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자르고 재업.
나름 그린델도어 쉬퍼들 간의 뇌트워크같았던 피아노 치는 겔 보고싶어서 썼던 글. ㅅㅒ헌 대사 인용o





 알버스의 모친은 머글 태생의 마녀였고 그렇기에 머글들의 악기에도 조예가 깊었다. 켄드라가 생전에 제일 잘 다루었던 것은 피아노였고, 그녀의 사망 이후에도 그녀가 쓰던 피아노는 뽀얗게 먼지가 쌓인 채 계속해서 집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정작 알버스 본인은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도, 돌아가신 후에도 그 악기를 다루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지만. 아마 겔러트가 방문 도중 우연히 피아노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평생 그 뚜껑은 다시 열릴 일 없었을 것이다. 남은 세 남매 중 그 누구도 이 건반악기를 다룰 줄 몰랐으니까.

 "피아노가 있었네? 알버스 너도 피아노 칠 줄 알아?"
 "아니, 나는 못 쳐. 저건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쓰셨던 거야."
 "오, 혹시 내가 한번 쳐봐도 돼?"
 "……너 피아노도 칠 줄 알았어?"

 피아노는 머글들의 악기인데. 자신이야 머글 태생 어머니를 둔 혼혈이라서 잘 알고 있다지만 보통의 마법사들은 그 존재 자체도 모르는 게 정상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름을 아는 걸 넘어서 직접 다룰 수도 있다고? 조금 놀란 알버스를 뒤로 하고 겔러트가 피아노로 다가갔다. 먼지 쌓인 뚜껑을 열고 희고 검은 건반 서너개를 느릿느릿 누르는 풍경을 알버스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도, 레, 미. 한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는데도 그 소리는 여전히 맑고 청아했다.
 그동안 관리 잘 했나 봐, 따로 조율할 필요는 없겠네. 뒤돌아보며 저를 향해 씩 웃는 얼굴이 해사했다. 의자를 가까이 당겨앉은 후 본격적으로 건반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자세를 잡는 일련의 준비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이윽고 손끝에서 연주되기 시작한 멜로디는 유쾌하고 명랑했다. 연주 자체보다 피아노 건반 위를 춤추듯 오가는 길쭉하고 우아한 손가락에 더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겔러트 그린델왈드가 건반악기를 다루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의 상상 이상으로. 3분 가량 지속된 연주 동안 알버스는 넋을 잃고 겔러트의 연주에 집중했다. 마지막 음이 멈춘 순간에야 열일곱 소년은 찰나의 백일몽에서 벗어났다.

 "──어때?"
 "아름다운 곡이네. 제목이 뭐야?"
 "'An der schönen blauen Donau'. 어릴 때 도나우 강을 자주 봤거든. 그래서 더 좋아하는 곡이야."

 도나우 강. 낯설면서도 익숙한 지명이었다. 정작 한번도 그 실제 풍경을 본 적은 없었으니까. 새삼 눈앞의 소년이 바다를 건너온 외국 출신이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알버스는 가장이 되었고 발이 묶여버렸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계획했던대로 도지와 함께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그는 날개꺾인 새처럼 고드릭 골짜기에 매였으나 세계는 매혹적인 또래 소년의 모습으로 알버스에게 나타났고 또 다가왔다. 여행과 너와의 만남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당연히 너를 택할거야, 겔러트. 네가 바로 나의 세계니까. 17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만나게 된.
 그날 이후로 겔러트의 방문 때마다 그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미리 배워둘걸, 배워두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만약 나도 피아노를 다룰 줄 알았다면 너와 대화할 소재가 더 늘어났을텐데. 그리고 어쩌면 같이 연주할 수도 있었을테고─

 "나는 연주할 때 지나치게 감정을 담는 경향이 있어."
 "음, 원래 그게 정상인 거 아냐?"

 어느날 연주를 갑작스레 멈추고 겔러트가 꺼낸 말에 알버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딱히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었지만 원래 악기연주엔 어느정도 연주자의 감정이 표현되어야 하는 것 아니었던가? 그 순간 겔러트의 낯 위로 짓궃은 장난기가 스쳐지나갔다.

 "그럼 알버스 네가 날 위해서 직접 연주해줄래?"
 "내가……? 하지만 난 전혀 모르는데…"
 "걱정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

 도와준다니, 가르쳐주기라도 한다는걸까 내심 설렌 알버스의 몸이 갑작스레 번쩍 들어올려졌다. 어? 당황할 새도 없이 공중에 들려진 몸이 다시 내려앉았다. 연이어 울려퍼지는 요란한 불협화음에 제가 겔러트에 의해 피아노 건반 위에 앉혀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다.

 "게, 겔러트……?"
 "도와준다고 했잖아."

 생긋 웃어보이는 얼굴에 순간 둔부와 허벅지에 배기는 건반의 불편한 감촉마저 잊혀졌다. 아니, 이렇게 사람을 건반 위에 앉혀놓고 무슨 연주를 하라고… 난처하게 눈동자만 굴리던 알버스의 뺨에 서늘한 체온이 와닿았다. 응? 불안하게 올려다보는 와중 겔러트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양 무릎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나만 믿어, 속삭이는 입술 모양새에 정신이 팔려있자니 자연스레 옷 틈새로 손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번에는 당연히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중략)


* * *
 "고장은 안났네."
 "만약 고장났으면 애버포스가 가만히 안 있었을 거야…"
 "그럼 내가 널 지켜줬을 텐데, 뭐. 네 형이기 전에 내 사랑하는 잉글리시 로즈라고. …참, 아까 네 연주 잘 들었어?"
 "아, 그런 말 하지 마……!"

 정말 다행히도 피아노는 고장나지않았다. 만약 어딘가 망가지기라도 했다면 정말이지, 동생 볼 낯이 없었을텐데. 겔러트의 농에 귀끝을 붉히다가도 새삼 가족이 쓰던 물건 위에서 무슨 짓을 했던건가 싶어 알버스의 얼굴이 도로 창백해졌다. 겔러트가 아니었다면 그런 짓 따위 절대 하지 않았을텐데, 겔러트와 같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느슨해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것이 그에게 빠져버린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지만.
 항상 책임과 의무감에 짓눌려 살던 알버스에게 있어 겔러트 그린델왈드는 일종의 일탈이며 해방과도 같았다. 겔러트와 있으면 더이상 착한 아이이자 장남으로 남아있을 필요도, 모범이 되는 우등생으로 남아있을 필요도 없었으니까. 호그와트 입학 전부터 멍에와도 같은 압박감에 매여있던 소년에게는 생전 처음으로 맛보는 자유의 카타르시스였다. 그렇기에 알버스는 불꽃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상대에게 정신없이 빠져들었고 목을 맸다. 하루종일 대화를 나누고 토론을 해도, 마주보고 있어도 온전히 가라앉지 않는 갈증이었다. 그와 함께하며 자유를 느끼면서도 제게 있어 자유의 상징과도 같은 그가 어디론가 떠나버릴까 늘 두려웠다. 널 내 옆에 붙잡아두고싶어. 겔러트. 내가 원하는 만큼의 절반이라도 너 역시 날 원하고 있다면 좋을텐데──

 "알버스, 우리 대고모님 집에 하프시코드 있어. 알지? 피아노랑 비슷한 건데. 오늘 저녁식사 같이하러 안 올래?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가르쳐줄게."

 알버스의 인생을 뒤흔들어놓은 아름다운 구원자가 미소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설령 네가 이끄는 종착점이 파멸 뿐일지라도 나는 기꺼이 너를 따라갈거야. 알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겔러트의 손을 마주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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