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커서 겔러트 오빠랑 결혼할래."

 저녁식사 도중 여동생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스푼을 떨어뜨린 것은 비단 애버포스 뿐이 아니었다. 바로 앞에서 식사 중이던 알버스의 손에서 포크가 주르륵 미끄러져 떨어져내리는 것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눈에 들어왔다. 은제 식기가 식탁과 부딪히는 바람에 쨍그랑, 하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났지만 식탁에 앉아있던 네 사람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자신과 다른 의미로 얼어붙은 듯한 형, 그리고 대단한 각오라도 한 것처럼 의지에 불타 보이는 아리아나. 유일하게 그 발언이 나오기 전과 별 다르지 않게 차분해 보이는 것은 다름아닌 선언의 타겟이 된 겔러트 뿐이었다. 알버스가 떨어뜨린 포크를  대신 주워주며 그가 나른하게 웃어보였다.

 "오, 그래? 이렇게 예쁜 숙녀분에게 청혼을 받다니 정말로 영광인걸."
 "응! 난 나중에 꼭 오빠랑 결혼할거야!"
 "그런데 어떡하지, 아리아나? 나는 이미 네 사랑스러운 큰오빠의──"
 "잠깐, 잠깐, 잠깐! 거기까지! 입 다물어!"

 그 매끄러운 혀끝에서 무슨 위험한 소리가 더 흘러나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애버포스는 급하게 겔러트의 말을 끊어먹었다. 이 자식이 대체 애 앞에서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려고! 그나저나 내 여동생이 이 빌어먹을 놈이랑 결혼하고 싶다니 이 무슨 큰일날 소리야?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망할 자식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싶었으나 그는 꾹 눌러참았다. 대신 애써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는 것을 택했다.

 "아리아나, 넌 아직 결혼 얘기를 하기엔 너무 어려. 아직 성인이 되려면 몇년은 더 남았잖아."
 "그게 뭐 중요해?"
 "아주 중요하지…… 그런데 대체, 왜 하필 이 놈이야?"
 "그거야, 겔러트 오빠는 잘생겼으니까.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 제일 잘생겼어. 그리고 나랑 똑같은 금발이기도 하고!"

 윽. 다시 둔기에 머리를 얻어맞는 것 같은 충격이 엄습했다. 물론 저 자식이 제법 미끈하니 반반하게 생겼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사실이 사랑해 마지않는 여동생의 입에서 흘러나오니 왠지 충격이 컸다. 왜 그런 마음 있잖아. 그는 끈기를 유지하며 아리아나에게 마저 말을 걸었다. 그가 어떤 심정이든 말든 옆에서 빙글빙글 웃고 있는 동구권 출신의 미남은 이제 창백해진 형의 귓가에 뭐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어째 둘이 식탁 아래에서 손을 잡고 있는 듯했지만 간신히 무시했다.

 "아리아나, 잘 생각해 봐. 결혼은 상대 얼굴이나 머리색만 보고 하는 게 아니야. 좀 더 오랫동안 알아보고, 또 성격이라던가 나와 잘 맞는다던가, 여러가지를 알아보고 심사숙고한 후에야 결정하는 거지……"
 "하지만 겔러트 오빠가 우리집에 들리기 시작한지도 벌써 몇년이 넘었잖아? 대체 얼마나 더 알아야 하는데?"
 "그게, 그러니까."
 "난 세상에서 애버포스 오빠를 제일 좋아하지만 두번째로는 겔러트 오빠가 좋단 말이야. 그러니까 결혼할래."
 "어, 뭐?!"

 와, 오늘은 이래저래 정말 충격적이군. 그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득해지는 듯한 기분을 경험했다. 자신이 그래도 아직까지는 귀여운 여동생의 1위라는 거라던가, 알버스는 아예 순위권에서 밀려났다는 것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제와서 나 다음으로 저런 놈을 2순위로 꼽다니! 왜! 어째서! 내가 널 어떻게 키우고 아꼈는데! 나타난지 몇년도 안된 주제에 귀엽고 순수한 내 천사같은 동생의 마음을......! 애버포스는 마치 십여년만에 부모의 원수라도 만난 사람처럼 겔러트를 노려보았다. 상대는 여전히 얄미울 정도로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야, 너. 내 순진무구한 여동생을 어떻게 홀려놨길래 저 애가 저런 소리를 해?!"
 "글쎄. 원래 잘생기고 예쁜 걸 좋아하는 건 사람의 본능이 아닐까 싶은데. 그리고 워낙 내가 잘생기고 예쁜데다 숙녀에게 상냥하잖아."
 "미친 거 아냐? 개소리 하지 마."
 "그냥 순순히 인정하는 게 좋을걸. 그러다가 아리아나의 1위 자리도 뺏긴다?"

 아, 진짜 죽여버리고 싶다. 이 자리에 알버스와 아리아나만 없었어도, 지금의 기분이라면 충분히 겔러트에게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쓰고도 남을 것 같았다. 내가 만든 저녁식사가 아니라 크루시오나 처먹여야하는데! 이 자식이 고드릭 골짜기에 눌러앉은지도 벌써 몇년이 넘었다.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동공에 힘이 풀려서 겔러트와 딱 붙어다녔던 형을 애저녁에 뺏긴 것까지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제는 급기야 제가 애지중지했던 여동생의 마음마저 빼앗길 위기였다. 아니, 대체 왜. 하늘이 무너진 듯한 표정의 애버포스를 본 체 만체 하고 겔러트가 아리아나에게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이미 난 네 사랑하는 큰오빠와 미래를 약속한 사이라서 말이지. 대신 형부는 되어줄 수 있는데, 어때?"

 여전히 반쯤 혼이 나가있는 듯한 알버스의 어깨를 제게로 끌어당겨 안으며 겔러트가 웃었다. 모 주간지의 가장 아름다운 미소 상을 타도 좋을만큼 황홀하기 짝이 없는 미소였다. 물론 애버포스가 보기에는 악랄해보일 뿐이었다만.

 "에, 형부……?"
 "미쳤냐? 내가 애한테 그런 말 하지 말랬지!!"

 어느날 저녁에 일어났던 해프닝은 그렇게 저물었다. 알버스는 한동안 민망한 듯한 표정으로 동생들을 대했고, 하나뿐인 여동생은 쉽게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며, '이제 처제도 다 알았으니까 별로 상관없잖아' 운운하며 집안에서도 노골적으로 굴기 시작한 금발미남의 존재만을 제외한다면 별로 달라진 것은 없는.




+@fygrindelxdore님 멘션내용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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