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해 동안 소년의 세상은 흑백이었으나 그는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흑과 백, 그리고 회색 뿐이라고 해도 그의 눈부신 지성을 발휘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으므로. 오직 무채색밖에 보지 못한다해도 그는 우수했고 탁월한 천재였다. 하지만 소년도 역시 색깔이라는 개념이 궁금해질 때는 있었기에, 그럴 때마다 책장을 넘기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는 했다. 붉은색, 푸른색, 녹색, 노란색, 보라색. 그밖에도 헤아릴 수도 없는 무수한 색깔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과연 색깔이 있는 세상이란 무슨 느낌인 것일까? 소울메이트를 만나야만 비로소 이 흑백의 세상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들었었다. 하지만 소울메이트를 찾아헤매는데 시간을 쏟기에 소년은 너무나 바빴다. 각종 상장과 트로피를 쓸어모으면서도, 영광을 안고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알버스 덤블도어는 여전히 색이 존재하는 세상을 알지 못했다. 여전히 어린 천재에게 있어 색깔이란 활자로 된 두루뭉실한 묘사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던 중 그가 나타났다. 바다를 건너온 베르길리우스이자 베아트리체. 겔러트 그린델왈드를 만나게 된 날도 언제나와 같은 오후였다. 학교를 졸업하고나서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여동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발이 묶인 소년가장의 하루일과는 단조로웠다. 여동생, 그리고 여동생, 다시 여동생. 여동생을 달래가며 세끼 식사를 꼬박꼬박 시키고 안정시켜준 후 밀린 집안일을 대강 처리하고나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가있었다. 날카로운 지성을 자랑했던 천재가 그밖에 하는 일이라고는 무기력하게 침실에 놓아둔 책들을 들추어보거나 가끔씩 찾아오는 이웃집 백셧 여사를 맞이하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더이상 미래는 전처럼 아름다워보이지 않았다. 알버스는 가만히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무채색 시계(視界)가 마치 자신의 처지 같다고 생각했다. 더이상 영광도 명예도 없었다. 아마 그는 이 집안에 갇혀 평생 여동생의 뒷바라지만 하면서 살아야할테니까. 가끔씩 알버스는 만약을 생각했다. 만약 그때 아리아나가 머글소년들에게 공격받지 않았더라면, 만약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가정은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었으며, 눈을 감았다가 떠도 여전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흑백의 세계는 너무나 그의 우울한 미래와 잘 어울렸다. 벽에 걸려있던 시계가 둔중한 소리로 세번 울렸다. 벌써 세시라니. 혼이 나간 것처럼 멍하게 침실에 앉아있던 알버스는 자리에서 느리게 일어났다. 아까 백셧 여사에게 편지를 받았던 것이 한박자 느리게 기억났다.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으니 방문해달라고 하셨던가. 누굴까. 기계적으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대문을 밀자 오후의 햇살이 따사롭게 쏟아졌다. 언제나와도 같은 익숙한 무채색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와 만났다. 먼발치에 익숙한 실루엣의 백셧 여사 옆에 서 있는 길쭉하고 호리호리한 낯선 실루엣을 인식했을 때까지만 해도 아, 소개시켜준다는 것이 저 사람이구나 생각했을 뿐이었다. 한 발짝 한 발짝 가까워지면서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진 순간, 알버스의 빛바랜 세계가 돌연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한 소년이 있었다. 마치 맑은 물 위에 떨어뜨린 물감이 천천히 번져나가는 것처럼, 소년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색채들이 밀물처럼 주변부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알버스는 홀린 듯 오색찬란하게 물들어가는 세계를 응시했다. 소년은 금발이었다. 금속성이 감돌 정도로 쨍하게 화려한 황금색. 알버스는 본능적으로 알아보았다. 저게 바로 금빛이구나.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짙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파랑, 푸른색. 벽안. 소년이 입고있는 코트는 여전히 검은색이었지만 알버스의 세상은 더이상 흑백이 아니었다. 하늘은 푸르렀고, 주변에 피어있는 꽃들은 붉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색깔'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각종 색채로 덧입혀진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했다. 이제까지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그리고 색깔이 있는 세상에서 가장 눈부시고 아름다운 것은 다름아닌 눈앞의 낯선 소년이었다. 네가 나의 소울메이트였구나. 열일곱 소년은 난생 처음으로 마주하는 색채의 향연과 그 중심에 서 있는 소년에게 그대로 마음을 빼앗겼다.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새가 제일 처음으로 보는 상대를 어미로 인식하듯, 이제까지 무채색밖에 몰랐던 알버스는 제게 색깔을 처음으로 보여준 동년배 소년에게 본능적으로 매혹되었다. 열병과도 같은 첫사랑의 시작이었다.
 두 소년은 빠르게 가까워졌고, 겔러트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은 우울했던 지난 몇 주를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즐거웠다. 세가지 죽음의 성물, 그리고 죽음의 지배자- 처음에는 다소 허무맹랑해보였던 이야기였으나 알버스는 곧 겔러트의 주장에 수긍했다. 사실 그가 극히 개인적인 대의를 위해 이 세상을 구원해야만 한다고 했어도 믿어주었을 것이다. 비들의 <삼형제 이야기>가 유년시절 알버스가 제일 좋아하던 동화책이었다는 것 역시 흥미를 부추기는 요소였다.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 남동생 애버포스와 같이 어머니 옆에 누워 잠들기 전 서로 원하는 책을 읽어달라 경쟁하던 때를 기억한다. 그저 동화라고만 생각했던 세 형제와 그들이 지닌 딱총나무 지팡이, 부활의 돌, 투명망토가 정말 실재한단 말인가?

