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스마스때도 그렇더니 발ㄹㅔㄴ타인 연성마저 늦을 줄은....^^;;;
원래 이런 기념일 전혀 안챙기는데 매번 연성하게 만드는 두 예쁜이에게 대신 감사의 말씀 전하고싶네요
이쯤되면 CA는 3차창작같고ㅋㅋㅋㅋㅋㅋ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 CA쪽이 마음에 영 안차서 계속 붙들고 있다가 결국 하루 넘겼는데 겔알 짧게나마 급하게 써서 올림..
오늘 발렌타인 데이잖아. 응?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요구해오는 상대의 시선을 알버스는 애써 외면했다. 싫어. 왜 싫은데? 그런 거 싫다고 전부터 말했잖아. 그러니까 왜? 부끄러우니까 그렇지! 알버스 너 설마 내가 부끄러워? 정말로?
"아, 자꾸 이상한 쪽으로 화제 끌고 가지 말랬지! 내가 언제 네가 부끄럽댔어?!"
"그거야 사랑하는 네가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니까…… 오늘은 연인들의 날이래잖아."
"겔러트, 제발 좀!"
결국 소리가 높아졌다. 얘는 대체 어디서 이상한 것만 주워들어와서 이래?!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처럼 겔러트가 제 뒤에 찰싹 들러붙어서 속살거렸다. 화난 거 아니지?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명색이 연인의 날에 그거 하나 정도 못 해줘? 아. 정말. 홱 고개를 돌려 마주한 새파란 눈동자가 순진무구한 척 반짝였다. 얘가 이러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란 걸 뻔하게 알면서 약해지는 나도 글러먹었다고, 알버스는 내심 탄식했다.
"너 진짜 제멋대로야."
"그러니까 네가 날 좋아하지."
반박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게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게 제일 분한 지점이었다. 착실한 모범생으로 궤도 내에만 살아왔던 자신에게 동년배 소년은 곧 자유였고 일탈의 동의어와도 같았으므로. 이번에도 결국 져줄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알버스는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제 옆에 굴러다니던 초콜릿 박스를 집어들었다. 이런 걸 왜 하고 싶다는 거야, 얘는. 바스락거리는 금빛 포장지를 벗기고 내용물을 입에 털어넣자 바로 체온이 낮은 손길이 알버스의 양뺨을 감싸쥐고 끌어당겼다. 입술이 맞닿나 싶더니 바로 열린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장난스레 혀끝으로 치열을 몇번 톡톡 치는 것도 잠시, 흐무러진 초콜릿 조각을 제 입에 문 겔러트가 떨어져나갔다. 약간의 달콤한 여운만을 남긴 채 자신의 입안은 도로 비어있었다.
그러니까 보통 이런 걸 초콜릿 키스라고 하는 거 같긴 하던데 나는 영…… 알버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소감을 입밖으로 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위생적이야…"
"알버스 너 이럴 때 진짜 분위기 깨는 거 알아? 보통 로망이란 게 있잖아?"
나름 기대하는 표정이었던 겔러트가 김이 샜다는 듯 억울한 표정으로 항의했다. 네 로망이지 내 로망이야? 난 처음부터 별로라고 했잖아. 아무래도 넌 꿈과 로망이 부족한 거 같아. 이런 로망은 사양할래.
"그럼 그냥 하는 건 괜찮지?"
"어──"
대답하기도 전에 입술이 다시 닿았다. 말다툼하는 동안 상대의 입안에서 초콜릿 조각이 다 녹아버린 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입맞춤은 충분히 달았다. 연인들의 날에 어울릴 만한 달큰함이었다.
무려 인류가 철기 문명에 접어들기 이전 태어난 존재와 교제하는 게 쉬울 거라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한 적 없었다. 당장 5-10년만 나이터울이 벌어져도 인식의 차이가 느껴지는 와중에, 세기 단위로 차이가 난다면 더할 나위도 없는 셈이었다. 게다가 당연지사 종족마저 다르다. 마치 하이틴 전용 로맨스작품에나 나올만한 이야기였지만 이렇게 된 걸 어쩌겠냐고 알버스는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상대는 호머 서사시의 배경이 된 미케네 문명 시절부터 살아왔다는 흡혈귀였으며, 예쁘고 재력도 상당한데다 심지어 자기네 세계에서는 왕족 비스무리한 거라고 했던가. 어쨌든 생긴 건 제법 흠잡을 데 없는데다 솔직히 얼굴만은 내 취향이고. 일단 나한테 이렇게나 목을 매는 상대가 앞으로 나타날 것 같지도 않고. 당장은 너처럼 변할 생각이 없다고 못박아놨을 때 좀 불만스러워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그에 합의했었으니, 연애대상으로서 이보다 더 나은 후보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첫 연애가 몇천살 연상의 이종족 유사인류라는 건 어째 기분이 오묘해지지만 상대도 자신이 처음이라니까 뭐. 성격은 조금- 아니 많이 급하고, 앞에서는 안 내색하려고 해도 그동안 어지간히 안하무인으로 살아왔구나 싶지만 어찌 되었든 내가 좋다는데. 신분이 나름 왕족 급인데다 그동안 몇천년 간 쌓아올린 부 탓에 소비 스케일의 수준이 틀려서 종종 사람을 당황시키기는 하지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그런데, 대체 이게 뭐야. 알버스는 황망한 표정이 되어 제 앞에 펼쳐진 광경을 응시했다. 빈말로도 좁다고 할 수는 없는 공간에 야무지게 들어찬 다양한 크기의 박스들과…… 저건 또 뭐지, 꽃? 장미에 수국? 그리고 그 옆에 태연한 표정으로 서 있는 원흉.
