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영 안차는 ㄱㄹㄷㄷㅇ 단문 혹은 더이상 안쓸 거 같은 짧은 미완글들
첫 사랑니가 나기 시작했다.
여동생의 장례식이 끝난 후, 첫사랑이었던 소년이 떠나버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었다. 그 통에 아랫쪽 잇몸이 온통 부어오르고 시큰거리며 아팠다. 사랑니가 올라오는 것이 원래 이렇게 아픈 것이었던가? 며칠 참아보았지만 통증은 더 심해져만 갔다. 필연적으로 음식물을 씹어야하는 식사 때는 당연하고 살짝 스치기만 해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프기 시작했다. 꼭 널 닮았네, 이렇게까지 지독한 걸 보면. 소년은 이미 떠올리는 것 자체가 고통인 첫사랑의 얼굴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아픔을 반추동물처럼 짓씹었다. 오직 하나밖에 남지않은 가족인 남동생은 장례식 이후로 자신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싫어했기에,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할 수조차 없어 홀로 앓기만 했다. 알버스가 결국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일주일도 더 지나서의 일이었다.
심각하네. 굉장히 아팠을 것 같은데 이제까지 어떻게 버텼던 거니? 당장이라도 뽑아야 하겠어. 유명한 마법사 병원에서 치료사로 근무했다던 중년의 마녀가 입안을 들여다보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인맥이 풍부한 백셧 여사의 소개로 추천받은 마녀였다. 그렇게 심각한가요? 간신히 묻자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니가 나는 것도 나는 건데…… 매복 사랑니구나. 가로로 누워있어. 그런가요. 당장이라도 뽑아야 할 것 같은데 솔직히 많이 아플 것 같구나. 괜찮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잇몸이 있는대로 부어있다보니 혀를 움직여서 말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발치가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지금도 충분히 아파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으므로. 열병 같았던 첫사랑이 속절없이 끝나버리고, 그를 대신하듯 잇몸을 뚫고 올라오기 시작한 사랑니는 모질도록 아팠다. 발치를 위해서 준비되어있는 자리에 누우며 알버스는 생각했다. 만약 이걸 뽑아버리면, 생령처럼 여전히 제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상대에 대한 미련도 같이 사라져버릴까. 발치 과정은 생각보다 길었다. 마취된 상태에서 잇몸이 절개되고, 사랑니가 여러 조각으로 잘려나가고, 그 조각들이 끌어내지는 일련의 과정이 무감각한 상태에서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아마 마취가 풀리고나면 딱 죽고싶을만큼 아프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진짜 고통은 발치가 끝나고 빈 집으로 돌아와 몇시간 흐른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잇몸을 째고 이를 잘라내어 긁어냈으니 안 아플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생각보다 더 심하잖아. 참기 힘든 아픔에 눈꼬리에서 저절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알버스는 여동생의 장례식장에서도, 그가 떠난 것을 알았을 때도 울지 않았었다. 감히 눈물 흘릴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다름아닌 나 때문에 여동생이 죽었고 그는 떠나갔다. 내가 그에게 정신팔리지만 않았어도. 그 때문에 여동생에게 소홀하지만 않았어도. 겔러트가 한없이 위험한 사상을 품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있었다. 우리 마법사들이 힘을 지녔으니 머글들을 지배할 자격이 있다고? 다름아닌 알버스 자신의 모친 역시 머글태생인데 그 논리의 결함을 모를래야 모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를 비판하는 대신 거친 사상을 매끄럽게 다듬어주었고, 그의 태도를 지적하는 대신 그를 위한 캐치프레이즈를 선물해주었다. 한없이 위험한 계획을 부추기고 찬동하는 공범이며 공모자로서. 그는 틀렸다. 더 커다란 선은 한낱 보기 좋은 허울에 불과했다. 뻔히 알면서 눈감고 그를 막지 않았던 대가는 이토록 가혹하게 돌아왔다. 아, 아리아나. 내 가엾은 여동생. 전부 내 잘못이야. 새삼 슬픔이 응어리처럼 북받쳐 오르면서 눈물이 뺨의 궤적을 타고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지금 여동생의 죽음이 슬퍼서, 겔러트가 떠나버린 것이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발치한 후의 통증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사랑니를 뽑고 난 후의 그 상실감과도 같은 허전함 때문에.