 "신기하네, 단 한번도 정말로 존재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그랬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한 적 있었지만."
 "날 바라보는 네 눈동자만큼이나 분명한 사실인걸, 알버스. 우린 해낼 수 있어."

 그의 혀는 머글들의 경전 속에 등장하는 뱀처럼 유혹적이고 또 유려했다. 사탄이라기보다는 한없이 천사에 가까운 외모였지만. 가끔씩 겔러트 그린델왈드가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불길함이 선듯하게 스쳐지나가기도 했으나 알버스는 애써 그 감각을 무시하고 눈을 감았다. 그는 17년간 살면서 단 한번도 틀린 판단을 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역시 틀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단순한 언쟁이 삼자간의 싸움으로 발전하고, 난입한 여동생이 눈앞에서 끈 떨어진 인형처럼 쓰러져내리는 그 순간까지만 해도.

 "아- 아리아나."

 순간 세상이 다시 새까맣게 번아웃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왜. 어째서. 어린 여동생은 눈을 감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린 알버스를 밀치고 달려든 애버포스가 가냘픈 아리아나의 몸을 끌어안았다. 아리아나? 아리아나! 어깨를 조심스레 흔들던 손길이 점점 격해지고, 반복해서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에 오열이 섞일 때까지 알버스는 얼어붙은 듯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현실감이 없었다. 왜 내가,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거지?

 "……형. 아리아나가 죽었어."

 울음섞인 목소리가 힐난하듯 잔혹한 현실을 전달했다.

 "형 때문이야. 형이 그애를 그 잘난 여행길에 데려간다고 하지만 않았어도, 저 자식이랑 놀아나느라 뒷전으로 밀어놓지만 않았어도! 아리아나는 안 죽었어!"
 "나, 나는……"
 "형이 죽인 거나 다름 없다고!"

 슬픔과 분노가 뒤범벅되어 한데 엉킨 듯한 남동생의 눈초리가 매섭게 쏟아졌다. 차라리 색깔이 보이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마주한 애버포스의 눈은 너무나 자신과 똑같았고, 알버스는 어딘가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이대로 주저앉아버리고 싶었다.
 아리아나가 죽었다. 네 살 터울의 어린 여동생이, 이제까지 그를 고드릭골짜기에 붙잡아 놓던 가련한 족쇄는 혼란스러운 와중 누구의 지팡이에서 쏘아졌는지 모를 주문에 맞아 사망했다. 어쩌면 알버스 본인의 지팡이였을 수도 있고 겔러트의 지팡이였을 수도 있었다. 그 둘 모두일 수도 있고.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영원히 알고싶지 않았다. 분명 그를 묶어둔 여동생이 없어졌으면, 하는 은밀한 바람을 단한번도 품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길 바랬던 것은 아니었어. 나는, 그저…… 해방 아닌 해방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더한 무형의 굴레를 남기고.
 아리아나 덤블도어의 장례식은 소규모로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불안정한 여동생은 학교도 가지 않은 채 주로 집안에서 시간을 보냈고, 이웃들조차 아리아나를 아는 사람은 적었으니까. 여전히 반쯤 정신이 나간 듯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알버스는 시야의 변화를 그때서야 깨달았다. 생생한 색감으로 가득차 있던 세상이, 퇴화하듯 천천히 흑백으로 바래져가고 있었다. 알버스가 주위에 겔러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때서였다. 어제 세 사람간의 결투 이후 여동생의 사망에 충격받아 그의 존재를 잊고 있었는데, 장례식장 어디에도 익숙한 소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소울메이트의 존재가 멀어지면 다시 흑백의 시야로 돌아간다고 했었던가? 떠났구나. 언제 떠난거야? 겔러트?

