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러트, 이거."
 "이게 뭐야?"
 "부활절 계란. 안 받을거야?"

 작은 바구니에 소담스럽게 담겨있는 알록달록한 계란들을 응시하며 겔러트는 새삼 날짜를 되새겼다. 아, 그러고보니 오늘이 부활절이었던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지내다보니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부활절, 그리고 부활절 계란. 알버스의 손끝에 달랑달랑 들려있는 바구니를 받아들며 그는 내용물을 빤히 바라보았다. 보라색, 옅은 녹색, 분홍색, 푸른색 등 화려한 빛깔의 계란들을 보고있자니 새삼 오늘이 부활절이라는 기분이 났다. 꼼꼼하게 칠해진 밑색이나 고운 문양들이 꽤나 섬세하고 예뻤다. 본인이 직접 꾸민걸까? 아마 그렇겠지? 바로 지금까지 완전히 잊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절 계란들을 보고있자니 완연하게 실감이 들기 시작한다. 손톱으로 계란의 표면을 리드미컬하게 톡톡 두드려 본 후 겔러트는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고마워, 그런데 난 깜박하고 따로 준비 못 했는데 어떡하지."
 "괜찮아. 나도 잊고있다가 어제 저녁에 생각난 거라서."
 "그래도. 그냥 넘어가려니까 좀 미안하잖아. 알버스 네가 다 일일이 꾸민 거 같은데."
 "내가 하고싶어서 한 거니까,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돼."

 타고난 천재로서 어려서부터 칭찬과 찬사엔 익숙한 삶을 살아왔을 애치고는 유독 자신의 말에 한결같이 민망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색한 듯, 수줍은 듯 웃고있는 앳된 얼굴을 보고있자니 갑자기 뜬금없는 생각이 치고 올라왔다. 전부터 얘를 볼 때마다 들었던 상념이기는 했는데.

 "그럼 오늘은 네가 내 부활절 토끼야?"
 "……? 난 사람인데?"

 갑작스러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양새나 눈꺼풀을 깜박거리는 모습이 정말로 토끼처럼 보이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풋 새어나왔다. 다소 짓궃은 취미일지도 모르지만, 항상 단정하고 평온한 흰 얼굴에 당황이나 놀람 등의 감정이 깃드는 것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상대가 겔러트 자신만큼이나 천재적이고 강한 마법사라는 건 알지만 어째 이미지는 토끼나 사슴같은 초식동물 류에 가까운 느낌이란 말이지. 게다가 오늘은 부활절이고, 무려 부활절 계란까지 가져다줬으니까 그야말로 부활절 토끼가 따로 없었다. 그것도 오직 나만의 부활절 토끼겠네.

 "아니, 그러니까 알버스 네가 나한테 계란 줬잖아."
 "응……"
 "그리고 원래 부활절 토끼는 부활절에 착한 아이들의 집에 방문해서 계란을 나눠준다고 하니까─ 아니다, 알버스 넌 이럴 때가 제일 귀여워. 이해 못 했어도 괜찮으니까 그냥 내 토끼하자."
 "…어, 네 토끼?"
 "착하지. 이리 와, 토끼야."

 깨지기라도 할까 달걀이 담긴 바구니를 조심스레 고쳐쥔 채 다른 팔로 허리를 감고 끌어당겼다.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한 채로 딸려와 순순히 안긴 알버스가 눈동자를 굴리며 저와 시선을 맞춰왔다. 아직도 왜 뜬금없이 자길 토끼라고 부르는지 이해를 못 한 얼굴인데. 어려운 논문이나 난해한 서적들은 술술 읽어내리고 외부 대회에서 매번 상장을 싹쓸이해 온 괴물인 주제에, 이런 단순한 농담들에는 삐걱삐걱 어색하게 반응하는 게 정말이지…… 아, 진짜 귀엽네. 얘 정말 뭘 먹고 이렇게까지 귀엽지. 이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씹어먹고 싶을만큼 사랑스러웠다. 한 손에 든 계란 바구니만 아니었으면 두 팔로 끌어안았을텐데. 소소한 아쉬움을 뒤로 하며 그는 생긋 미소지어 보였다.

 "Happy Easter."

 품 안에는 내 귀여운 부활절 토끼도 얌전히 안겨있고, 부활절 토끼에게서 받은 부활절 계란도 있고. 그야말로 더할나위없이 완벽한 부활절이었다. 내년 부활절에는 진짜로 토끼 귀라도 한쌍 달아줄까나. 알버스가 레질리먼시로 꿰뚫어보았다면 아마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생각을 하면서 겔러트는 자신의 부활절을 만족스럽게 만끽했다.



* * *
 "알버스, 넌 어려서 그런 것들 믿었어? 이빨 요정이라던가 산타클로스, 부활절 토끼 같은 존재들 말이야."
 "아니. 부모님이 다음 크리스마스 선물은 뭘로 할까 밤중에 나누시는 이야기를 너무 어린 나이에 들어버리는 바람에. 여동생에게 그 얘기를 해주지 말았어야했는데, 산타클로스가 없다니까 바로 울어버려서 달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나."
 "그래? 난 믿은 적 있었는데."
 "겔러트 네가? 정말? 꽤 의외인걸."
 "사실을 고백하자면, 지금까지도 믿어. 적어도 부활절 토끼의 존재만큼은."
 "……?"
 "지금 바로 내 앞에 있잖아. 알버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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