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에서 본 E메레ㅅ가 넘 취향이라 썼는데 알고보니 7ㅣ숙사별 반응인듯ㅠㅅㅠ 그래도 그냥 올린다

1.난 너를 위해 죽을 수 있어

 가끔 생각하는건데 난 너를 위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진지한 눈빛으로 고백하듯 말해오던 소년의 표정을 기억한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 사실 너처럼 마음이 맞는 사람은 처음 만나거든. …농담이야, 그냥 농담이라니까! 겔러트 그린델왈드는 어릴 때부터 주위의 사람들을 체스말처럼 이용하는 데에는 충분히 도가 튼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상대가 수줍은 듯 하면서도 막힘없이 속내를 고백해왔을 때 드디어 됐다, 하고 쾌재를 불렀다. 농처럼 말하는 척 했지만 아마도 진심이겠지. 언젠가부터였을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묘한 들뜸이 섞여있었다는 것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으니까. 열일곱 소년은 자신을 응시할 때마다 무장해제된 듯한 민낯을 얼핏 내비치고는 했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약간이나마 감정의 조각들을 내어준다면, 역시 나도 널 사랑한다고 믿게 만든다면 틀림없이 제 몸을 타오르는 불길에 던지고도 남겠지. 불사조는 스스로 불타오르고 새로이 태어나지만 소년은 불사조가 아닌 한낱 사랑에 눈먼 인간이었다. 자신이 원한다고 말하면 자신의 목덜미를 순순히 내어주고도 남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당장 이 자리에서 사랑해, 라고 거짓으로 속삭인 후 가느다란 목줄기를 두 손으로 감싸쥐고 조른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거라고. 너는 날 위해서 죽을 수 있을만큼 나를 사랑하니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너는 기꺼이 날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그저 앞으로의 청사진을 위해 너를 이용하는 것 뿐이라고. 하지만 되돌아보면, 지금 다시 생각하면 정말 그랬나?
 자신이 세운 탑에 반세기 가까이 유폐되어있던 몰락한 마왕은 눈을 떴다. 언제나처럼 환영을 보았다. 그래, 오고 있구나. 네가 올 줄 알았다. 언젠가는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지. 한때 아름다웠던, 지금은 너무나 노쇠해버린 전대 마왕은 제게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반가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왜 굳이 자신을 방문하는지 이유는 뻔했다. 하지만 알려줄 수는 없었다. 그로 인해 자신이 죽게 된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반가운 일이다. 곧 너를 만나러 갈 수 있으니까. 나는 너무나 오래 기다려왔다. 언젠가 널 위해서 죽을 수 있다고 속삭이던 소년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는 죽음을 팔벌려 환영했다.



2.너를 위해서 내가 죽여줄 수 있어

(AU)
 한때 톰 마볼로 리들이라는 이름을 지녔던 소년은 이제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하고 잔인한 존재가 되었다. 이제 아무도 그의 본명을 부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신 다른 이름으로 그를 불렀다. 볼드모트 경, 그리고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의 스승이기도 했던 호그와트의 교장 알버스 덤블도어는 아직도 볼드모트를 본명으로 지칭하는 몇 안되는 소수였으며, 그의 파트너이자 호그와트의 교수인 겔러트 그린델왈드 역시 그러했다. 아직 볼드모트 경이 10대 학생이었을 때 그린델왈드는 종종 소년에게서 자신을 보고는 했다. 리들에게서는 위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때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소년은 어둠의 마법에 깊이 탐닉되어 있었으며 사람들을 홀려 제 수족처럼 조종했고 자신의 출중한 매력을 무기처럼 활용했다. 비슷한 자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듯 동족을 알아본다. 소년은 그와 동류였다. 아마 알버스가 없었다면 자신 역시 소년과 비슷한 길을 걷고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역시 그가 말리든 말든 진작에 죽여버렸었어야 했어. 그랬다면 소년이 커서 사람들을 위협하는 마왕이 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의 파트너는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은근 무른 구석이 있었다. 누군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아도 한번 더 믿어주고 감싸주는. 네 방식은 잘 알지만 그 녀석에게만큼은 예외였어야했어.

 "겔러트."
 "알버스, 널 위해서 내가 죽여줄 수 있어. 한 마디만 해. 그 꼬맹이 죽여버릴 거니까."
 "겔러트. 진정해."

 폭풍처럼 교장실에 들이닥친 그린델왈드는 사납게 말을 토해냈다. 손끝을 모으고 제 책상에 앉아있던 덤블도어가 차분하게 대꾸했다. 진정하라고?

 "당장 가서 놈의 모가지를 따버리겠어. 그 잔당들도 같이."
 "전에도 말했었지. 이미 기사단원들도 몇 잃었는데 겔러트 널 혼자 보낼 수는 없어."
 "내 실력을 못 믿는거야?"
 "믿어. 하지만 너까지 잃으면 나는?"

 폭풍전야와도 같은 침묵이 찰나 교장실을 맴돌았다. 그들이 이렇게나 팽팽하게 대립하는 것은 별로 있지 않은 일이었기에, 갈등은 더욱 첨예하게 느껴졌다.
 결국 백기를 든 것은 그린델왈드 쪽이었다.

 "좋아. 네 말대로 할게. 하지만 내 말은 진심이야."
 "고마워."
 "천만의 말씀을."

