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Greater Good.



  모든 사람은 소울메이트의 이름을 신체 어딘가에 지니고 살아간다. 태어날 때부터 그 이름을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으며, 유소년기를 보내며 피부 표면에 떠오르기도 하고 드물게는 성인이 되고나서야 뒤늦게 소울메이트의 이름을 알게 되는 케이스 역시 존재한다고 했다. 그 형태 또한 다양하여 풀네임일 때도 있고 단순한 성씨나 이름일 때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이니셜만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그의 몸에는 글자 비슷한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소울메이트의 존재같은 뜬구름에 얽매이기에 소년에게는 지나치게 신경써야할 것들이 많았었다. 반 머글주의자라는 오명 하에 아즈카반에 수감된 아버지,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여동생. 철없는 남동생, 여동생에게 하루종일 매여사는 어머니. 소년은 호기심어린 시선과 악의가 깃든 수군거림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항상 고결하고 완벽해야했으며 타의 모범이 되는 우등생이 되어야만 했다. 처음에는 그런 목적이었다해도, 곧 머리를 쳐든 자아실현과 명예에 대한 욕망은 어린 천재에게 수없이 많은 상장과 트로피를 안겨주었다. 그는 세기에 한번 등장할법한 천재였으며 자신의 능력과 지성을 세상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반장과 학생회장 타이틀을 거머쥐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국내외 대회를 석권하며 영예와 영광을 누리던 그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몸에 알파벳 한글자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세상에는 한낱 파트너를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로 가득했으므로. 적어도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불의의 사고로 인해 발이 묶이게 될 때까지는 그랬다. 본디 어머니의 것이었던 굴레는 이제 소년의 목을 뱀처럼 휘어감고 조여왔다.
 미래에 대한 꿈마저 접어버린 채 가장이 된 첫날밤, 불안정한 여동생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나서던 순간 갑작스레 쇄골 부근에 화끈거리는 통증이 일었다.

 "아……"

 알파벳 G.G, 우아하고 화려한 글씨체로 휘갈겨 쓴 듯한 이니셜이 쇄골 아래에 화인처럼 떠올라 있었다. 신체에 새겨지는 소울메이트의 이름은 다름아닌 소울메이트 본인의 글씨체라고 했었던가. 하지만 이제서야 왜? 어차피 나는 여기에 평생 묶여서 벗어나지도 못할 몸인데. 한평생 집에 틀어박힌 채 누굴 어떻게 만나란 말이야. 거울을 무기력하게 응시하며 그는 다시 한번 누구인지도 모를 소울메이트의 이니셜을 입안으로 발음했다. G.G. 과연 풀네임은 뭘까. 상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생겼을까. 그 의문들이 풀리게 되는 것은 몇 주가 흐른 이후의 일이었다.

 "-그래서 네게도 소개해주고 싶었단다. 이쪽은 덤스트랭에 다니고 있는 내 대조카란다. 겔러트, 너도 인사하렴."
 "안녕, 겔러트 그린델왈드라고 해."

 G.G. 겔러트 그린델왈드(Gellert Grindelwald). 그는 그답지않게 동요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눈앞의 또래 소년을 홀린듯이 응시했다. 마주한 눈동자는 푸르렀다. 같은 벽안이어도 하늘색에 가까운 자신과 다르게 심해처럼 깊고 진한. 일광을 받은 금발이 마치 순금을 녹인 것처럼 화려하게 빛을 발했다. 여름철 햇살 아래의 열여섯살 소년은 더할 나위없이 찬란하고 황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에 찰나 숨이 막힐 정도로. 한때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던, 소년의 하나뿐인 소울메이트가 기적처럼 제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소년의 세계는 뒤바뀌었다. 삶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아직 겔러트 그린델왈드를 알지 못했던 순간들과 이제 겔러트 그린델왈드가 존재하는 삶. 17년간 이성과 지식이 지배하는 상아탑에서만 머물다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낯선 외부 세계에 발을 디딘 그에게 있어 사랑은 그저 어렵기만 했다. 사랑이 주문을 암기하고 활용하는 것처럼 쉽기만 했다면. 예민한 어린 천재는 밤마다 연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을 지새웠다. 비밀스러운 나만의 소울메이트, 네 몸에도 내 이름이 새겨져 있을까? 소년은 끝내 그 질문만은 물어볼 수 없었다. 만약 내 소울메이트가 너라고, 내 몸에 네 이름이 있다고 고백해버리면 그의 사랑이 이대로 날아가버리기라도 할까봐.
 우리는 '더 큰 선을 위하여(for the greater good)' 권력을 잡는거야, 그는 상대에게 보낼 편지에 천천히 문장을 써내려갔다. 이 글귀를 생각해낼 때까지 며칠이 걸렸고, 편지지에 실제로 문구를 적어서 보내기로 결심할 때까지 또다시 며칠이 걸렸다. 더 큰 선을 위하여(For the Greater Good). 혹은 겔러트 그린델왈드를 위하여(For the Gellert Grindelwald). 나의 아름다운 소울메이트에게, For the G.G. 그가 상대에게 건넬 수 있었던 연심의 최대치는 그렇게 활자 한가운데에 잉크와 같이 녹아들었다. 너무나 조심스럽고 서툴며 비밀스러운 고백이었다. 눈치채면 어떡하지 마음 졸이면서도 눈치채줬으면 하는 모순된 감정이 공존했다. 네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해, 하지만 네가 내 마음을 끝까지 알지 못했으면 좋겠어. 겔러트. 너를, 사랑해. 사랑. 이게 사랑이라는 것이라면. 열일곱 해가 지나서야 뒤늦게 지각하게 된 감정의 여파는 지독했다. 낫고 싶지 않은 열병이었고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 환상이었으며 차라리 그 안에 잠겨서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럼 더 큰 선을 위하여."
 "더 큰 선을 위하여."

 화사하게 웃는 얼굴이 그날따라 유난히 눈부시게 느껴져 소년은 눈을 감았다. 내가 위하고 싶은 선은 다름아닌 너야. 불완전하게 전해진 고백 뒤에 숨겨진 진심은 혀 밑에서만 하릴없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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