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witter.com/Aww_furr/status/821007884704051200?s=09 이 트윗 보고 풀었던 썰+겔 벵갈 닮았다는 모님 말씀 기반 연성해보았읍니다
G와 A 둘이 지지고볶으며 잘 사귀고있는 어딘가의 평행세계 이야기




 시험기간에 바빠지는 것은 비단 그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 뿐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적절한 난이도로, 오류 없이 문제를 선별하여 출제해야 하는 교수들이야말로 진정 바쁜 것일지도 모른다. 학생 때는 그런 거 별로 신경쓰지 않았는데. 애초에 성적에도 관심 없었는데 학교 교수들 사정 따위 내 알바 아니었지. 겔러트는 카우치 위에 나른하게 드러누운 채 교차해 꼬고있던 발끝을 까딱거렸다. 자신만큼 똑똑하고 잘난 파트너를 두고있는 건 좋은 일이지만 이럴 때마다 조금은 짜증이 났다. 대체 그놈의 시험기간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거야?
 그의 파트너인 알버스 덤블도어는 호그와트의 역대 최연소 교수였고, 평소에도 논문이며 국제 심포지엄이며 타국 마법사들과의 학술적 교류 때문에 충분히 바빴지만 학생들 시험기간만 되면 유독 더 바빠졌다. 직접 사무실로 찾아가봤자 지금은 시간이 안되니까 나중에 보자는 상냥하고 완곡한 축객령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 나중이 대체 언젠데? 벌써 며칠째 그 소리만 하고 있잖아. 그런 애들 시험따위, 그냥 아무렇게나 내도 될텐데. O.W.L도 아니고 일개 학기 시험성적 따위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냐고. 그는 불만스럽게 생각하며 반듯한 미간을 찌푸렸다. 알버스가 고작 스무살 밖에 안된 어린 나이로 교수직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많은 것을 증명해보여야한다는 것은 잘 알고있다. 비록 학창시절 내내 화려한 수상경력과 우수한 성적을 자랑하는 우등생이었다 한들, 가르치는 자로서의 소양은 또 별개의 것이니까. 하지만 네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문앞에서 쫓겨나는 내 생각은? 내 생각은 안 해줘? 알버스 너한테는 내가 직장보다, 학생들보다 뒷전인 존재야? 유치한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새삼 억울했다. 쓸데없이 크기만 큰 이 빌어먹을 학교에 애인을 뺏긴 기분이라고! 역시 호그와트에 교수 지원서를 내러가겠다고 했을 때 막았어야 했다. 다른 직업을 찾으라고 할 것을. 아니면 역시 망토자락이라도 붙잡고 늘어져서 어떻게든 내가 널 먹여살릴 테니까 출근하지 말라고 할 걸. 이제와서는 다 부질없는 상상을 하며 그는 불만스레 공중을 노려보았다.
 난 참을 만큼 참았어, 알버스. 다 네 탓이야. 며칠이 지나도록 머리카락 끄트머리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야속한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겔러트 그린델왈드는 이를 갈았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나.


***
 익숙한 교실, 낯익은 복도, 그리고 친숙한 풍경. 처음 호그와트에 교수 지원서를 낼 때까지만 해도 알버스는 자신의 삶이 그렇게 극적으로 변하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학생으로서 지난 7년동안 다녔었던 정든 학교에서 다시금 교수로 재시작하는 셈이니까. 하지만 당연하게도, 교수로서의 삶은 또 달랐다.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게다가 시험문제 출제를 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는지 그는 새삼 실감했다. 적절한 난이도와 학생들간의 고른 성적 분포를 위한 적당한 까다로움, 또한 오류가 없을 것. 이 모든 하위사항을 충족하는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의외로 꽤나 시간을 투자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갓 부임한 신규 교수였을 때, 학생들의 평균 지적 수준과 자신의 지적 수준의 차이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해 호그와트 역사에 길이 남을 악독한 난이도의 시험을 출제했던 경력이 있는지라 더 조심스러웠다. 그 이후 교장 선생님에게 불려가서 꽤나 장시간의 대화를 해야만 했었지…… 별로 회상하고 싶을만큼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그때 이후로 한동안 날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초리도 싸늘해졌던 것 같은 느낌이고. 새삼 되살아나는 최근의 추억들을 되새기며 알버스는 이유없이 치밀어오는 오한에 몸을 떨었다. 그래도 이번 시험은 별 탈없이 끝낸 것 같아 다행이라고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소한 교장실에서 블랙 교장과 불편한 티타임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채점과 성적을 매기는 것 뿐인데 출제하는 것에 비하면 차라리 나은 편이니까.
 그러고 보니, 시험기간 내내 겔러트를 만나지 못했었다는 것에 그때서야 뒤늦게 생각이 미쳤다. 정확히는 자신이 매번 쫓아내다시피한 거였지만… 그래도 네 얼굴을 보고있으면 주의가 분산된단 말이야.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다고. 시험지 채점만 끝내면 빨리 돌아가서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알버스는 제 사무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이게, 대체."

