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ㄷㅗㅇ과 날ㅈㅗ 주의. 결투썰 풀때는 참 마음에 들었는데……



 심장이 뛰었다. 지팡이를 쥔 손끝이 떨렸다. 참을 수 없는 흥분감에 호흡이 저절로 가빠왔다. 짜릿한 쾌감이 척추를 전류처럼 거세게 관통한다. 그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 하나하나마저 환희하는 듯한 강렬한 고양감. 겔러트 그린델왈드는 이제껏 그 어느 때보다 희열에 차 있었다. 그 스스로도 왜 이렇게 기쁨에 어쩔 줄 몰라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하면서도, 그는 트랜스 상태에 가까운 환락의 감정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드디어 날 막으러 나타난 나의 오래된 벗, 나의 알버스. 유일하게 나와 동등히 어깨를 겨눌 수 있을 만한 사랑스러운 친우.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46년만인가? 좋든 싫든 우리 둘다 신문 1면에 이름이 언급되는 거물들인지라, 어쩔 수 없이 서로가 어떻게 살고있는지 파악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야! 알버스 너는 어땠는지 몰라도 나는 그랬으니까. 처음 호그와트의 교수가 되었다고 들었을 때 축하의 꽃이라도 보내고 싶었지만 참았지. 감히 다른 애송이들을 예뻐해주느라 바쁘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때마다 당장이라도 네 곁으로 달려가고 싶었어. 그 망할 놈의 애제자들은 왜 그리 많은지! 어디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하나 나열해볼까? 스캐맨더, 해그리드, 그리고 또 누가 있었더라……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네 애정의 방향이 향해야 하는 건 오직 나 뿐인데! 너는 날 사랑하잖아. 그래야만 하고. 아, 네가 신문에 기고한 변신술 칼럼들은 당연히 모두 읽어봤다고. 가끔씩은 네 아이디어를 보완해줄만한 편지라도 보내고싶었지만 네가 나를 알아챌까봐 참았지. 나의 유일무이한 붕우여. 내 인생에 있어 벗이라고 할만한 상대는 너 밖에 없을 것이다.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비록 너는 나를 친구로만 생각한게 아닌 것 같지만 말이야.
 한때 흘러넘치는 연심을 채 갈무리하지 못한 채 자신을 올려다보던 해사한 소년의 얼굴을 기억한다. 너는 영리하고 명민하며 똑똑한 아이였지, 알버스. 다만 티를 안 내는 법은 좀 배워야했을 것만 같았지만 말이야. 대체 그런 넋나간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누가 눈치를 채지 못하겠어? 응? 트롤이라도 알아챘을걸- 정말이지, 유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린델왈드는 씩 웃으면서 매섭게 날아오는 공격을 그대로 튕겨내버렸다. 

 "그래, 다 좋은데 말이지. 내게 너무 잔인하게 굴지 마, 알버스."
 "……"

 역시나 덤블도어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냉정해졌구나. 조금 슬퍼지는걸. 언젠가 사랑에 빠진 눈으로 그린델왈드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소년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성인이 되었고, 이제 그린델왈드를 물리치기 위해 그 앞에 서 있었다. 금세기 가장 뛰어난 마법사라 일컬어지는 알버스 덤블도어. 그리고 나는 역대 가장 위험하고 사악한 어둠의 마법사 정도일까? 꼭 싸구려 촌극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에 그는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언젠가 우리 둘이 가장 위대한 마법사가 되어 역사에 이름을 남기자고 약속한 때가 있었다. 마법사회에 큰 변혁을 가져온 젊은 혁명가들, 그리고 죽음의 지배자- 그린델왈드와 덤블도어! 벌써 40년도 더 된 이야기였다. 이제 후대는 우리의 이름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마약처럼 강한 기쁨 뒤켠으로 새삼 몇십년간 누적되어온 피로가 엄습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한때 반짝거림을 품고 그를 응시하던 하늘빛 눈동자는 얼어붙은 겨울호수처럼 고요했다. 아무 생각도 읽어낼 수 없는 가라앉은 눈빛. 설마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상봉할 거라고는 상상도 안 했지만 이토록 무심하다니 조금 안타까운걸. 나는 네 곁을 떠난 후로 단 하루도 널 잊은 적이 없는데. 그렇게 너 없이 살아왔지. 그 오랜 시간을. 왜 네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냐면 대답은 간단해. 알버스 네 여동생이 죽은 순간 난 깨달았거든, 이제 결코 너는 날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네가 아무리 나를 사랑했어도, 내가 설령 무릎을 꿇고 빈다고 해도.

 "어라. 내가 졌네?"