"…카이우스. 이게 다 뭐야?"
"오늘이 인간들이 챙기는 기념일이라길래 약소하게나마 준비해봤는데. 왜, 너무 적어?"
"그 반대야!!"
환장하겠군. 얘네도 혹시 세금 같은 거 걷나? 설마 세금으로 이렇게 낭비를 하고있는건가? 얘가 이렇게 돈을 물쓰듯 펑펑 써도 아무도 터치하지않는건가? 알버스의 머릿속에서 수십가지 의문들이 불꽃놀이처럼 연이어 터졌다. 일단 잔소리를 하기 전에 제일 가까운 곳에 놓여있는 진홍색 작은 상자부터 열어보았을 때 그 내용물은 정석적이게도 초콜릿이었다. 이름을 들어본 상표는 아니었으나 보나마나 손이 떨리는 가격일 것이라는데 제 상장 컬렉션을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어, 설마 이거 다 초콜릿은 아니지……?"
"날 뭘로 보는 거야? 그 정도의 상식은 있어."
"아니, 넌 좀 더 평범한 일반인들의 상식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어……"
왠지 더이상 열어보면 안될 거 같다. 알버스는 다시 열었던 상자의 뚜껑을 고이 닫고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구애를 승낙한 후로 카이우스의 저세상 경제관념과 소비패턴에 놀랄 만큼 놀랐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놀랄 게 더 남아있었다는 사실이 제일 놀라웠다.
학교 7년을 다니면서도 단 한번도 챙겨본 적 없었던 발렌타인 데이였다. 다른 동급생들이 손을 잡고 호그스미드에 놀러가니 데이트를 하니 핑크빛 기류를 형성할 때 도서관에 처박혀 있었던 기억밖에 없었다. 혹자는 재미없는 인생이라 평할지 몰라도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더 흥미로운 유희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몇천년 넘게 살아온 흡혈귀에게 코를 꿰이면서 팔자에 없는 할리퀸 로맨스에나 나올만한 상황을 종류별로 겪어보고 있었다. 저번에 굳이 볼테라까지 가서 살고싶지 않다고 거부했더니 '그럼 네 이름으로 섬이라도 하나 사줄까?'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알버스가 침묵하자 불호의 뜻으로 알아들었는지 카이우스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내가 이번에 또 실수를 한 건가? 넌 너무 어려워."
"아니, 화난 것도 아니고 언짢은 것도 아니야. 그냥 가끔씩 네 경제관념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이 정도면 알아들을 때도 됐을텐데, 대체 볼투리 가문은 어떤 방식으로 자금운용을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애써 눌러 참았다. 거의 수장 한 사람당 개인 자산규모가 어지간한 국가 하나와 맞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나한테 펑펑 쓰는게 가능할리가.
"고마워, 매번 날 위해서 이렇게 신경써주는 거."
"네 표정은 별로 아닌 거 같은데."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그런데 저번에도 분명히 말했잖아? 네 기준은 내게 너무 부담이 크단 말이야."
"……많이 부담스러워? 나름 처음 계획보다 줄인 거다만."
"그러니까 그 기준이 부담스럽다고. 몇천년 넘게 살았을 너한테야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매번 기겁해야하는 제 심정도 이해해줬으면 한다. 그게 어려운 거겠지만. 알버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되었든 상대는 자신을 위해서 준비한 서프라이즈 이벤트라고 생각할텐데 너무 면박을 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나는 준비한 것도 없는데.
"그리고 난 아무것도 안 준비했는데 어쩌지. 살면서 이런 날을 챙겨본 적이 없어서. 그거라도, 할래?"
"별로 안 좋아하잖아."
