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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때로 자신의 영혼이 여전히 1899년의 여름에 붙들려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정확히는 1899년의 여름, 영국 고드릭 골짜기에. 그곳에 머물렀던 기간은 겨우 두어달 남짓이었고, 도망자처럼 급박하게 떠났던 이후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근처를 스쳐지나간 적조차 없었다. 이미 몇십년도 더 지나버린 오래된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층처럼 켜켜히 묻어두었다고 생각했던 기억은 뜬금없는 순간 부유하는 유령처럼 되살아나 그의 뇌리를 정처없이 방황하고는 했다. 1899년의 그는 아직 어린 소년이었고, 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받은 후 이제껏 한번도 밟아본 적 없던 이국의 땅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났던 인물은 그의 인생에서 조우한 최초의 변수였다.
 그는 타고난 천재였고, 따라서 주위 상황과 인물들, 때로 자기자신마저도 거대한 체스판 위에 올려놓은 채 이용하고 조종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의 인생은 항상 철저히 통제된 상수로 점철되어 있었다. 미처 예기치 못한 요인에 의해 벌어지는 돌발상황 정도야 가볍게 해결할 자신도, 능력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삶은 언제나 씨실과 날실처럼 조밀하고 촘촘하게 짜여진 설계도 내지 청사진 아래 펼쳐져 진행되었다. 1899년까지만 해도, 그의 지난 16년은 항상 그러했다. 자신이 미리 예상한 방향에서 결코 일탈하지 않는 삶. 지루하다고 평할 수도 있겠으나 그는 자신의 방식에 만족했다. 심지어 졸업장도 받지 못하고 중간에 덤스트랭에서 쫓겨났을 때조차 그러했다. 퇴학 역시 그의 변수가 되지 못했다. 어차피 학교에서 더이상 배울 것은 없었다. 그것이 학문이 되었든, 인간을 다루는 기술이 되었든. 차라리 아무데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의 몸이 되어 제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낫다. 그 즈음의 그에게는 이미 새로운 목표가 존재했다. 피브렐 가문의 일원들이 소유했었다던 세가지 죽음의 성물. 마법사들이 오히려 머글들을 피해서 숨어야하는 모순덩어리 현 사회를 개혁하고, 나아가 죽음의 지배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마침 이그노투스 피브렐이 살았다던 지역에 저명한 학자인 대고모가 살고 있었기에 찾아가는 것 역시 용이했다. 방학을 맞아 시간을 내어 먼 친척을 방문한 사랑스러운 소년, 그것이 그가 고드릭 골짜기에서 택한 대외적인 가면이었다. 목표는 오직 세 가지 성물의 행방을 추적하는 것─ 그리고 낯선 땅에서 그는 마침내 만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의 생에 있어 처음으로 등장한 변수, 차마 예측하지 못했던 분계점이자 최초의 이변이 될 또래 소년을.

 "안녕. 네 이름이…… 오, 알버스?"