 평소 알버스의 사무실은 주인의 성품을 반영한 것처럼 깔끔하고 단정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져있는 광경은 혹시 자신이 다른 문을 열었나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너무나 이질적인 카오스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까까지만 해도 책상 위에 높게 쌓아올려져있던 서류더미와 시험지 뭉치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다지 넓지도 않은 사무실 바닥 사방에 갈기갈기 찢기고 구겨진 종이들이 잔해처럼 굴러다니고 있었다. 한때는 알버스 자신의 연구논문이었고 학생들이 제출한 시험지였으며 컨퍼런스에 참가하려고 준비했던 자료들이었을테지만, 이제는 휴지쪼가리로밖에 보이지 않는 상태로. 그리고 이 난장판을 만들어놓은 것이 분명한 상대가 천연덕스럽게 책상 위에 앉아서 힐끗 문 쪽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품안에 간신히 들어올만한 사이즈의 벵갈고양이였다. 늘씬하게 쭉 뻗은 몸매와 재규어같은 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진 털결이 매끈하니 꽤나 예쁘장했다. 보석같이 새파란 눈동자 한 쌍이 마치 자신이 이곳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태연하게 알버스를 응시해온다. 건방지고 겁없는 고양이 한 마리가 운좋게 변신술 교수의 사무실에 침입하여 이 아수라장을 만들어놓은 것이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알버스는 이 고양이의 정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겔러트……? 이거 설마 네가 한 짓이야?"

 질문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일반적으로 고양이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고, 대답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냥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지. 변신한 마법사라던가, 끝내주게 잘생긴 동구권 출신 금발벽안의 마법사라던가, 특히 애니마구스인 내 애인이라던가. 자신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는 게 느껴졌으나 알버스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 격앙된 감정을 눈치챘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건지 고양이가 나른하게 하품을 했다. 그리고 마치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울음소리를 흘렸다. 야옹. 왠지 그 사랑스러운 울음소리가 익숙한 목소리로 자동 번역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뭐, 왜, 뭐. 그러니까 진작 나랑 놀아달라고 했잖아. 그 순간 알버스는 폭발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짓이야?! 겔레르트 그린델발트, 너 미쳤어? 제정신이야? 그렇다고 학생들 시험지에 손을 대면 어떡해! 지금 너랑 며칠 안 봤다고 나한테 시위하는거야? 너 때문에 내가 못 살아, 정말!!"

 아, 정말, 내가 미쳐……! 한때 기적처럼 제 앞에 나타난 금발의 소년에게 눈이 멀었던 적이 있었다. 그는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자신만큼이나 영리했으니까. 당시 유사(流砂)와도 같은 절망과 좌절에 빠져있던 자신의 손을 잡고 수렁에서 끌어내준 나의 구원자. 하지만 그의 미모와 지성에 눈이 멀어서 그가 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들어주고 싶었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아, 물론 아직도 그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예쁘고 잘생기고 섹시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만큼은 이성이 돌아왔다 이거다. 어떻게 며칠 안 만나줬다고 채점해야할 학생들 시험지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 네가 다섯살짜리 어린애야? 관심 안 줬다고 바로 사고치게?
 알버스가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파들파들 떨고있는동안 태연자약하게 제 몸을 그루밍하듯 핥고있던 고양이가 다시 새침하게 야옹, 하고 울더니 가볍게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제가 만들어놓은 지옥같은 수라도 사이를 걸어오는 태도가 마치 탑 위의 공주처럼 도도했다. 어이가 없어서 그대로 보고있자니 태연하게 다가와 발치를 맴돌다말고 아양부리듯 발목에 제 몸을 부벼댔다.

 "겔러트, 나 지금 너한테 화내는 중이거든? 네 애교 받아줄 기분 아니라고."

 분명 알아들었으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싹 무시하는 태도가 얄밉기 짝이 없었다. 이럴 때만 진짜 고양이처럼 굴지 말아줄래? 고양이 상태만 아니었다면 이마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눈이라도 마주보고 잔소리할 요량으로 안아들어올리기 무섭게 고양이가 알버스의 입술을 핥아왔다.

 "그러니까 지금 너한테 화내고 있는 중이라니까……"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쨌든 고양이의 구강구조에서 사람의 말이 나올 리가 없으니까. 이정도로 마이페이스로 나오면 도리어 화낼 기운도 없어지는 법이다. 게다가 겔러트는 영악하게도 본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고 고양이인 채로 버티고 있었다. 아무리 본체는 사람이라고 해도 고양이한테 진지하게 분노를 터뜨리는 것도 영 모양새는 이상하니까. 알버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골이 띵할 정도로 화가 나 있는 상태기는 했지만, 엉망진창인 사무실에서 고양이 한마리를 안아든 채 열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제3자의 시선으로 상상하자니 영 기분이 애매해진다.