길고도 짧았던 여름의 막바지, 강렬했던 첫사랑이 끝났고 무식하게 잇몸을 뚫고 올라오던 첫 사랑니가 뽑혀나갔으며 그와 함께 소년의 열일곱 살 역시 끝났다. 알버스가 열여덟 살 생일을 맞기 전 며칠 전의 일이었다.
트윗쓸땐 괜찮아보였는데 막상 글로 풀어쓰려니 별로 맘에 안들어서 흑흑.. 45년에 겔 때려잡고 나머지 사랑니 다 뺐음 좋겠다
알파는 다른 알파의 알파 페로몬을 느꼈을 때 본능적으로 상대방에게 경쟁심, 혹은 호승심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반응이라고 했다. 다만 양자간 너무나 월등한 격차가 날 때는 당장 턱 밑에 칼이라도 들이밀어진 것 같은 서늘한 공포감과 생명에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고. 오메가가 우성 알파의 묵직한 페로몬을 느꼈을 때 본능적으로 몸과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고자하는 충동을 느끼듯, 우성 알파의 페로몬을 느낀 보통 알파는 당장이라도 싸움에 패배한 짐승처럼 배를 드러내고 상대에게 순종하고자 하는 굴욕감과 싸워야만 했다.
그리고 알버스는 아주 평범한 알파였다. 어설픈 열성도, 압도적인 우성도 아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러트사이클 때는 억제제를 복용하며 넘겼고, 알파 페로몬이 몸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게 항상 잘 갈무리를 했다. 알파는 오메가에게 끌리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라던데 7년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알버스는 단한번도 그러한 성적 끌림을 경험하지 못했다. 아마 또래 집단으로부터 감히 다가가기 어려운 천재, 연애대상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머나먼 절벽 위의 꽃 취급을 받은 것 역시 한몫했을 것이다. 차라리 평범하게 베타였으면 좋았을텐데─ 가끔씩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알버스는 오직 지식과 이성의 상아탑에 틀어박힌 채 학문에만 열중했다. 상장과 트로피, 영광과 명성을 안고 졸업하기까지 쭉. 1899년의 여름, 고드릭 골짜기에서 열여섯 소년을 만나기까지는. 겔러트 그린델왈드는 첫눈에 알아볼 수 있을만큼 매우 강한 알파였다. 분명 저처럼 페로몬을 잘 갈무리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다가가는 순간 헉, 하고 숨을 들이쉴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이 느껴졌다. 꼭 발톱을 숨긴 채 집고양이 시늉을 하는 고양이과 대형 맹수를 연상케하는 위압감이었다. 분명 알파가 다른 알파의 기운을 느끼면 반발심이나 굴종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했었지. 희미한 동유럽 악센트가 섞인 발음으로 제 이름을 소개하며 먼저 악수를 청해오는 소년의 손을 맞잡았을 때 알버스가 느낀 것은 양자 그 어떤 감정도 아니었다. 이유모를 떨림과 고양감이 척추를 전류처럼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닫게 된 것은 두 사람이 절친한 친구가 된 후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지나서였다. 자신은 처음 본 순간부터 상대에게 반해있었다. 두 사람 모두 알파임에도 불구하고.
(중략)
"나, 나는 알파야. 너처럼."