 기억하고 있다. 때는 7월 초순이었으며 우거진 녹음은 청량했고, 하얗게 작열하는 일광은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었다. 영국의 여름은 그의 고향이나 그가 다닌 학교에서 겪은 것과는 사뭇 다른 계절이었다. 그러한 계절에 두 소년은 마주했다. 상대의 이름을 소리내어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생전 처음 느끼는 감각이 척추를 타고 가파르게 흘렀다. 낯선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너는, 나와 '동류'구나. 너도 나와 같다고. 자신만큼이나 똑똑하고 총명하며 천재적이고 뛰어난 존재. 알버스. 그는 다시한번 입속으로 상대의 이름을 굴렸다. 그것은 이름 주인의 외모만큼이나 부드러운 어감이었다. 알버스와의 조우는 그의 삶에 있어 첫번째 특이점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만나버린 쌍둥이별자리의 나머지 반쪽. 찰나 제가 왜 이곳에 왔는지 망각하고 온전히 상대에게 빠져들 정도로, 자신과 동등한 존재와의 대화는 즐거운 일이었다. 기존에 맺어왔던 인간관계들과 다르게 통제도, 조종도 없이 그저 호감과 친근감으로 지속되는 관계. 어떻게 보면 생애 처음으로 사귄 진정한 의미의 '친구' 아닌가. 원래 성물의 행방을 파악할 때까지 잠깐 몇주정도만 머무를 생각이던 원래의 계획은 어느덧 뒤로 밀려나 있었다. 매일같이 마주하는 상대의 눈빛에 어느덧 갈구하는 듯한 열기가 깃들어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 그때서야 그는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두번째 변수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초에 제어할 생각조차 없었던 첫번째 변수가 연이어 변이를 일으켰다.
 왜 그런 사랑에 빠진 눈으로 날 바라보는 거지, 네가 나를 사랑하면 안 될텐데. 차라리 티가 덜 났다면 무시라도 할 수 있었을테지만 알버스의 속내는 너무나도 선연하게 엿보였다. 흡사 손에 잡히기라도 할 것처럼. 왜 너는 나를 사랑할까. 제게 품은 연심을 채 숨기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질질 흘리는 앳된 얼굴을 무심하게 응시하며 그는 생각했다. 익숙한 눈빛이고 표정이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 특유의 갈망하는 듯한 눈매. 이미 그러한 시선은 그동안 지겹도록 겪어왔다. 하지만 처음으로 사귀다시피한 친구가, 또래 여자애들이 보내오던 바로 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꽤나 낯선 감각이었다. 이제까지 항상 자신이 짜온 판 내에서 이루어졌던 삶이 어느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낯선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제게 연정을 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제와서 매몰차게 거절하기엔 이미 늦었다. 앞으로의 그의 계획, 이 사회를 개혁하고 죽음의 지배자가 되기 위한 청사진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렸기에. 꼭 거절할 필요가 있나? 그는 자문했다. 상대가 자신을 좋아한다면 오히려 잘 된 터였다. 그는 통제하고 조종하며 이용하는 데 익숙한 종류의 인간이었으며,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기라도 한다면 더 간단했다. 이제까지는 그저 친구로서 허물없이 대했다해도, 널 유용하게 써먹어줄게. 넌 날 사랑하니까.
 비록 예상치 못했던 예외로 점철된 여름이었으나 이제는 제 궤도를 찾게 될 것이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소년이 필요했고, 상대 역시 자신을 열망했으므로. 어쩌다 손끝이라도 스치게 되면 흠칫 굳어버리거나 파르르 어깨를 떠는 모습을 모른 척 하면서, 그는 처음 만났던 순간처럼 상냥한 태도를 견지했다. 이미 애정의 권력관계가 끼어든 이상 두 소년의 관계는 더이상 초반처럼 동등하지는 않았으나, 겉으로나마 아슬아슬하게나마 유지되고 있었기에.
 아마 이번에는 그의 계획이 엇나가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다른 돌발상황이 벌어지지만 않았다면. 아픈 여동생마저 함께 데리고 여정을 떠나겠다는 말에 알버스의 남동생이 강하게 반발하고, 고성이 몇번 오간 이후 언쟁이 지팡이가 동반되는 싸움으로 번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어디까지나 사고였다. 누군가의 지팡이에서 발사되었는지 모를 주문을 맞고 끈 떨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느리게 지면으로 무너져내리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보며 퍼뜩 정신이 들었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분명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다. 삼자간의 싸움으로 커진 것 자체도, 알버스의 여동생이 죽은 것도, 전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무릎을 꺾은 채 주저앉은 소년의 눈동자에 더이상의 열기는 엿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거의 동물적인 감각에 가까운 예지였다. 자신의 계획은 이미 글렀다는 것을. 알버스는 그와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낙심한 채 떨면서 영국을 떠났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처참했던 실패였다. 길고도 짧았던 여름의 막바지에 벌어졌던 일이었다.
 그가 살면서 마주했던 변수와 이변, 실패의 기억들은 대부분 1899년 여름 한 철에 집중적으로 포진되어 있었다. 유일하게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었던 태풍의 눈 중심에 있었던 한 소년. 이상하게 너와 있을 때만은 내 뜻대로 잘 되지 않았지. 그는 나지막히 서류 중간즈음에 적혀있는 이름을 읊조렸다. 알버스, 덤블도어. 잊지 못했다. 잊을 수도 없었다. 타고난 통제광이었던 그에게 예외만을 안겨주었던 상대. 애초에 나도 그쪽도 신문 1면에 나란히 이름이 같이 실리는 유명인사니, 억지로 잊을래야 잊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군. 그는 쓴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3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갑작스럽게 나타나 내가 짜놓은 체스판을 무너뜨리는데는 여전히 최고구나. 유일한 나의 변수. 알버스. 여기서까지 네 이름을 마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취조실의 조명이 유난히 서늘했다. 눈앞의 젊은이는 긴장한 듯 딱딱하게 굳은 채 시선을 옆으로 떨구고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손끝을 서로 모은 채 입을 뗐다. 언젠가 알고지냈던 소년의 버릇처럼.

 "오직 한 교수만이 네 퇴학에 반대했더군. 그래서…… 알버스 덤블도어가 왜 널 아꼈지?"

 알버스, 그 이름을 발음하는 순간 환시처럼 오래된 풍경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자신을 간절히 바라보던 사랑에 빠진 눈, 저를 향해 해사하게 웃어보이던 수국꽃다발같은 흰 얼굴. 자신이 나이를 먹었듯 상대 역시 나이를 먹고 중년에 접어들었을텐데도, 그가 떠올리는 인물은 언제나 열일곱 소년의 용모를 하고 있었다. 벌써 고드릭 골짜기를 떠난지도 몇십년이 흘렀으나 자신을 사랑했던 소년의 얼굴만은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몸은 오래전 그곳을 떠나왔어도 제 영혼의 중심은 여전히 그해 여름에 매여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제 상념을 씹어삼키며 겔러트 그린델왈드는 청년의 대답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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