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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는 아무 데나 책을 펼쳤다. 책 한 면에 걸쳐 실려있는 십대 소년 두 명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찍을 당시 바람이라도 불었었는지 소년들의 머리칼이 산들산들 흩날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울창한 녹음을 배경으로 서로 약간 거리를 둔 채 떨어져서 서 있었다. 이 소년이, 정말로 십대 시절의 덤블도어일까? 해리는 찰나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빛바랜 사진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열여섯 살, 아니면 열다섯 살? 사진 속의 얼굴은 앳되다 못해 어렸다. 소년이라는 단어 자체를 인간의 형상으로 체화시킨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인상. 그의 기억 속 온화한 노인이 한때 이토록 청초한 분위기의 소년이었으리라고, 두 사람을 연결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 머리칼과 단정한 이목구비, 상냥해보이는 눈매와 수줍은 듯 입가에 희미하게 걸려있는 옅은 미소. 그리고 소년이 걸치고 있는 것은 베스트와 흰 셔츠였다. 열린 셔츠 깃 사이로 사슴처럼 가느다란 목줄기가 길게 뻗어있었다. 사진 속의 십대 덤블도어 -로 추정되는 소년- 는 제 두 손을 앞에 겹쳐서 얌전히 모아쥔 채 해리를 유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약간 미쳤지만 위대한 마법사였던 은발 현자에게도 한때 소년 시절이 있었다니, 역시 멍청한 헤르미온느나 온순한 폭탄꼬리 스크루트처럼 어색하고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그 과거의 파편이 지금 해리의 눈 앞에 떡하니 존재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해사하고 예쁘장한 십대 소년의 모습으로.
 한편 어린 덤블도어 곁에 서 있는 금발의 소년은 덤블도어와 다르게 제법 성숙한 청년 티를 풍겼다. 그는 덤블도어보다 몇 뼘 정도 더 늘씬하게 키가 컸다. 소년의 곱슬거리는 머리칼은 색이 바랜 사진 속에서도 선연하게 반짝이는 금빛이었다. 약하게나마 미소를 머금고 있는 덤블도어에 비해 그는 무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문 입매와 사람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은 그의 잘생긴 얼굴을 더 오만하고 냉랭하게 보이게 했다. 목까지 꽉꽉 채워입은 검은 상의와 제복 내지 군복을 연상시키는 모양새의 군청색 겉옷, 뒷짐을 지고 있는 자세 역시 고압적인 분위기에 한몫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 속 소년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여신이 사랑했다던 오래된 신화 속의 미소년처럼. 십대 시절 덤블도어에게 이렇게 잘생긴 친구가 있었단 말인가? 해리가 알고 있는 덤블도어의 가까운 지인이라고는 도지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도지가 젊어서 이런 출중한 외모였으리라고는…… 막 사진 밑에 붙어있는 설명을 확인할 틈도 없이, 사무실 문이 왈칵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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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해리는 등잔을 높이 든, 땅딸막한 그레고로비치의 뒤를 따라서 어두운 복도를 서둘러 걸어가고 있었다. 그레고로비치는 복도 끝에 있는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대패질한 부스러기와 흔들리는 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황금이 보였다. 그리고 창턱에는 금발 젊은이 하나가 거대한 새처럼 도사리고 앉아있었다. 그의 손에는 가느다란 지팡이가 들려있었다. 힐끗 열린 문 쪽을 돌아본 잘생긴 청년은 곧 고개를 돌려 비 내리는 창밖으로 거침없이 뛰어내렸다. 그의 화려한 금발과 긴 코트자락이 바람결에 나부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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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가 마지막으로 양초를 발견한 곳은, 수많은 사진들이 세워져있는 앞부분이 둥근 서랍장 위였다. 불꽃이 살아나 춤을 추자, 반사된 빛이 먼지 낀 유리와 은 액자 사이로 일렁였다. 그는 사진들이 아주 살짝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바틸다가 불을 지피기 위해 주섬주섬 장작을 주워모으는 동안, 그는 "테르지오"하고 속삭였다. 그러자 사진들을 뒤덮고 있던 먼지가 싹 사라졌다. 해리는 즉시 가장 커다랗고 장식이 화려한 액자들에 끼워져있던 예닐곱 장의 사진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과연 바틸다나 혹은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없앴을까 의아해하고 있을 때, 뒤쪽에 있는 사진 하나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해리는 재빨리 그것믈 잡아챘다.
 그레고로비치의 창턱 위에 도사리고 있던 바로 그 젊은이, 금발의 잘생긴 도둑이 은 액자 안에서 해리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저도 모르게 불씨를 들고 있었던 손을 액자 가까이에 가져다 댔다. 불씨의 움직임에 따라 사진 속 인물의 고개가 미미하게 옆으로 움직였다. 귀족적이면서도 묘하게 수성(獸性)을 숨기고 있는 듯한 용모였다. 조각같은 이목구비에 음영이 짙게 드리워진 탓에 청년은 몹시 강렬한 인상을 풍겼다. 해리는 이 젊은이를 전에 어디서 보았는지 퍼뜩 생각났다. <알버스 덤블도어의 삶과 거짓말>에서 이 젊은이는 십대 소년이었던 덤블도어의 곁에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그렇다면 사라진 사진들이 모두 어디에 있는지 이제 명확해졌다. 바로 리타의 책에 실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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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는 사진을 찾기 위해 책장을 휙휙 넘겼다. 거의 단박에 그가 찾고 있던 그 사진이 딱 눈에 들어왔다. 다시 봐도 놀라울만큼 청순한 외모의 어린 덤블도어와 그의 잘생긴 친구가 마치 오늘 처음 만난 사이처럼 미묘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사진이었다. 해리는 재빨리 사진 밑에 실린 설명을 보았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의 알버스 덤블도어
 그의 친구인 겔러트 그린델왈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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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는 나이든 교장 선생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다른 의자에 앉았다. 덤블도어의 긴 은색 머리카락과 턱수염, 반달 모양의 안경알 너머 꿰뚫어보는 듯한 하늘빛 두 눈과 휘어진 코, 모든 것이 그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심지어 그의 양손 모두 다친 데 하나 없이 깨끗했다. 하지만……

 "그런데 교수님, 어려서 제 생각보다 훨씬 예쁘셨더라고요."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아차 싶었으나 정작 덤블도어 본인은 별로 기분이 상하지는 않은 눈치였다. 익숙한 노인의 얼굴이 다정한 웃음을 머금은 채 해리를 돌아보았다. 이제껏 몇년간 봐왔던 그 얼굴 뒤로 언뜻 그 사진 속 소년의 청신한 이목구비가 스쳐지나가는 것 같아, 해리는 잠깐 눈을 깜박였다.

 "네가 그랬다면 정말 그랬겠구나, 해리."
 "어…… 죄송해요, 교수님. 그렇지만 정말 너무 의외여서……"
 "너무 오래전이어서 예전의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잊고 있었는데."

 덤블도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기억을 되새기는 듯 먼 곳을 바라보는 눈매를 바라보며 해리는 불현듯 깨달았다. 그 사진 속에서 소년 시절의 덤블도어가 정면을 향해 보내고 있던 눈길, 그것은 다름아닌 사랑에 빠진 듯한 눈이었다. 그리고 그 연정이 향했을 대상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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