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들에 대하여.

 솔직히 말해서, 해리가 느끼기에도 그린델왈드의 성정은 다소 괴팍했다. 몇십년 동안 자신이 세운 감옥에 홀로 갇혀있었다면 그 누구라도 -그 대단한 멀린이라도해도- 성격이 괴벽스러워질 것 같기는 했지만 그가 유난히 까탈스러워지는 부분이자 스위치가 눌리는 화제는 하나였다. 덤블도어.
 알버스 덤블도어. 금세기 가장 위대한 대마법사이자 현자였으며 호그와트의 하얀 무덤에 묻혀 영원한 안식을 찾은 전 교장. 그가 사망한 직후 마법부는 발칵 뒤집혔다. 볼드모트가 돌아왔다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서 마법세계를 수호할 만한 능력을 갖춘데다 유일하게 그 사람이 두려워하는 인물인 덤블도어가 사망하다니? 호그와트가 가장 안전한 장소라는 것도 다름아닌 그가 교장으로서 버티고 있기에 나온 말이 아니었는가. 그 와중에 덤블도어의 충실한 애제자인 해리마저 마법부의 마스코트가 되길 거부하며 그들이 내민 손길을 뿌리쳐버리자 마법부는 정말로 다급해지고 말았다. 그렇기에 정신 나갔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와일드카드를 꺼내드는 초강수를 두었고 그들이 소환한 조커는 다름아닌 지금 해리의 눈앞에 있는 그린델왈드였다. 이이제이, 현 어둠의 마왕은 전대 어둠의 마왕으로 제압한다. 정말이지 평상시라면 그 누구도 찬성하지 않았을 만한 미친 계획이었다. 그린델왈드는 후배격인 볼드모트에게 왕좌를 빼앗겼을 뿐이지 역대 가장 위험한 어둠의 마법사 중 하나였으며, 아무리 오랫동안 누멘가드에 갇혀있었다고 해도 그런 그를 외부에 풀어놓는다는 것은 사나운 맹수를 도시 한가운데 풀어놓는 것과 진배 없는 행위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스크림저는 해냈다. 호위 한 사람 없이 홀로 누멘가드로 향한 스크림저는 1시간 가량 독방에 있던 그린델왈드와 독대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무슨 제안을 했고 무슨 거래를 했는지는 그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렇게 볼드모트를 쓰러뜨리는 것을 조건으로 한 그린델왈드의 조건부 일시 석방은 마법부 장관의 단독승인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린델왈드는 풀려난 이후 바로 호그와트로 찾아왔다. 정확히는 해리에게. 오랜 독방생활로 인해 성마르긴 했으나 유난히 형형한 벽안의 노신사, 그것이 해리가 본 그의 첫인상이었다.


 "해리 포터… 너를 안다. 살아남은 소년."
 "당신은……"
 "상황이 별로 여유롭지 않으니 긴 말은 하지 않으마. 나는 겔레르트 그린델발트, 너희 영국인들은 그린델왈드라고 부르더군. 그건 그렇고 덤블도어가 네게 유지를 남겼다고 들었는데."