 "겔러트, 제발. 제발 이러지 마. 응? 물론 널 사랑하지만 나한테도 직업이 있고 사회생활이 있-"
 "드디어 그 말을 해주네. 일주일 만인가? 아니면 이주일?"
 "너……"

 이제까지 안아들고있던 작달막한 고양이가 갑작스레 사라지고 대신 시야를 채운 것은 기분 좋게 웃고있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자신이 화를 내고있었다는 사실마저 찰나 뇌리에서 휘발시켜버릴만큼 화사한 미소를 띤.
 알버스가 뭐라 입을 떼기도 전에 겔러트가 먼저 선수를 쳤다.

 "알버스, 나 사랑하지?"
 "응? 어… 응."
 "근데 왜 자꾸 날 혼자 내버려둬? 사랑한다며. 이역만리에 가족 하나 없이 널 따라 여기까지 온 나한테는 너밖에 없는 거 알면서."
 "그건 미안하게 생각- 아, 잠깐만. 또 이런 식으로 넘어가려고 하지 마. 일단 영국에 먼저 온 건 너고, 백셧 여사는 아직 정정하게 잘 계신데다, 그렇다고 네가 학생들 시험지를 죄다 찢어놓은 게 잘한 건 아니니까!"
 "앗, 안 넘어가네. 너 정말 화났구나. 어쩐지 아까 내 이름도 독일식으로 부르더니."

 태연스럽게 웃는 얼굴이 소년처럼 해사해서 도리어 말을 잃게 만들었다. 인간은 철저히 시각에 약한 생물이다. 비록 세기의 천재라고 해도 알버스 역시 그랬다. 아까 아닌 건 아니라고 할만큼의 이성은 돌아왔다고 생각했던가? 그에게 있어 겔러트 그린델왈드의 면전에서 계속해서 매몰차게 구는 것은 여전히 요원한 일인 모양이었다. 머리 끝까지 치밀어오르던 분노가 정작 그 주범의 얼굴과 마주하고 있자니 서서히 사그라드는 기분은 상당히 오묘했다.

 "겔러트, 네가 교수로서의 내 생활도 조금은 존중해줬으면 좋겠어. 애먼 학생들한테 질투도 하지말고-"
 "노력할게."
 "오늘처럼 시험기간에 조금 너한테 소홀했다고 해서 이렇게 제멋대로 굴지도 말고."
 "음, 노력은 해볼게."
 "…절대 그러겠다고는 대답 안 하지, 너?"

 얄미워 죽겠어. 코앞에서 꽃처럼 예쁘게 미소 짓는 잘생긴 얼굴을 외면할 수 없어 알버스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다시는 이러지 마."
 "노력한다니까."
 "말이나 못하면…… 먼저 내 사무실 원상복귀부터 시켜놔."

 지팡이도 없이 그저 손바닥을 두어 번 딱딱 맞부딪히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되었다. 엉망진창으로 엎어진 잉크병이며 깃펜들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고, 바닥에 찢겨진 채로 나뒹굴던 시험지들과 서류들이 일제히 도로 매끈하게 이어붙고 공중에서 저절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5분도 걸리지 않아 아수라장이었던 변신술 교수의 사무실은 원래의 정갈한 모습으로 돌아와있었다. 책상 위에 두툼하게 쌓인 서류뭉치들 역시 아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정리되어 있었다. 지금 앞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금발미남의 존재만을 제외한다면, 알버스가 나가기 전의 풍경에서 양피지 하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니… 네가 어지른 걸 치운 것 뿐인데 그렇게 칭찬해달라는 눈빛까지는 보내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낯을 한 겔러트가 먼저 깍지 끼듯 손을 잡아왔다.

 "어차피 애들 시험도 끝났겠다, 같이 호그스미드 안 갈래? 허니듀크 신상품 중에 네가 좋아할 만한 걸 찾았는데."
 "먼저 채점부터 해야하는- 그래, 좋아."

 안 따라가주면 이번엔 고양이로 변해서 난동부리는 것 정도가 아니라 호수 속 대왕오징어라도 소환할 것 같다는 생각에 알버스는 서둘러 말꼬리를 수정했다. 딱히 겔러트가 덧붙인 말에 혹한 것은 아니라. 아마 평생을 본대도 그의 얼굴 앞에서는 약해질 것 같다는 예감이 새삼 엄습했으나 눈을 감고 무시했다. 그렇다고 해도 더 나빠질 것은 전혀 없을 테니까. 비록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시험지 역시 건드리지 말라는 몇가지 원칙은 확실히 각인시켜놔야할 거 같지만. 알버스는 마디마디 깍지 끼듯이 쥔 상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언제나와도 같은 일상 속의 하루였다. 평온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