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지나고 올리는 크리스마스 연성
아리아나가 죽지않은 해피월드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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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거룩한 아기예수의 생일. 마법사들도 이 날을 즐긴다는 것은 모순일까? 머글과 마법사 마을 가리지 않고 크리스마스와 연말 특유의 묘하게 들뜬 듯한 분위기가 고드릭 골짜기의 대기 중에 온통 충만했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실내에 들어와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까 진눈깨비와도 같은 눈송이가 내리는 바람에 화려한 금발이 살짝 젖어 짙은 빛깔로 변한 겔러트는 덤블도어 가에 들어서자마자 품 안에서 지팡이를 꺼내 머리칼과 옷깃을 말렸다. 그린델왈드 넌 또 왜 여길 왔어, 하는 타박이 옆에서 들려왔으나 자연스럽게 무시했다. 벌써 몇 해째 이곳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었으나 매번 들어올 때마다 겔러트를 바라보는 애버포스의 눈초리는 결코 곱지 않았다. 사실 크리스마스에만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 알버스와 같이 붙어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는지라 이미 익숙해졌지만. 뭐, 자기 딴엔 내가 순진한 형을 훔쳐간 날강도라도 되나보지? 이번에도 처남이라고 불러서 살살 약올려줄까 고민하던 도중 날렵한 발소리가 도도도 들려오더니 곧 자그만 실루엣이 겔러트의 품에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겔러트 오빠! 기다리고 있었어!"
 "안녕, 아리아나. 그동안 잘 지냈어? 알버스는?"
 "응, 알버스 오빠는 지금 부엌에 있어! 저녁 준비한다고 우리한텐 들어오지 말랬어!"

 그에게 안긴 것은 하늘하늘한 금빛 머리채와 순진무구해보이는 눈망울이 언제봐도 애버포스와 피가 섞인 남매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덤블도어 가의 막내, 아리아나였다. 네 작은오빠가 여동생의 귀염성을 반만 닮았다면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지…… 아직 어린아이답게 오늘이 크리스마스라서 몹시 신난 기색이었다. 잠깐 네 큰오빠 좀 보고올게, 속삭인 후 동글동글한 아리아나의 정수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준 겔러트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걷지않아 역시 자신이 온 것도 모르고 지팡이를 든 채 부엌에 서서 열중해있는 낯익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뭘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고있을까.

 "안녕, 알버스."
 "아, 겔러트! 생각보다 일찍 왔네."
 "사랑하는 네 덕분이지. 메리 크리스마스."
 "응. 너도… 메리 크리스마스."

 저를 돌아보는 소년의 뺨은 그동안 요리에 열중해있던 탓인지 붉게 상기되어 보였다. 하얀 레이스 식탁보가 깔린 식탁에는 통째로 구운 칠면조 구이부터 시작해서 부쉬 드 노엘, 민스파이, 붉은 포도주까지 다채로운 요리들이 차려져있었다. 오늘이 성탄절이라고 나름 준비한 건가. 혼자 고생 많았겠네, 말을 건네자 알버스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별 거 아냐, 이 정도면 금방 하는걸. 아무래도 애버포스나 아리아나가 도와주는 것보다 나 혼자 하는 게 빠르니까."
 "수고했어. 마무리는 내가 할 테니까 이제 쉬어도 돼."

 어차피 알버스가 거의 다 차려놓은지라 마무리할 것도 거의 없었지만, 지팡이를 가볍게 흔들어 한켠에서 끓고 있던 스튜를 마무리한 후 겔러트는 여유있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보니, 크리스마스인데도 이 집안에는 겨우살이 장식 하나 걸려있지 않았다. 아마 들이닥칠 불청객 -자신- 을 예상해서 애버포스가 기를 쓰고 치워버린 거 같은데…… 날 너무 저평가한 거 아냐, 처남? 그렇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전혀 없지. 입매에 장난기어린 미소를 머금은 채, 겔러트는 여동생과 똑 닮은 선량한 벽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알버스의 머리 위쪽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알버스, 거기 겨우살이."
 "응? 어디에?"

 뜬금없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뜬 상대를 향해 겔러트는 성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천사처럼 상냥하게 웃어보였다.

 "여기 있네."

 어느새 알버스의 머리 위에는 겨우살이 리스가 엔젤헤일로 마냥 한 뼘 정도의 거리를 두고 둥둥 떠 있었다. 마법으로 불러낸 리스를 공중에서 낚아채 붉은 머리칼에 화관처럼 씌워주며 겔러트가 나른하게 속삭였다.

 "오늘같은 날 겨우살이 아래에 있는 상대를 무시하고 그냥 지나쳐버리면 벌 받겠지?"
 "아……"
 "눈 감아, 알버스."

 눈을 감으라고는 했지만 사실 안 감아도 별 상관은 없으니까. 그는 알버스의 허리에 팔을 감으며 그대로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분명 처음으로 같이 보냈던 크리스마스 때만 해도 이렇게 입을 맞추자 완전히 얼어붙어서 어쩔 줄 몰라하며 꼼짝도 못 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몇년간 함께 지내며 익숙해지긴 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목에 어설프게나마 팔을 둘러오는 서툰 모양새가 눈물나게 귀여웠다. 정말이지 어쩌면 좋을까, 너를.

 "아, 형!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아리아나가 배고프다는데 대체 그 자식이랑 부엌에서 뭘 하길래 이렇게 소식이 없……"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가득한 성탄절이었을지 몰라도 마침 타이밍 좋게 형과 형의 남자친구가 키스하고 있는 풍경을 코앞에서 고스란히 목격해버린 애버포스에게는 이제까지 쌓아온 인간에 대한 신뢰와 자신의 시력을 모두 부정하고 싶어지는 끔찍한 크리스마스였다는, 그런 짧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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