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버포스는 처음부터 겔러트 그린델왈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불길한 예지와도 같은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화려한 금발과 흠 잡을 데 없는 미끈한 이목구비, 희미한 동유럽 악센트가 섞여있지만 유창한 발음마저 꺼림칙하게만 느껴졌기에. 마치 산행 도중 발견한 독화같은 유해한 존재. 그렇기에 그는 형이 새로 사귄 친구를 결코 기꺼워할 수 없었다. 그래, 둘이 정말 친구인줄 알았던 때도 있었지. 죽자사자 하루종일 붙어다니면서 자기들끼리 꺄르르 깔깔 좋아죽을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단순한 형의 '친구'라고 생각했을 때도 좋아할 수가 없는 인간이었는데, 무려 형의 애인이라고 하니 오백삼십배 정도는 더 싫어졌다.
 그가 두 사람간의 관계를 알게 된 것도 우연에 가까웠다. 점심 먹으라고 아무리 불러도 안 내려오길래 짜증나서 침실까지 올라가봤더니 딱 들러붙어서 당장이라도 키스할 것처럼 꼴값을 떨고있었다. 대체 그 인간 무릎엔 왜 올라가 앉아있는데? 아리아나도 열한살 이후로는 내 무릎 위에 안 앉아! 자신을 발견하고나서 놀란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형이 수줍지만 뭔가 각오한 듯한 표정으로 -멀린의 수염에 맹세코, 오, 맙소사. 그 멍청이가 된 듯한 얼굴이라니- 사실 우리 사귀고 있어 어쩌고 떠드는 순간 스스로에게 기억력 수정 마법을 걸고만 싶었다. 그 와중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형의 어깨에 턱을 괴고있던 그 자식의 태도는 더 열받았고. 시발, 네 애인이기 전에 십여년 넘게 우리 형이었거든? 책에만 파묻혀살던 형에게 드디어 첫사랑이 생긴 건 혈육으로서 축하할만한 일이었으나 왜 하필 저 생긴 것만 번지르르한 자식인데? 둘 사이가 까발려진 후에는 아주 대놓고 보란듯이 집안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도 짜증났고, 처남이니 뭐니 몸서리쳐지는 호칭으로 자신을 부를 때마다 정말이지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 자식이 아주 우리집에서 살다시피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형."
 "왜?"
 "아 제발, 식탁에서라도 그 손 좀 놓으면 안 돼……?"

 환장하겠네. 하루종일 붙어다니면서 뭐가 그리 절절해서 밥 처먹을 때도 손 붙잡고 먹냐고. 알버스의 왼손을 깍지 낀 채 쥐고 저는 능숙하게 왼손으로 스푼질을 하던 겔러트가 힐끗 고개를 들었다. 내가 너한테 말 걸었냐, 왜 우리 형이 아니라 네가 대꾸해?

 "우리가 이러고 있다고해서 처남에게 방해라도 되는 게 있어?"
 "그놈의 처남 소리는…… 됐다. 네 마음대로 하십쇼."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말을 말아야지. 그나마 밥상머리에서 서로 안 먹여주는 게 어디냐고 애버포스는 자신을 위로했다. 그러면 정말로 포크라도 던져버리고 싶을 테니까. 하지만 본능적으로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천재에 장남이라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고 펜대만 잡으면서 곱게 큰 형이 가사에 젬병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가장이 되었다지만 하루아침에 가사에 능숙해질리는 없는 일이었고, 자연스럽게 요리는 애버포스의 몫으로 넘어왔다. 한마디로 저 자식이 지금 나한테 저러면서 처먹고 있는 음식도 다 내가 만든 거라 이거야. 생각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현관 밖으로 쫓아내고 싶었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에 그는 너무도 선량했다.
 어쨌든 그의 하나뿐이고 영리하며 천재적인 형이 바다를 건너온 금발미남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만큼 푹 빠져있다는 것은 겉보기에도 매우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애버포스는 형의 첫 연애에 대놓고 찬물을 들이붓기에는 마음이 약했다. 아무리 열받고 복장이 뒤틀려도, 어쨌든 하나뿐인 친형이었고 그는 형을 나름대로 사랑했으니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러다가 둘이 깨져버리길 바란 마음도 없지않아 있었다. 몇년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꿈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둘의 사랑놀음을 참아주는 것도 어쨌든 그에게는 큰 피해가 오지 않는다는 것 하에 참고 있는 것 뿐이었는데.