"그게 뭐가 어때서? 너는 날 원하고 나도 네가 필요한걸. 네가 알파든 베타든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오, 알버스. 상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제 이름은 마치 짤막한 시구 같았다. 겔러트는 언제나 노래하듯 혹은 시를 읊듯이 제 이름을 발음하고는 했지만 오늘따라 유독 그렇게 느껴졌다. 길쭉길쭉하게 뻗어있지만 결코 가녀리거나 연약하게 느껴지지 않는 손가락이 턱과 뺨이 이어지는 선을 매만졌다. 나를 사랑하잖아. 응? 상대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나도 네가 필요해. 나른한 목소리가 속살거리듯 귓전을 스쳤다. 고행 중인 수사를 유혹하는 악마와도 같은 달큰함이었다. 순간 코끝을 싸하게 스치는 향내에 알버스는 어깨를 굳혔다. 알파 페로몬. 언제나 그랬듯 겔러트의 알파 페로몬은 청량하고 강렬했다. 분명 같은 알파의 페로몬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생리적인 반응일진대, 이상하리만큼 반발심은 없었다. 아니- 반발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만두라고 해야할지 망설이는 동안 옷깃 사이로 타인의 체온이 스며들어왔다. 어? 놀란 나머지 저도 모르게 상대의 가슴팍을 밀어내버리고 어쩔 줄 몰라하자 그가 씩 웃었다.
"왜, 키스부터 먼저 할까?"
"아, 나는, 저……"
자신도 모르게 혀가 꼬였다. 아무리 저명하고 이름높은 마법사 앞에서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한번도 더듬거린 적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 앞에서만큼은 한없이 서툴러진다. 이렇게 당황해하는 모습 따위는 보여주고싶지 않았는데. 대답을 미처 기다리지 않고 겔러트가 먼저 입술을 포개왔다.
"너 키스 처음이구나, 그렇지?"
내가 네 처음이라니 기쁘네. 마주친 눈동자는 정말로 즐거워보여서 알버스는 눈부신 것을 본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 눈꺼풀을 내리깔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입술이 맞닿았다. 입이 열리고 혀가 엉켰다. 숨이 가빠서 헐떡이자 상대가 작게 웃었다. 방금까지의 팽팽한 긴장감을 잊어버릴만큼 명랑한 웃음소리였다.
(중략)
차라리 내가 오메가였다면, 아니면 베타라도 되었다면 좋았을걸. 그럼 널 붙잡을 수 있었을텐데. 이제껏 단 한번도 제 형질에 대해 불만을 품은 적 없었건만 그를 만난 이후로 알버스는 매번 그 생각을 했다. 간혹 베타와 알파가 본딩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알파와 알파가 맺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단 한번도 듣지 못했다. 지금은 날 원해준다고 해도 이게 그저 한 철의 불장난일 뿐이라면? 언젠가 그가 말했던대로 곧 떠나버린다면? 한번 깃든 두려움은 들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타고난 형질은 결코 바꿀 수 없다. 아무리 대단한 마법으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헛된 소망은 쉽사리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네 아이라도 가질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럼 정말 확실히 붙잡아둘 수 있지 않았을까. 네가 나를 떠나지 말았으면 좋겠어. 겔러트. 무용한 고뇌를 되풀이하며 알버스는 얼굴을 감싸안았다.
알x오 알x베 써봤으니 알x알도 써봐야할 거 같아서.. 라는 의도였는데 떡 쓰기 싫어서 끊어버림 누가 나 대신 써줬으면
팔마시온은 대 마키시온 제국의 귀퉁이에 처박혀있었다. 국내외 왕족과 황족들이 한데 모여 교육받는 제국의 공식 황실교육기관 치고는 다소 초라한 위치였다. 하지만 마차에서 내려 그 웅장함을 마주하는 순간 그가 품고있던 생각은 곧 바뀌었다. 일개 소국의 왕궁보다 훨씬 호사스럽고 화려해보이는 건축물은 오만한 신들을 모시는 신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여기가 내가 몇년간 머물러야할 곳인가, 겔러트는 설원에 선 채 건물들을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마차에서 내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뺨이 에일 정도로 추웠다. 그깟 실험 좀 했다고해서 여기까지 사람을 쫓아내다니 빌어먹을 황실 같으니. 팔마시온의 악명은 높았다. 겉으로는 공식 황실교육기관이라는 번지르르한 타이틀을 달고있지만 실제로는 무법천지라는 곳. 아직 어린 아이들도 가차없이 설원에 내몰고 학생들끼리의 갈등도 전혀 중재하지 않는 철혈의 교육기관. 마치 맹수가 제 새끼를 벼랑 끝에 내몬다는 표현처럼.