"오늘은 나름 특별한 날이라니까… 아, 목은 말고. 거긴 싫으니까 손목으로 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목덜미에 싸늘한 것이 닿았다가 이내 도로 떨어졌다. 팔목에 닿은 손끝의 체온은 언제나와 같이 차가웠다. 제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앉은 카이우스가 허락을 구하듯 슬쩍 눈을 위로 떴다. 괜찮아, 고개를 끄덕이자 맥박 위에 키스하듯 입술이 와닿았다. 이윽고 서늘한 감각이 손목의 얇은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아. 몇번 겪어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에 입에서 짧게 탄식이 새어나왔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통증 자체도, 체내의 혈액이 강제로 빨려나가는 기분은 낯설기만 했다. 차라리 아프기만 한 거라면 괜찮겠는데 이상하게 묘한 기분이, 들어서. 아픔 속에 섞인 미묘한 감각에 구두 속에 갇힌 발끝이 오그라들었다. 그저 피 좀 빨리는 것 뿐인데, 왜? 마치 상대에게 매달려서 애원하게 될 것만 같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만하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이를 악물고 충동을 이겨내는 것도 잠시 카이우스가 떨어져나갔다. 제3자가 보았다면 방금까지 뭘 했는지 알아채지 못할 만큼 입가는 깔끔했다.
"매번 표정 귀엽네."
"그 와중에 보고 있었어?!"
"보이니까. 그리고 원래 그런 거니까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
"그, 그러니까 뭐가?"
"피 빨릴 때 느끼는 거."
"뭐, 뭘 느껴……?"
순간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 같은 기분이 엄습했다. 뭐가 어쨌다고? 제가 미리 말하지 않았냐는 듯이 카이우스가 눈을 깜박였다.
"가끔씩 인간들은 그걸로도 느끼는 경우가 있는 것 같더라고."
"너 그걸 이제서야 말하면 어떡해?!"
"그야 네 표정이 귀여우니까."
"그렇다고 지금까지 안 알려줬다는 게 말이 돼? 이제까지 몇번씩이나…!!"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뺨이 확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지만 가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런 건 좀더 일찍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거였다면 처음부터 허락도 안 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상대에게 그런 욕구를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거라느니 해서 마음이 약해지는 바람에 처음 수락했었고, 이후 가끔씩 단발성으로 허락했던 건데. 자신이 더 화낼 거라고 생각했는지 카이우스가 눈치를 보는 듯 몇마디 더 덧붙였다.
"미리 말 안해준 건 미안해. 그리고 전에 지중해 가보고싶다며, 밖에 전용기 불러놨는데… 이건 거절 안 할 거지?"
"저것들은 다 어떻게 하고."
"우리 돌아올 때까지 보관해놓으라고 할게. 그래도 한번씩 열어보기는 해줘."
자신이 상자 딱 하나만 열어본 게 마음에 걸리는지 상대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저번 성탄 때처럼 다 합하면 작은 성 하나는 사고도 남을 값어치일까봐 조금 겁나긴 하지만…… 알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닿는 곳에 놓여있던 붉고 푸른 수국꽃다발을 집어들었다. 이건 같이 가져갈까. 수국의 꽃말은 진심과 변덕이라던데, 새삼 선물해준 상대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변덕스럽지만 항상 내게 진심인 황금빛 눈동자의 연인. 좋든 싫든 내가 선택한 짝이고, 언젠가는 나 역시 너와 같이 되겠지. 싸늘한 체온과 영롱한 금안, 더이상 심장이 뛰지 않는 채로 영겁을 살아갈 불멸의 존재가. 언젠가 그의 경제관념에 익숙해질 날도 올까, 그것만은 별로 닮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차피 먼 훗날의 일이었고 지금은 그냥 제게 주어진 유예기간을 만끽하는 걸로 만족하고 싶었다. 스케일은 많이 당황스럽지만 카이우스 본인에게도 몇천년동안 아무 의미 없었을 -최소한 그가 인간일 때는 없었을 날이니까- 인간들의 기념일을 챙겨준 것도 기특하고. 전에 흘리듯 지중해 연안 쪽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던 걸 용케 기억했다는 것 역시.
"아무튼 해피 발렌타인. 챙겨준 건 고마워."
"──해피 발렌타인."
사실 이렇게 누군가와 어떤 날을 기념하며 같이 보낸다는 기분 자체가 낯설었다. 아마 카이우스가 없었다면 평생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혈액 외의 일반적인 음식물들은 일절 입에 안 댄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날이 날인만큼 가는 길에 초콜릿이라도 한번 먹여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알버스는 상대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17년간을 통틀어 가장 요란한 발렌타인 데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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