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은 숲이 시작되는 어귀에 자리잡고 있었다. 오래되어 보이는 성당은 그만큼 겉에서부터 고색창연한 인상을 풍겼다. 홀로 높게 솟아있는 뾰족한 첨탑이 유독 고고하고 우아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외벽에 새겨진 양각의 부조가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 서 있는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군상 개개인의 표정마저 표현되어있을 정도로 섬세한 부조였다. 아마도 머글들이 숭상하는 경전에 등장하는 장면이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성당 입구 옆에 서 있는 흰 성모상에 시선이 멎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성모는 처연한 표정을 띠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이방인을 환영하는 듯 자애로워 보이기도 했다. 겔러트는 다시 몇 발짝 앞으로 내딛었다. 손끝이 금속제 문고리에 닿았다. 관리가 잘 되어 있었는지, 오크 재질의 묵직한 성당문은 귀에 거슬리는 마찰음 없이 매끄럽게 열렸다.
 오후의 성당 내부는 조용하고 한적했다. 평소 사제가 서서 미사를 집전하는 제단도, 신도들이 앉아 있어야 할 회중석도 역시 텅 비어 있었기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과한 일광이 일렬로 놓여진 목재 의자들에 유유하게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높은 천정을 지탱하는 듯한 수개의 아치형 기둥들, 신도석을 좌우로 양분하며 제단까지 쭉 이어진 중앙 회랑에 길게 깔린 붉은 카페트, 제대 뒤쪽 벽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십자가. 그리고 코끝을 맴도는 오래된 성당 특유의 향취. 그는 결코 머글들을 좋아하지 않는 소년이었으나, 마법 없이 나름대로 일구어낸 머글들의 문화는 항상 그를 감탄케 만들었다. 문학과 건축, 음악과 같은 무수한 예술…… 이런 일개 건축물을 감상하자고 먼 이국까지 온 것은 아니었으나, 잠깐의 여유를 즐기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히기까지 그리스도가 겪은 수난을 무려 열네장에 걸쳐서 나눠 그린 듯한 성화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든 순간, 회중석 가장자리에 앉아있던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당황함도 잠시, 상대의 모습이 겔러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제 나이 또래의 앳된 소년이었다. 그리고 머리를 덮고 어깨까지 흘러내린 반투명한 재질의 검은 미사보. 검은 미사보도 있었던가? 자신을 돌아보는 소년의 상반신 위로 스테인드 글라스 너머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영롱한 색채를 흩뿌렸다. 상대 역시 낯선 불청객의 등장에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근거리는 아니었으나, 기이하게도 소년의 모습은 화인을 찍듯 시야에 또렷하게 들어찼다. 마치 성당에 들어서기 전 보았었던 부조처럼. 일자로 곧게 뻗은 아미와 아몬드 모양의 눈매, 살짝 벌어진 입술의 모양새, 그리고 은방울꽃같은 흰 얼굴. 미사보 너머로 설핏 드러난 목줄기의 실루엣이 사슴처럼 가늘고 곧았다. 상대의 눈동자가 자신의 것보다 한 톤 더 옅은 빛깔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몇 초 정도가 지나서였다. 푸르다기보다는 차라리 하늘색에 가까운.
 소녀가 아닌 소년이었고, 머리에 쓰고 있는 것마저 흰색이 아닌 검은색의 미사보였지만 기이하게도 낯선 소년의 모습은 뜬금없는 장면을 연상케했다. 마치─ 식장에 들어서는 새신부가 등 뒤로 길게 드리운 순백의 면사포처럼 보여서. 겔러트는 착시와도 같은 상념을 떨쳐버리기 위해 의식적으로 눈꺼풀을 몇번 깜박였다. 여전히 베일을 쓴 상대는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제 착각은 쉽게 스러지지 않았다. 첫 대면이었다.



* * *
 마법사들은 머글들의 종교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 종교에서 파생된 예술품들은 언제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무수한 건축물들, 낮게 울려퍼지는 화음이 매력적인 성가와 수많은 예술가들에 의해서 그려진 성화, 나이든 여인들이 소중히 들고 있던 로사리오. 겔러트가 태어나고 자란 중부 유럽에는 머글들이 세운 성당들이 무수히도 많았다. 으레 끄트머리에 십자가가 세워진 높은 탑과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혹은 성모 마리아 상, 열두 사도와 유명한 성인들이 조각된 부조들, 성인의 유해와 같은 성유물, 오색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되어있는. 신앙심은 전혀 없지만, 겔러트는 성당 특유의 정적인 분위기를 좋아했다. 다소 독특한 취향이라는 생각은 줄곧 해왔지만…… 적어도 나는 미사보를 직접 써 본 적은 없었지.