"황자님이십니까?"
"그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오세요."
잠시 마노와 황금으로 호화롭게 장식된 정문을 올려보던 와중 칼같은 제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팔마시온의 관리인인가 싶어 빤히 쳐다보자 먼저 깍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손짓했다. 외관에서 느껴졌듯이 팔마시온의 내부 역시 필요이상으로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웠다. 뭔가 복잡한 방식으로 난방을 한다더니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따뜻한 온기가 얼어붙었던 몸을 녹였다. 그러나 그를 안내하는 관리인의 걸음은 숙소일 법한 문들이 늘어서있는 복도를 거침없이 빠르게 지나쳤다.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건지 막연한 의문을 품는 순간 복도의 끝에 다다랐다. 육중한 철문을 밀어젖히자 지하로 내려가는 듯한 어두침침한 계단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하? 뭔가 묻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계단에 발을 디뎠다. 한두 층 정도 내려왔을까, 상대가 낡은 문 앞에 발을 멈췄다.
"앞으로 황자님께서 머무르실 곳입니다."
"……하."
어이가 없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그러니까 이게 망할놈의 황실이 내게 허락한 거처란 말이지. 지하에 위치한 숙소는 좁았다. 철제 책상과 그 옆에 붙은 평범한 침대 2개, 그리고 딸려있는 화장실. 황궁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하인들의 거처만도 못한 방이었다. 위대한 대 마키시온 제국의 혈통을 이은 고귀한 피가 묵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곳이었다. 사람을 쫓아낸 것도 모자라서 이런 굴욕까지 주다니 분노가 치밀었으나 애써 눌러참았다.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관리인은 황실의 눈이고 귀일 것이다. 아마 여기서도 한바탕 날뛰어주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는 법이고, 그럼 그때는 정말로 모가지를 따려 들지도. 겔러트는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관리하며 관리인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나가 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관리인이 가벼운 목례 후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 홀로 남은 실내를 비추는 전등의 빛마저 어두웠다. 애초에 명목은 팔마시온에서 교육받고 오라는 것이긴 했지만, 이것이 일종의 징계이고 경고라는 걸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사고'로 죽어주기라도 하면 노친네들이 제일 좋아하겠지. 겔러트는 신경질적으로 주위를 노려보다말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예상했던만큼 감촉은 딱딱했다. 침대가 맞은편에 하나 더 있는 걸 보니 룸메이트가 하나 더 들어오려나 본데, 과연 이 복마전에서 하필 제 룸메이트가 될 정도라면 얼마나 박복한 신세인지 감도 안 잡혔다. 누가 될 지 모르는 룸메이트와 자신의 신세를 애도하며 겔러트는 그대로 몸을 뒤로 젖혔다.
*
아무리 볼장 다 보고 살아온 인생이래도 문을 열자마자 만년필 끄트머리가 급소를 노리고 날아오면 놀랄 수밖에 없는 법이다. 정확도나 민첩성이 떨어지는 걸 보니 전문 암살자는 아닌 거 같고, 그럼? 아슬아슬하게 만년필을 휘두르는 팔을 피해 물러선 후 겔러트는 가차없이 상대의 팔목을 붙들었다. 팔목이 붙들리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몸부림을 쳐댔다. 반쯤 열린 문 뒤로 이제까지 비어있던 침대 위에 놓인 트렁크가 눈에 들어왔다.
"너구나, 내 룸메이트가. 누군가 했더니."