 "형 때문이라고! 전부 다!"

 울먹이면서 제게 주먹을 휘두르는 남동생의 모습마저 빠른 속도로 무채색으로 물들어간다. 명확히 얼굴을 겨냥한 주먹질에도 알버스는 방어하지 않았다. 곧 코뼈가 내려앉는 듯한 통증과 함께 핏방울이 후두둑 떨어져내렸다. 이미 그의 눈에 보이는 핏자국의 색깔은 더이상 붉지 않고 검었다. 지난 두달을 제외한 17년간 항상 그래왔듯이. 겔러트, 그 순간 생각나는 이름은 하나뿐이었다.


***
 알버스 덤블도어는 금세기 가장 위대한 마법사였으며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는 현명했고 고결하며 탁월했으므로. 그러나 그가 흑백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줄곧 색깔을 몰랐다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색깔이 있는 세상을 경험한 적 있었고 가끔씩 색의 부재는 예고치 못한 순간에 기습처럼 그를 덮쳐왔다. 그에게 있어서 색채란 일종의 노스탤지어인 동시에 회상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과거의 파편이었다.
 알버스 덤블도어가 일개 소년가장에서 가장 영향력있고 명망있는 마법사로 성장하는 동안 오래전 곁을 떠난 그의 색채, 겔러트 그린델왈드는 착실히 세를 불려갔다. 그린델왈드의 영향력을 무시하던 마법부 장관이 경질되었고, 그린델왈드는 반대자들을 감옥에 가두는 등 공포스러운 행보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멘가드라는 이름의 그 감옥의 입구에 새겨져있다는 글귀를 처음 들은 순간 덤블도어는 그답지 않게 동요를 내비쳤다. 더 큰 선을 위하여. 열일곱의 여름, 언젠가 자신이 편지에 적어보냈던 글귀는 이제 사악한 프로파간다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무슨 생각이었던가? 처음으로 마주한 색에 홀렸던 것인지 아니면 소년 자체에게 홀렸던 것인지 몇십년이 흐른 지금은 그것조차 알 수 없었다.
 그린델왈드는 교활하고 지능적이며 천재적인 마법사였다. 그는 사람을 조종하고 이용하며 철저히 통제하는 것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다수의 군중 사이에 불안감과 공포를 심는 것 역시. 그리고 그의 존재감과 그 군세가 점점 거대해져가면서 덤블도어는 초조감을 느꼈다. 20년대부터 각종 테러로 인해 각국 신문 헤드라인에 이름을 올렸던 그린델왈드는 이제 거의 마왕 취급을 받고 있었다. 각종 혼란과 재난, 테러, 실종과 사망 등이 전 유럽을 어지럽히고 있었고 마법 세계는 제발 그를 멈춰달라며 간청했다. 현대 가장 뛰어난 마법사라고 칭송받는 덤블도어에게. 그러나 지속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동안 덤블도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를 망설이게 한 감정의 기저에는 다름아닌 두려움이 깔려있었다. 그린델왈드 본인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그린델왈드가 몇십년전 여동생의 죽음의 진실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설임이 발목을 진득하게 붙들었다. 과연 그날 여동생이 맞고 쓰러진 주문이 누구의 지팡이에서 나간 것인지 그는 알고 있을 것 같다고.
 그린델왈드가 불러일으키는 공포가 전염병처럼 전 유럽을 뒤덮었을 때 그나마 그 기세에서 안전한 곳은 영국 뿐이었다. 희한하게도 그는 영국에는 마수를 뻗치러 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그 이유로 덤블도어가 있기 때문에, 유일하게 그를 대적할 수 있을 만한 마법사가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거라고 지레 짐작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덤블도어는 사무실 창밖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흑백의 세상에서 불현듯 기적처럼 나타난 소년을 사랑했던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묻어둔 고통은 부유하는 망령처럼 불쑥불쑥 그 모습을 드러내고는 했다. 아리아나, 그리고 겔러트. 이제껏 미뤄왔지만, 때가 되었다는 것을 덤블도어는 실감했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라해도 결착을 지어야만 했다. 어린 시절 그에게 동의했던 것도, 그를 부추겼던 것도 나였으니까. 덤블도어가 드디어 그린델왈드와 맞서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다음날의 일이었다.
 그리고- 알버스 덤블도어는 약 40여년만에 한때 사랑했던 소년과 처음으로 대면했다. 막으려는 자와 나아가려는 자, 그리고 위대한 현자와 사악한 마왕이라는 대척점에 나란히 선 채. 육안으로 그린델왈드의 모습을 확인하기도 전 그가 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시각이 먼저 느끼고 반응했다. 무채색의 세계가 느린 속도로 다채로운 형형색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뿌옇게 구름이 끼어있는 하늘과 오래된 건축물들로 가득찬 도시. 열일곱 살 때 보았던 고드릭 골짜기의 풍경과는 전혀 달랐으나 46년만에 보는 색깔들의 향연은 아름다웠다.