 "처남, 언제까지 그렇게 염소들하고만 놀 거야?"
 "…그쪽이 내 부모라도 돼?"
 "오. 너무 배배 꼬인 거 아냐? 난 처남을 진심으로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이제 졸업도 했는데 언제까지 네 형에게만 의존해서 살려고 하는거야. 설마 알버스가 널 평생 뒤치다꺼리해주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아 참, 그리고 전부터 편하게 매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실컷 잔소리해놓고 유들유들하게 한마디를 덧붙이는 태도가 더할 나위 없이 얄미웠다. 생각같아서는 고약한 저주라도 등짝에 쏴버리고 싶었으나 눈앞의 상대가 형과 비슷한 수준의 천재라는 걸 알기에 화만 삭힐 뿐이었다. 게다가 알버스는 그 뛰어난 지능이 무색하게도 겔러트가 관련된 일에는 조금, 아니 많이 무뎌지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대놓고 앞에서 으르렁거리지 않는다고 우리가 사이 좋아진 줄 알다니! 의외의 면에서 순진한 면모가 있는 형의 환상을 지켜주기 위해 그 앞에서만은 착하고 그 애인과도 잘 지내는 동생인 척 노력하고있다만.
 어쨌든 겔러트의 갖잖은 훈계가 나름 그에게 동인으로서 작용한 것도 사실이었다. 정확히는 꼴보기 싫은 얼굴을 더이상 보지 않기 위해서였기도 했다. 그래, 진작 내가 분가해서 나갔어야 했어! 왜 저 꼬락서니를 보면서 계속 고통받고 있었지! 결국 약 반년에서 일년간의 과정을 거쳐 애버포스는 자신의 가게를 개업했다. 형의 직장 근처에 있던 빈 가게를 인수해서 연 주점이었다. 아무리 형의 연애사가 꼴보기 싫어 선택한 길이었다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우리 학교 근처로 해줘, 그래야 내가 자주 들리지 하고 웃는 형의 얼굴을 매정하게 무시하기에 그는 너무나 선한 인물이었으니까. 드디어 가게의 주인으로서 영업하게 된 첫날, 이유모를 설렘에 가슴이 뛰었다. 이제 온전히 스스로의 경제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뿌듯함도 있었으나 형과 형 애인의 연애질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 제일 컸다. 하하, 망할 놈의 커퀴들 때문에 고통받았던 나날도 이제 끝이다! 아무 생각없이 문을 열었다가 그대로 눈감고 돌아나와야 했던 과거의 나날들을 생각하니 새삼 울화가 치밀었다. 이제 둘이 뭘 하던 내가 알게 뭐람. 이제 나와 내 시각은 자유야. 그렇게 생각했었다, 분명히.

 "애버포스, 개업 축하해."
 "우리가 첫 손님인가봐?"
 "형……? 무슨 일이야, 여기까지."
 "우리 친애하는 처남이 가게를 열었다는데 어떻게 안 찾아올 수가 있겠어!"

 악. 순간 없던 편두통이 날카롭게 엄습했다. 역시 형 직장 근처에 개업한 게 실수였나…! 저 꼴들 보기 싫어서 내 가게로 피신한건데 가게 문 열자마자 나타나다니. 형의 어깨를 감싸듯 팔을 두르고 있던 뻔뻔한 얼굴의 금발미남이 어두침침한 가게 내부를 쓱 둘러보았다.

 "너무 어둡네. 전반적인 분위기도 어째…… 학생들이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은 아닌걸? 대체 수요층을 누구로 잡은 거야?"
 "넌 신경 꺼."
 "애버포스─ 난 네가 겔러트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 정말…… 그래, 내가 미안해. 이제 됐지? 왔으니까 주문이나 해. 계산은 따로 필요 없어."

