연속발사되는 기관총처럼 하고 싶은 말을 내뱉은 이후엔 가운데손가락을 들어 은하 저 편에서 온 신에게 보여주는 제스처 역시 잊지 않았다. 로키가 과연 그녀의 행위가 의미하는 것을 알고 있는지, 그로 인해 모욕감이나 불쾌감을 느낄지는 미지수였으나 어쨌든 아주 조금이나마 속은 시원했다. 그녀로서는 간만에 느끼는 유치한 감정이었다.



 "잠깐, 필멸자여. 지금 네가 오른손으로 취해보인 모양새가 정확히 어떠한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째서인지 영문 모를 모멸감이 드는군. 지금 설마 거절의 의사를 표명한 건가?"


 "응. 거절한 것도 맞고 욕한 것도 맞아, 밤비 씨. 아무리 장난의 신이라고 해도 지구에서는 그런 장난을 함부로 치면 따귀 맞으니까 앞으로 숙지해 두고."



 일그러지기 시작한 로키의 흰 낯짝을 인식하며 그녀는 상냥한 몽구스처럼 웃어보였다.



 "음, 그리고 데미갓께서 지구의 종교에 대해 얼마나 풍부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성서란 경전이 있거든? 아주 잠깐이지만 널 보면서 거기 나오는 뱀을 생각했었지. 최초의 여자를 유혹해서 죄를 짓게 만든 뱀인데,  지금처럼 굴어서는 인간 여자는커녕 암컷 뱀 한 마리도 못 꼬셔."


 "이 계집이 뭐, 뭐라…? 암뱀…?!"


 "아스가르드에선 어땠는지 몰라도 상대가 거절했다고해서 바로 폭언으로 이어지는 것도 지구에선 안 돼."


 

 눈앞의 데미갓은 헐크에게 두어번 패대기쳐진 것처럼 있는대로 구겨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가 질척질척하게 들러붙거나 파충류처럼 요사하게 구는 것보다 이렇게 반응하는 모습이 그녀로서는 더 취향이었다. 그의 사슴처럼 예민하고 가느다란 신경줄에 맹세코, 로키에게는 평생 밝히지 못할 이야기겠지만은.

 





-
단문은 어떻게 끝마쳐야 잘 끝냈단 소리를 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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