 웃어보이는 낯빛이 더없이 온화했다. 내 세계에서 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이미 그 땅을 밟은지 몇십년은 된 듯한 조국이든, 이 학교든, 학생들이든, 이 세상이든. 내가 볼드모트를 신경쓰는 것 역시 네가 신경쓰니까, 네가 그를 막고싶어하니까. 볼드모트가 머글들을 학살하든 말든 사실 그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알버스 덤블도어가 그 행위를 중요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는순간 그에게도 위협이 되었으며 상대는 적이 되었다. 네가 부탁만 한다면 누구든 죽일 것이고 또 누구든 살릴 것이다. 설령 자칭 죽음을 먹는 자들이 되었든 동료라는 자들이 되었든. 그린델왈드는 본디 자아가 강했다. 야생마같은 성정의 그를 이 곳에 묶어두고 있는 것은 연대의식도, 얄량한 정의감도 아닌 단 한 사람의 존재 뿐이었다. 불사조조차 길들이는 데 성공한 단 한 명의 대마법사에게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목줄을 내어주고 있었으니까.
 sed tantum dic verbo, et sanábitur ánima mea.



3.우리 둘다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게

(if)
 세상이 정지했다. 쉴새없이 쏘아지던 주문들이, 맹렬하게 흩날리는 공기의 흐름이, 용솟음치는 불꽃이, 아래서 부서져내리는 오래된 건축물들의 부식 역시 멈춰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오직 단 한마디의 말 때문에.

 "…뭐라고?"
 "사랑한다니까. 널."

 그 자연스러운 한 마디가 가장 위대하다고 칭송받던 마법사의 손끝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네가? 날? 왜? 그럴리가 없는데.

 "거짓말이지."
 "내가 이런 상황에서 거짓을 입에 올릴 인간으로 보여? 알버스?"

 그렇지 않아, 라고 말하고 싶어도 입이 쉽게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와 함께 보냈던 불과 두 달간의 여름은 벌써 40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그때는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지. 한때 아도니스처럼 아름다웠던 소년은 어느덧 성장하여 성인이 되었고, 가장 위험하고 사악한 어둠의 마법사로 이름을 날리며 유럽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는 교활한 마왕이었으며 따라서 지금의 발언 역시 결투 중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려는 술수여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과 눈빛에서 거짓이 읽히지 않았기에 그는 더욱 동요했다.

 "그동안 많은 생각을 했지. 그리고 나는 네게 사과할 게 너무나 많다는 생각도 했어."
 "……"
 "그래서 네게 한가지 선물을 주려고 해."
 "-잠깐, 안 돼! 겔러트…!"

 겔러트 그린델왈드의 손이 쥐고있던 지팡이가 슬로모션처럼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그는 40여년 전의 소년처럼 매혹적으로 웃으며 느리게 팔을 벌렸다. 희극배우처럼 과장된 듯 하면서도 우아한 동작이었다.

 "네 승리야, 알버스. 내가 네게 줄 것은 내 패배 그리고 내 목숨줄."
 "무슨……!"
 "날 막을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언제나 생각해왔으니까. 오늘 네 손에 죽는다면 영광이겠지."

 마법사들 사이의 결투에서 지팡이를 내려놓는다는 것에 대체 다른 의미가 또 무엇이 있을까. 함정인가 싶기에 눈앞의 그는 너무나도 태연했고 또 자연스러웠다.

 "……이러지 마. 우리 둘다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게, 제발."
 "이미 늦었어. 너도 잘 알잖아."

 그린델왈드는 얼어붙은 듯 굳어버린 옛 벗에게 못박듯이 다시 속삭였다.

 "승리자가 된 걸 축하해. 알버스."
 


4.난 너와 함께 죽을게

 이대로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너 없이 계속 살아가느니. 저절로 울음이 터져나올 거 같아 이를 악물었다. 그가 떠났다. 싸늘하게 식은 여동생의 시신이 담긴 관이 집 밖으로 운반되어 나가고, 소규모의 장례식이 치러진 지 24시간도 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대체 언제 떠난걸까, 그 일이 벌어진 당일? 아니면 장례식 당시? 혼란스러운 가운데 최초의 충격이 가시자 그의 생각부터 하는 자신에 대한 지독한 자괴감이 밀려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남동생에게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쏘고, 나아가 여동생을 죽게 만든 주문을 지팡이 끝에서 쏘았을 지도 모르는 존재였다. 왠지 알버스는 그가 진실을 알고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여동생을 죽인 주문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그 비밀을 품은 채 이 나라를 떠난 것만 같다고. 아마 겔러트 그린델왈드는 다시는 이 나라에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막연한 예감이 불길하게 엄습했다. 여동생의 죽음에 충격받고 슬퍼하면서도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내가 네 손에 죽었다면 좋았을텐데. 아리아나가 아니라 차라리 내가 죽었다면 좋았을거야. 차라리 그 자리에서 너와 함께 죽었다면 이렇게까지 괴롭고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는 나의 유일신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네가 없이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돌아와 줘, 겔러트. 너 없이 홀로 백년을 사느니 여기서 죽어버리는 것이 나아. 아직 어린 여동생의 심장이 멎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에 대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하지만 한번 밀물처럼 밀고 들어온 감정의 폭포수는 알버스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떠나버린 그가 보고싶었고 동시에 아직도 그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이대로 죽고 싶어. 네 곁에서. 치밀어오르는 슬픔을 참으며 소년은 고요히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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