 앓느니 죽어야지. 잠자코 파이어위스키 두 잔을 따르며 그는 골이 땡겨오는 것을 느꼈다. 축하해주러 왔다더니 너댓 시간동안 신나게 평소 하던 그대로 연애질만 하다가 '앞으로 너희 형하고 자주 들릴게' 어쩌고하며 보란듯이 형을 제 옆구리에 끼고 나가버린 잘생긴 얼굴을 떠올리자 위까지 아파왔다. 아니, 넌 절대 오지 마. 앞으로도 제발. 가능하면 영원히. 두 사람이 앉았었던 테이블을 정리하며 애버포스는 진심으로 소원했다. 가게 앞에 멧돼지 머리통 간판이 아니라 저 인간 머리를 걸어놓고 싶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항상 그랬듯이 그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형과 형의 애인, 두 인간들이 매상을 올려주겠다는 명목으로 거의 매일 들이닥치다시피했으니까! 게다가 핑계만 그랬지 항상 칼같은 2인분만 시키고 서너시간, 길게는 대여섯 시간까지 한 자리에 죽치고 앉아서 보는 사람 혈당치가 저절로 올라갈 정도로 사랑놀음을 해댔다. 아무래도 자신의 가게를 자기네 데이트 장소로 정한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바로 코앞에서 하하호호 명랑쾌활 대잔치를 벌이며 아주 신이 나셨다. 한참 사랑의 밀어라도 속삭이는지, 겔러트에게 뭐라 귓속말을 하며 생글생글 웃고있던 알버스에게 그는 초췌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형…… 정말 나는 괜찮으니까, 일부러 여기까지 들릴 필요는 없어……"
 "어떻게 우리가 다른 델 가겠어? 처남 가겐데!"

 아, 이 새끼는 또 지가 나서서 끼어들어. 우리 형도 입 있거든? 저도 모르게 말투가 뾰족해졌다.

 "됐고, 넌 앞으로 오지 마."
 "이런, 너희 둘 설마 아직까지 사이가 안 좋은 거야?"

 안 좋기만 할까? 내가 일방적으로 싫어하는 거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큰 착각을 하고있는 듯한 형을 내버려두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첫사랑은 원래 안 이루어지는 법이라는데 이 인간들은 왜 이렇게 징하게 오래 가는 거야. 좀 깨져라.
 호그스 해드는 원래 큰 수입을 기대하고 연 가게는 아니었다. 사실 지긋지긋한 형네 커플에게서 탈출하려는 목적이 더 컸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그렇기에 오픈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의 가게가 학생들로부터 꺼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근 상인으로부터 전해들었을 때는 다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왜죠? 역시 어린애들이 보기엔 너무 칙칙한가……"
 "그게 아닐세. 자네 가게에 매일같이 교수들이 드나든다고해서 학생들이 오고싶지 않아해. 자네라면 쉬러 온 자리에서 교수와 만나고 싶겠나?"

 하여튼 정말이지 그의 인생에 있어 손톱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들이었다. 하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형은 뛰어난 재능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호그와트의 교수로 임용되었고, 현재 변신술 과목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 잘난 애인께서도 쫄랑쫄랑 형을 따라 교수를 해먹고 있는 모양이셨고. 학교 졸업장도 없다던 주제에 어떻게 교수직을 꿰차는 게 가능한지는 미스터리였으나, 어쨌든 요지는 둘다 버젓한 교수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같이 내 가게에서 죽치고 있기도 하지. 수업준비는 대체 언제 하는거야? 아무리 대단한 매출을 기대하고 가게를 연 게 아니었다고해도 슬슬 스팀이 올라왔다. 그의 정신건강과 시력에 크나큰 상해를 입히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 손님까지 쫓아내고 있단 말이지. 애버포스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한달 넘게 참아줬으면 꽤 많이 참았다.

 "형, 미안한데 이제 내 가게에 당분간 들리지 말아줬으면 해. 형하고 형 애인이 매일 버티고 있는 바람에 학생들이 여기 안 오잖아."
 "이런…… 이제껏 그건 생각 못 했네. 정말 미안해, 애버포스."
 "그럼 할 수 없지, 딴데 가야겠네. 마침 알버스 네가 좋아할 만한 디저트 가게를 알아놨는데. 처남, 그동안 신세 많이 졌어."
 "오. 애버포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네. 어딘데?"

 미안한 사람치고는 너무 태세가 빠르지 않아? 겔러트와 팔짱을 낀 채 일어서는 형의 뒷모습을 배웅하며 그는 간절하게 바랬다. 이제 제발 다시는 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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