 그와 조우한 이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헤르미온느와 론은 해리가 그린델왈드와 단둘이 떠난다는 것에 매우 우려를 표하며 자신들도 함께하겠다고 했으나 해리는 친구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미 시리우스와 덤블도어를 잃었고 더이상 아무도 잃고싶지 않았다. 특히 절친한 친구들이라면 더욱 그랬다.
 볼드모트를 처리하기 위해 풀어야할 수수께끼는 총 7개중 아직 남아있는 호크룩스들, 그리고 세가지 죽음의 성물이었다. 비록 반세기 가량 감옥에 홀로 갇혀있었다고 하나 그의 지성은 매우 비상했으며 날카로웠다. 만약 그린델왈드 없이 해리 혼자 혹은 친구들과 여정을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매우 막막했겠지. 벨라트릭스의 금고에서 황금 잔을 훔쳐내고 로켓을 비롯한 호크룩스를 하나하나 파괴할때마다 해리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점점 끝에 가까워지고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어져온 질긴 악연을 청산할 때가. 나는 끝에서 열린다, 스니치에 새겨져 있던 문구의 뜻을 실감했을 때의 기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자신이 죽어야만 볼드모트를 진정으로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그건 아플까요? 죽는 거요."
 "아직 죽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만, 한 가지는 약속해줄 수 있겠구나. 포터. 나는 사실 이제까지 네가 7번째 호크룩스가 아닐까 생각해오고 있었다. 그가 네게 살인저주를 쓴다면 아마 너는 죽겠지만 그건 너만의 죽음이 아니라 네게 들러붙어 있는 그자의 추악한 영혼쪼가리의 죽음이기도 하겠지. 전에 너는 전에 그자가 네 피를 뽑아갔다고 말했었어. 알다시피 너와 그자의 혈관에 흐르는 것은 고대의 보호 마법이다. 그렇다면 그자가 살아있는 한, 포터 너 역시 진정으로 죽지 않을 거다."
 "그게…… 정말인가요?"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지만 내 생각은 그렇단다. 아마 알버스도 나처럼 생각했을 게야. 하지만 네가 한번 죽음을 맞이해야한다는 것이 달라지지는 않는단다, 살아남은 소년. 지금 네가 여기서 도망친대도 나는 널 말리지 않을 거다. 그럼 각오는 되었나?"
 "-되었습니다, sir."


 그렇게 해리는 그 숲에서 한번 죽음을 맞이했고, 1살 때부터 그에게 들러붙어있던 영혼 쪼가리를 털어낸 채 다시 옛 은사님의 불사조처럼 도로 부활했다.
 그리고, 그날밤 볼드모트는 죽었다.


 "…저는 딱총나무 지팡이를 도로 제자리에 가져다 놓을 계획입니다."
 "아주 현명해. 제자 하나는 잘 키웠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알버스?"


 감격에 찬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있던 덤블도어의 초상화가 두 사람을 향해 환하게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가 딱총나무 지팡이를 꺼내 원래 자신의 지팡이를 고치는 동안 그린델왈드는 초상화를 향해 앞으로 한발짝 내딛었다.


 "내가 너무 늦었지, 나의 오래된 벗이여…… 그동안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해왔어. 내가 네게 상처를 준 것들, 그리고 내가 했던 이기적인 행동들에 대해."
 "……겔러트."
 "이렇게라도 늦게나마 너와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알버스, 나는 그날 이후 너를 한번도 잊은 적 없어."


 그를 알게 된 이후로 해리가 들은 가장 절절한 목소리였다. 그린델왈드의 목소리에서는 여러가지 감정들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깊은 회한, 후회, 미련, 그리고 미안함. 해리가 알고 있는 두 사람의 관계란 고작 소년시절 두어달 정도 함께 여름을 보냈다는 것 뿐인데, 서로를 응시하는 둘의 눈빛은 한없이 깊어 보였다. 마치 그들만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어쩌면 해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그들의 관계에 심오한 뭔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미안해, 알버스."


