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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한 사람의 개인이 희생되어야만 한다면? 공리주의적으로 보자면 당연히 세계를 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일개 개인이 전 세계보다 더 중요한 무게를 지니고 있을 리가 없으므로. 하지만 그 개인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면, 세계를 등지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상대라면. 그가 없는 세계에서 홀로 살아가게 되느니 차라리 그 상대와 같이 세계의 멸망을 지켜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는 늘 그렇게 생각해왔다. 누군가의 희생으로만 뒷받침될 수 있는 세계라면 애초에 그렇게 지켜져야 할 가치조차 없다고.

 "……그러니까, 말했잖아. 알버스. 예전부터 쭉."
 "겔러트."
 "너 혼자서 세상을 구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 이 세계에는 그럴만한 가치도 없고."

 시시하고 하찮은 이야기다. 그는 곱씹었다. 그런 류의 이야기는 이미 차고 넘치게 많았다.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한 개인이 스스로를 희생하고, 세계는 구원받는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끝. 진부하고도 하잘 것 없었다. 과연 남은 사람들 중 몇이나 그 세계가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것이며 감사할 것인가. 아마 다음날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톱니바퀴와도 같은 기존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게 될 것이다.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텐데. 그런 수고 따위는.
 겔러트는 고개를 들어 상대를 응시했다. 나의 하나뿐인 벗, 나의 이해자, 쌍둥이 별자리와도 같은 나의 반쪽. 알버스. 물에 빠진 사람처럼 핏기없이 창백한 얼굴 가운데 눈매만이 또렷했다.

 "난 너 안 죽여. 아무리 세계의 안위가 달려있다고 해도 말이지. 누군가 한 사람이 십자가를 메야만 비로소 돌아갈 수 있는 세계라면 그게 더 비정상이라고. 진작 망했어야 해."

 애초에 그 전제 자체가 우습기 짝이 없었다. 5분 내로 널 죽이지 않으면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 그럼 멸망해 버리라지. 겨우 이런 세상 따위를 구하기 위해서 내가 그렇게 행동할 것 같아보였나. 겔러트는 오른손에 들고 있었던 피스톨을 망설임없이 지면에 내던졌다. 총신이 바닥에 부딪히는 둔탁한 금속성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세상의 마지막 순간을 단둘이 함께할 수 있는 것도 꽤나 로맨틱한 경험이겠는데. 안 그래?"

 처음부터 비교할 가치조차 없었다. 어차피 네가 없는 세계는 내게 있어 더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제가 바닥에 떨어뜨린 권총에 알버스의 시선이 물끄러미 머물렀다. 그 시선을 가로막기라도 하듯 겔러트는 앞으로 한발짝 내딛었다.

 "친애하는 알버스, 그렇게해서까지 네가 세계를 구원해야할 이유는 없어."
 "겔러트. 제발."
 "이 세계 따위에, 네가 이렇게 몸바쳐서까지 구해야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네가 그렇게 간절하게 몸 바쳐 세계를 구하고자 한다면 세계야말로 널 위해 바쳐져도 된다고 생각해."
 "나, 나는……"
 "조금 더 이기적으로 굴어도 괜찮아. 넌 성자일 필요도, 영웅이어야 할 필요도 없고 메시아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러니까 울지 마. 알버스."

 울지 마, 그는 다시 한번 속삭였다. 팔을 뻗자 상대의 눈가에 닿았다. 손끝에 선연하게 물기가 묻어났다. 너는 그게 문제야. 항상 제일 앞에서 나서서 뭐든 짊어지려고 하니까. 때로는 강박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책임감이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 왜 항상 네가 모든 걸 해결해야하는지 전부터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꼭 네가 전부 해야 해? 남들에게 하라고 해. 네 노고를 그들이 알아주기나 할 것 같냐고, 그렇게 말하면 분명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웃어보일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지만 오히려 이런 기회가 찾아와서 다행인 것일지도 몰랐다. 나에게는 네가 제일 소중한데, 그동안 너는 세상에 헌신하느라 너무 바빴으니까. 아마 나와 이 세계를 저울질해야만 한다면 넌 틀림없이 세계를 고르겠지. 내게 조금은 미안해할 것이고 슬퍼도 할 것이다. 그래도 그 결정을 철회하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나는 아니야. 내겐 네가 제일 중요해, 이 세계 전체보다도 더. 소리없이 울고 있는 상대를 그대로 끌어당겨 안았다.

 "괜찮아."

 알버스의 등을 토닥여주며 그는 힐끗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어느덧 분침은 1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럼 이제 최후의 1분을 어떻게 보내야 잘 보냈다는 소리를 들을까. 이정도면 생을 마감하는 방법으로 그다지 나쁜 결말은 아니다, 되새기며 겔러트는 곧 다가올 마지막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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