만년필을 쥔 손목을 낚아채 가까스로 바닥에 찍어누른 후에야 몸부림이 멎었다. 가까이에서 마주본 상대방의 얼굴은 앳되다 못해 어렸다. 열네살? 아니면 열다섯? 그런데 벌써부터 여기 처박히는 신세라니, 그 나이에 꽤나 윗선에게 미움받았던 모양이네. 왜일까, 생긴 건 꽤 귀여운데. 자신과 같은 벽안이지만 색채가 훨씬 옅은 푸른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자신을 똑바로 응시해왔다. 눈빛만 봐서는 호락호락해보이지 않는데, 어떠려나.
"난 너 오늘 처음 보는데. 왜 이래?"
"……"
"말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다음 질문. 어느 나라 출신이야?"
"…베르스."
"아, 그─"
약소국 말이지, 내뱉을 뻔한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베르스라면 현존하는 국가들 중 최하위에 가까울 정도로 국력도 약하고 뒤처지는 나라 아닌가. 웬만한 마키시온 내의 소왕국들보다 더 뒤떨어지는 국가였다. 군사력이든 생산단위든. 명목상으로는 황실교육기관이니 베르스 출신의 왕족이 팔마시온에 있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팔마시온이 학생들을 소속 국가의 국력으로 차별하는 분위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하필 이 초라한 숙소를 자신과 쓰게 된 것 역시 그다지 충격적인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 다짜고짜 만년필을 휘두르려고 한 것은 조금 의외고. 팔마시온 내의 학생들은 국가의 위상이 어떠하든 전원 모두가 왕족 혹은 황족이었으며, 학생들간의 작은 충돌이 국가간의 분쟁으로 불거지는 사태 역시 소소하게나마 존재했다. 비록 황실에 거의 내쳐진 상태긴 하지만 자신 역시 마키시온 제국의 혈통의 소유자였고, 그 고귀한 피에 과하게 집착하는 황실이라면 아무리 내버리다시피한 황족에게 향해진 만년필 끝마저 반기의 뜻으로 해석하고도 남았다. 물론 자신이 황자인 걸 몰랐겠지만 앞으로도 쭉 이렇게 행동한다면 팔마시온에서의 적응은 꽤나 힘들어질 것이다. 겔러트는 힐끗 소년의 손에 아직도 쥐여있는 만년필에 시선을 던졌다. 팔마시온의 물건답게 쓸데없이 화려한 물건이었다. 이게 무기로 쓰일 거라고는 갖다놓은 관리인도 몰랐겠지만.
"다신 나한테 이걸 안 휘두르겠다고 약속하면 놓아줄게."
"…싫다면?"
"글쎄, 어쩔까."
*
"그냥 내 애 둘만 낳아줄래? 너 어차피 돌아갈 곳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가 홱 돌아갔다. 알버스에게 따귀를 맞았다는 것을 자각한 것은 몇 초 지나서의 일이었다. 아, 꽤나 아프군. 청순하게 생겨서 어울리지 않게 손힘은 꽤나 셌다. 모욕감이라도 느꼈는지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자신을 쳐다보는 눈매가 싸늘했다. 곧 부어오를 것 같은 뺨을 매만지며 겔러트는 비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별로 나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날 모욕하지 마."
"그럴 의도 없어. 대제국의 황후 자리를 탐내는 영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너한테 거저 주겠다잖아. 네가 마음에 드니까."
"헛소리야, 어떻게-"
"우리 제국 과학 연구소의 저력을 얕보면 곤란하지."
마키시온의 제국과학연구소, 소드람은 대륙 전체에서 가장 발달된 과학기술을 자랑하고 있었다. 임시적으로 남체에 자궁 하나 달아주는 건 일도 아니지, 그는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있는 소년을 응시하며 씩 웃었다. 순진하고 얌전한 얼굴을 하고 유배지에서도 여전히 야망에 불타는 눈을 한 약소국의 왕족. 처음 본 순간부터 상대가 마음에 들었다. 나만큼 똑똑하고, 나만큼이나 야심이 있고, 나만큼이나 이 팔마시온을 싫어하는 존재.