 다름아닌 덤블도어에 의해 반세기간 유폐되어있었던 전대 마왕은 그 초상화를 향해 끓어오르듯 잠긴 목소리로 사죄했다. 아까까지 해리를 향해 한없는 애정과 자랑스러움이 담긴 눈빛을 보내고 있었던 교장선생님의 초상화는 어느덧 도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미 교장실은 오직 그와 그만이 존재하는 공간과도 같았다. 해리는 조용히 지팡이들을 챙긴 채 뒷걸음질치듯 교장실을 빠져나왔다. 문을 닫는 순간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나지막한 흐느낌이 한숨처럼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그 이후 덤블도어의 초상화와 그린델왈드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는지 해리는 알 수 없었다.
 결국 마왕은 패배하였으며 살아남은 소년은 이번에도 역시 살아남았다. 또한 볼드모트를 쓰러뜨린다는 조건으로 일시 가석방되었던 그린델왈드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마법부의 사면을 통해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다시 그를 누멘가드로 돌려보내야한다는 의견 역시 분분했던 가운데 그린델왈드가 온전히 사면되기까지는 볼드모트를 패퇴시킨 장본인인 해리의 발언 역시 한몫하였다. 국제 요인들도 다수 모인 마법부 주관 회의에 출석한 해리는 그린델왈드가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 함께하는 동안 그가 어떤 태도를 보였으며 이미 그는 더이상 마법세계를 위기에 빠지게 할만한 위험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살아남은 소년이자 선택받은 자, 그리고 석방된 상태의 그린델왈드와 오랜기간 함께 지냈던 해리 포터의 발언은 반대파를 수그러들게 할 정도의 무게를 충분히 지녔다. 몇시간 가량 지속된 회의가 끝나고 비로소 자유인으로 풀려난 그린델왈드는 다소 개운한 표정이었다.


 "내 편을 들어줘서 고맙구나, 포터. 이 얼마만에 만끽하는 자유로운 햇살과 공기인지!"
 "그동안 저를 많이 도와주셨으니까요. 만약 없으셨다면 쉽게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때, 교수님이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되길 바라실 것 같았어요."
 "…그러고 보니 너는 그의 애제자라고 들었는데 정작 포터 네 입에서 그와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구나. 이제 내게 남는 것은 시간뿐이니, 종종 이 늙은이와 말벗이라도 해주는 건 어떻겠느냐?"


 그것이 그린델왈드와 해리가 맺은 기묘한 관계의 시작이었다. 거의 증조부와 증손자 수준의 나이차, 국적, 상이하게 다른 살아온 경험 등 너무나 다른 두사람의 관계는 우정이라기에도 미묘하고, 동지애라고 하기에도 애매했지만 그들은 알버스 덤블도어라는 하나의 연결고리를 공유하고 있았다. 그리고 그들을 연결해주는 공통분모는 해리와 그린델왈드의 인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2,3일에 한번씩 그린델왈드는 해리를 찾아왔다. 그의 방문은 오전일 때도 있었고 오후일 때도 있었으며 늦은 저녁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주로 버터맥주를 마시며 앉아서 수시간동안 대화를 나눴다. 주된 화제는 역시 덤블도어와, 그들이 덤블도어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이었다. 해리가 아는 은발의 현자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가 알고 있는 소년 덤블도어는 서로 다른 시간축의 인물이었으므로 항상 이야기는 새로웠다.


 "그래서 제가 처음 입학했을 때의 일인데요, 글쎄 처음 일어서서 그분이 뭐라고 말씀했는지 아세요? 바보, 울보, 떼쟁이 다 환영한다고 하셨다구요! 솔직히 전 그때 교수님이 좀… 미친 줄 알았어요. 반장이었던 퍼시 형도 제게 그랬었다구요 살짝 미쳤지만 그래도 위대한 분이랬나."
 "허, 놀랍구나. 알버스가 그런 말을 했다고?"
 "그렇다니-"
 "그런데 미쳤다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아는 그는 미치지 않았어!"


 다시 반복하지만 그린델왈드는 평소의 여유있는 모습과는 다르게 덤블도어와 관련된 화제에 있어서는 괴악하다 싶을 정도로 까탈스러웠다. 특히나 약간이라도 부정적인 소리가 나오면 참을 수 없어 했으며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생전에 누군가와 가깝게 지냈다는 이야기를 가장 싫어하는 듯 싶었다.