 "안녕, 알버스. 네가 언젠가는 올 거라고 생각했어. 생각보다 많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
 "오랜만에 보는건데도 넌 매정하구나."

 바로 어제 헤어진 친우를 대하듯 여상스러운 말투로 화두를 꺼내며 그린델왈드가 웃었다. 잊혀진 향수 속에 묻혀있던 친근한 소년의 웃음소리였다. 나이를 먹었어도 그린델왈드는 여전히 화사한 금발의 소유자였고, 아직까지도 아름다웠다. 최초의 여인을 유혹하여 죄를 범하게했다던 시원의 뱀처럼. 덤블도어는 대답하지 않고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오랫동안 회자될 결투의 시작이었다.
 3시간 가량 지속되었던 결투가 끝나고 최후에 승리한 것은 덤블도어였다. 언제나 그보다 자신이 조금 더 우위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결투 자체가 두려웠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겔러트 너를 다시 만나는 것. 그리고 그날의 진실을 알게 되는 것. 또한 다시 색이 존재하는 세상을 보게 되는 것. 알버스 덤블도어가 흑백에서 벗어나 색깔이 있는 세상에서 살았던 것은 겨우 두달 남짓 뿐이었다. 처음으로 색을 보여준 열여섯 소년에게 깊이 매료되었던 꿈같은 시간들. 너를 만나면 이렇게 무채색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또 그런 세계를 느끼게 되면 이제 정말 다시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 이번에야말로 너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 식물이 본능적으로 일광의 방향에 따라 머리를 돌리듯이 덤블도어 역시 흑백의 세계보다 컬러로 이루어진 세계를 사랑했다. 오직 두 달밖에 느끼지 못했다고 해도,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 색이란 더 강렬한 기억이고 향수였다. 하지만 그의 하나뿐인 소울메이트는 이미 너무나 먼 곳으로 가버린 후였다. 열일곱의 여름, 그때 그를 붙잡았다면 계속 함께할 수 있었을까? 덤블도어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패배한 마왕은 반대자들을 가두기 위해 제 손으로 세웠던 감옥, 누멘가드의 가장 높은 탑에 홀로 유폐되었다.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그를 죽이지 않고 유폐한 이유는 덤블도어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한때나마 사랑했던 상대를 죽일 수 없어서? 그가 홀로 갇힌 채 참회라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게 아니면- 혹시나 모를 탈옥에 대비하기 위한 보안마법을 누멘가드 전체에 섬세하게 펼친 덤블도어는 그의 색채가 유폐된 잿빛 탑을 올려다보았다. 아직까지 그의 시야는 흑백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멀어지게 되면 다시 흑과 백의 세상으로 변할 것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잠시 탑을 올려다보던 덤블도어는 음울한 풍경에서 등을 돌렸다. 겔러트 그린델왈드가 없어도, 이제 죽을 때까지 무채색뿐인 세상에서 살아야한다해도 그는 아마도 괜찮을 것이다. 지난 40여년간도 그랬었으니까.

 나의 색채는 누멘가드에 영원히 갇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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