"그게 싫다면, 도와줄게. 옥중에서 사망한 네 부친의 명예도 복권시켜주고 아프다는 여동생도 제국 최고급 의료진에게 진료받게 해 줄 수 있어."
"……"
"그리고 알버스 넌 베르스의 왕이 되는거지. 어때. 괜찮은 제안 아닌가?"
거절할 수 없을 제안을 했다. 썩어도 준치라는 옛말처럼 이 팔마시온에 처박혀 있어도 그는 여전히 제위 계승권 1위 후보였으며, 잘나고 존귀하신 황제의 아들이었다. 베르스 같은 일개 약소국에 개입해 정치판도를 뒤집어놓는 것은 당장 내일이라도 가능할 수 있을만큼 쉬웠다. 물론 네가 원한다면. 숨기지 못할 만큼 야망과 명예욕이 있는 주제에 가족은 끔찍히도 생각하지. 어차피 끈 떨어진 왕족의 말로는 비참했다. 게다가 천재적이고 영리하다면 더욱 더.
"아. 그러고보니 첫날의 그 소동, 날 암살하면 널 도로 고국에 돌려보내준다고 누가 그랬어?"
"? 어떻게……?"
"다 알게 되는 방법이 있지. 팔마시온에는 벽에도 눈과 귀가 있으니까."
"-그건 미안해."
"미안하면 갚아, 그런 기본 지식쯤은 왕실에서 가르치지 않나?"
왼손을 끌어다쥐고 손끝마다 느릿느릿 입을 맞추자 당황했는지 알버스가 몸을 비틀어 빼려했으나 놓아주지 않았다.
*
"역시 겔러트 네 도움은 필요 없어. 난 베르스로 돌아갈거야. 내 앞길은 내가 개척해."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어."
겔러트는 선선히 물러섰다. 팔마시온의 최우수 학생이자 수석 졸업생. 관례대로 알버스의 초상화는 역대 수석들의 초상화가 걸린 벽에 나란히 걸렸다. 수많은 초상화들 중에서도 가장 앳되고 어린 얼굴이었다.
"그럼 난 이제 어떻게 할까. 세계 일주라도 해볼까? 아니면 황궁으로 돌아가서 생물학적 아버지 모가지나 따고 황제노릇이나 할까?"
이제 드디어 지긋지긋한 팔마시온을 벗어난다. 누군가들의 바람대로 죽지도, 부상을 입지도 않은 채. 다만 자신의 옆에 서있는 상대와 끝까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아, 그때 내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니까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말해."
"내가 싫어!"
정말 싫은지 질색하는 표정이 귀엽게 느껴져 겔러트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에는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날 것처럼 구는 어린 천재의 인간적인 민낯을 본 것은 팔마시온에서 자신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처음 이곳에 도착해 마차에서 내릴 때의 기분을 되새기면 한없이 유쾌했다. 어쩌면 팔마시온에 보내진 것은 행운이었을지도 몰랐다. 널 만날 수 있었으니까.
내가 왜 썼는지도 모르겠다 김ㅊㅓㄹㄱㅗㄴ의 스크트au 간만에 스크트 읽고 마ㄹ넬로x아ㅇ히만 넘 땡겨서 배틀ㅎㅁ삘로 해봤는데 망했읍니다 역시 영알은 겔이 간이든 쓸개든 달라면 빼줄만큼 눈이 멀어있어야지
가상2세 만들어보고 내 애 낳아달라는 드립 치는 겔/따귀 날리는 영알 보고싶어서 au까지 끌어왔는데(원작기반이면.. 낳아달라면 둘이든 셋이든 낳아줄거 같거든.... 가능한가는 둘째치고......) 별로 마음에는 안듬ㅠㅠㅋㅋㅋㅋㅋㅋㅋ 캐붕대잔치에 au로서의 의미도 없어보인다..
나름 뒷설정..은 스크트 원작처럼 알버스는 베르스 돌아가서 재무대신되고 겔은 황제되서 둘이 평생 못만나는 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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