 "선생님 -여러번의 애매한 호칭 정리 끝에 해리는 그를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정말로 교수님이 미쳤다고 한 게 아니라니까요? 제 친구인 론은 교수님이 좀 맛이 갔다고 항상 주장했지만, 아차."
 "그녀석 여기로 불러라. 당장."
 "제발 좀 진정하세요……"


 해리는 절친이 눈앞에 나타나면 당장 용서받지 못할 저주라도 쏴버릴 것처럼 언짢아보이는 그린델왈드를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2학년 때 비밀의 방 사건으로 인해 덤블도어가 물러난 적이 있었다고 하니 노발대발한 적도 있었고, 교수님의 불사조가 바실리스크에게 물린 자신을 치유해줬다고 한 순간 그가 던진 말은 걸작이었다.


 "왜 알버스의 불사조가 널 구해줬지? 포터 넌 그와 아무 사이도 아닌데?"
 "아무 사이까지는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제자입니다만."
 "그놈의 제자, 제자, 제자! 지겹구나! 예전에 뉴욕에서 만난 알버스의 제자 놈도 꽤나 마음에 안 들었지! 이름이 스캐맨더였던가? 이래서 애초에 교수직을 맡지 못하게 했어야했는데! 원 사방에서 다들 그의 제자라고 우기니!"


 5학년 때 D.A클럽 이야기를 하자 그는 뭔가 나름대로의 상념에 빠진 듯했으며('그래, 그 클럽명이 덤블도어의 군대였단 말이지…?'), 6학년 때 있었던 해리와의 개인 교습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안타까울 정도로 괴로워했다('그래서 그의 기억도 같이 들여다보았다는 게냐? 젊은 시절의 그도 보았어?').
 그리고 마침내 덤블도어의 죽음에 대해 해리가 입을 열었을 때 그는 보기 드물게 침통한 표정으로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해리 역시 누군가에게 은사님의 마지막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인페리우스들이 가득찬 호수와 그것들이 호위하고 있던 볼드모트의 호크룩스…… 그리고 그 물을 마시고 괴로워하며 헛소리를 하던 난생 처음 보는 덤블도어의 약한 모습, 그리고 그 높은 탑에서 떨어져내리던 마지막 최후까지.


 "아마…… 그는 그것을 마시고 열일곱 살 때의 환영을 보았던 것 같구나. 내가 그와 그의 남동생을 공격했던 그 순간으로."
 "……"
 "내가 어리석었지. 열여섯 살 때의 나는 성급했으며 부족하기 그지 없었어. 전부 다 내 잘못이다. 그가 살아있을 때 한번도 이에 대해서 사과한 적이 없구나…… 그 일이 있은 후 바로 영국을 떠나버렸으니."


 조용히 시선을 내리깔고 참회하듯 읊조리는 그린델왈드는 그 순간 평범한 노인처럼 지치고 괴로워보였다.


 "그렇게 갔구나, 알버스는. 그 반지만 끼어보지 않았더라도 그는 아직까지 살아있었을 텐데. 부디 그의 마지막이 너무 고통스럽지 않았다면 좋으련만……"
 "저도 그랬기만을 바라고 있어요. 지금까지도."


 해리 역시 조용히 말을 덧붙였다. 호크룩스가 된 마볼로의 반지를 껴본 순간 이후로 이미 각오한 죽음이라고는 하나, 스네이프의 주문을 맞고 탑에서 추락하면서 덤블도어는 과연 무슨 기분이었을까? 새삼 심장 한구석에 묵혀두었던 슬픔이 북받쳐오르는 기분이었다. 덤블도어와 가장 깊은 관계를 유지했었던, 살아남은 두 사람은 한동안 깊은 침묵 속에서 오래전에 떠난 자를 애도했다.


 "그러고보니 선생님은 그분의 무덤에 아직 찾아간 적 없으시겠네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구나."
 "괜찮으시다면 이번 주말에 함께 찾아가지 않으실래요…? 그분은 호그와트에 묻히셨어요."


 덤블도어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았던 애제자가 제안했고 덤블도어의 열일곱 여름을 공유했던 전대 마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와 그린델왈드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각자의 버터맥주 잔을 들어올려 부드럽게 부딪혔다. 언제나와도 같은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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