 "그렇지만 조금 놀랐어. 보통 마법사들은 머글들의 문화에는 관심이 없는 게 보통이니까. 게다가 그 미사보는 또 뭐였어?"

 그 미사보는 어머니가 간직하시던 거야, 알버스가 겸연쩍은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 어머니는 머글 태생이셨으니까, 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기 전까지 어쨌든 평범한 머글 가정의 딸이었다고 해. 남들이 믿는 만큼 평균치의 신실한. 우리 세계에 발을 디딘 이후 더이상 신앙생활은 하지 않으셨다고 하지만.

 "그리고 나도 겔러트 너처럼 성당 특유의 분위기는 꽤 좋아해서…… 앉아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거든. 그땐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었던 시기기도 했고."

 너와 만난 이후로는 영 다시 가본 적 없는 것 같네, 말을 덧붙이며 알버스는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특유의 수줍어하는 듯한 온화한 미소였다. 그 위로 첫 조우의 순간, 미사보를 쓰고 자신을 뒤돌아보던 소년의 모습이 찰나 겹쳐졌다. 신부가 드리운 베일을 떠올리게 하던 그 모습.

 "그런데 네가 다시 미사보 쓴 모습 보고싶어."
 "미사보? 그걸 왜?"
 "그냥."

 그때 너무 인상깊었었나봐, 어깨를 으쓱해보이자 알버스가 눈동자를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놔뒀던 지팡이를 가볍게 휘두르자 옆에 놓여있던 탁상 서랍장에서 미사보 주머니가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소년의 무릎 위로 떨어졌다. 알버스가 주머니를 열기 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겔러트가 팔을 뻗어 제지했다.

 "아, 그런데 내가 씌워줘봐도 돼?"
 "? 안될 거야 없지만……"

 장미 자수가 입구 주변에 아로새겨져있는 미사보 주머니를 가볍게 열어젖히자 곱게 접혀있는 미사보의 형태가 드러났다. 두 장이었다. 그때 보았었던 검은 미사보와 좀 더 보편적인 흰 미사보. 그는 흰 미사보를 들어올렸다. 끄트머리만 세심한 자수로 마감되어있을 뿐, 전반적으로 비치는 재질인 미사보는 흡사 거미줄로 자아낸 것처럼 얇고 가벼웠다. 겔러트는 미사보를 펼친 후 알버스의 머리 위로 조심스럽게 가져갔다. 씌워주기가 무섭게 하늘하늘한 미사보가 풍성하게 흘러내려 알버스의 머리와 어깨를 가렸다. 반투명한 미사보 아래로 붉은기가 도는 갈색 머리칼이, 반듯한 이마가 고스란히 비쳐보였다. 너울거리는 베일에 감싸인 단정한 얼굴이 흔들림 없이 그를 응시해온다. 본래 여성용이라고는 하지만, 미사보를 쓰고 얌전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소년의 모습은 묘한 기분을 자아냈다. 최초에 연상했던 신부의 모습같기도 했고, 그게 아니면──
 다시 벗겨줄게, 서둘러 속삭인 후 그는 다시 미사보에 손을 댔다. 순간 알버스의 머리에서 베일이 느리게 떨어져내렸다. 채도와 명도가 다른 두 쌍의 벽안이 근거리에서 다시 교차했다. 고작 머리와 얼굴을 가리고 있는 반투명한 얇은 천 하나 벗겨주는 것 뿐인데…… 왜? 목이 탔다. 바닥에 미끄러져 떨어진 미사보를 주울 겨를도 없이 겔러트가 상대의 이름을 낮게 속삭였다. 알버스. 돌아오는 대답은 평온했다. 응. 언제나처럼 차분한 톤의 낮은 목소리, 흔들림 없는 눈동자. 타인은 그렇지 않은데 자신 홀로 동요하는 것 같은 기분은 낯설었고, 또 익숙하지 않았다. 겔러트는 베일을 쓰지 않은 소년의 앳된 얼굴에서 제 시선을 억지로 떼어냈다.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만 같아서.




*Elisabeth- Der Schleier fällt(The Veil Desc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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