 비록 찰나라 하더라도 마법사 간 결투 중의 잡념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바로 지금처럼. 어느새 자신의 목울대를 찌를 듯 바싹 가져다대진 덤블도어의 지팡이 끄트머리가 날카로운 비수처럼 느껴졌다. 지리한 몇시간에 걸친 결투 끝에 드디어 승패는 갈려졌다. 여기서 무슨 술수를 부려봤자 그 전에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겠지. 무엇보다 날 패하게 만든 것이 너라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항상 생각했었지, 날 유일하게 막을 수 있는 존재라면 너 뿐일 거라고. 그리고 어쩌면 그는 줄곧 이 순간을 기다려왔을지도 모른다. 겔러트 그린델왈드는 산뜻한 얼굴로 깔끔하게 결과에 승복했다. 패자의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였다.

 "내가 졌어, 알버스."
 "……"
 "축하해. 네 승리야."

 그러니까 무슨 말이라도 해봐. 목소리를 들려줘, 친구여. 그린델왈드는 지팡이를 들지 않은 왼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덤블도어가 미미하게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으나 그는 제 목에 겨눈 지팡이를 쥔 상대의 손 위에 그대로 자신의 손을 겹쳐쥐었다. 두 마법사의 체온은 싸늘했다. 언젠가 이렇게 네 손을 잡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너도 지금처럼 괴로운 표정을 짓고있지 않았지. 잠깐, 괴로운 표정? 덤블도어가 오히려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그가 눈치챈 것은 그때서였다. 어째서인지 알 수 없었다. 왜?

 "그런 얼굴 하지마, 너는 오늘 승리자니까."
 "-겔러트."
 "드디어 목소리를 들려주는구나."

 감동적인걸. 그린델왈드는 다시 웃었다. 그는 결투에서 패배했고, 지금 목에는 덤블도어의 지팡이가 겨누어져있었다. 내 모가지를 못 따서 안달일 놈들이 한둘이 아니니 아마 사형당하거나 사형당하지 않더라도 평생 독방에 갇히는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충분히 즐거웠다. 왜일까, 나를 패배시킨 상대가 다름아닌 너여서겠지.
 전쟁에서 이긴 승자에겐 역시 그에 마땅한 전리품이 필요한 법이다. 자신이 들고 있는 지팡이에 새삼 생각이 미친 것은 그때서였다. 딱총나무 지팡이, 세가지 죽음의 성물 중 하나. 언젠가 나이든 지팡이 제작자에게 훔쳐냈던 그것. 그순간 솔직히 아쉬웠었다. 내 곁에 알버스 네가 없었다는 것이. 분명 너도 기뻐해줬을텐데. 그 해 여름 너와 머리를 맞대고 죽음의 지배자가 되기 위한 계획을 세우던 때를 기억한다. 그린델왈드는 자신의 지팡이를 들어올렸고 -상대가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으나 신경쓰지않았다- 그대로 덤블도어에게 그것을 건넸다.

 "승리자가 된 걸 축하해, 이건 전리품 혹은 내가 네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둬. 오래전 우리가 찾아헤매던 바로 그거니까."
 "설마 이게……"
 "그래. 그러니까 웃어줘. 오늘은 네가 웃어도 되는 날이니까."

 3시간 가량 지속되었던 결투의 끝, 그 승리자가 된 덤블도어는 현존하는 최강의 지팡이와 역대 가장 위험한 어둠의 마법사의 목숨을 양손에 쥐게 되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승리인가? 나는 모르겠지만 알버스 너는 확실히 역사책에 이름이 남겠지. 사악한 마왕을 물리친 위대한 현자라고. 어쩌면 이것이 네 가장 빛나는 업적이 될지도. 그런데도 덤블도어는 그린델왈드의 부탁대로 미소를 지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낯빛에서는 채 지우지 못한 고통스러운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났으며, 이제껏 동요 하나 엿보이지 않았던 눈빛마저 미미하게 흔들리고 있었기에 그린델왈드는 다소 의아해졌다. 마땅히 기뻐해야할텐데 왜 너는 도리어 버거워하고 있는거지. 설마.
 이제까지 당연히 그에게서 원망받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남동생에게는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썼고 삼자간의 다툼 끝에 네 여동생은 죽었으니까. 내가 직접 죽인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 이후 단 한번도 네게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 없었어. 그래서 참담한 심정으로 영국을 떠났고 이제껏 네 곁에 돌아오겠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 없었지. 찾아가봤자 거절당할까봐. 어쨌든 그 후로 다시는 상처주고싶지 않았는데 또다시 상처줘버렸네. 내가 네게 패배하게 된다면 그건 나름대로 빚을 갚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역시 오산인 모양이었다. 어쩌면 승패 이전에 자신과 마주하는 것 자체가 고통일 수도 있었다는 것에 뒤늦게 생각이 미쳤다. 아, 알버스. 너는 끝까지 나를 잔혹하게 만들어. 이기적이겠지만 이게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라면 네가 웃는 얼굴 정도는 보고싶었는데.

 "아마도 이제 널 평생 못 볼 텐데 마지막은 웃는 얼굴을 보여줘도 좋잖아? 벗으로서의 마지막 부탁인데, 안 웃어줄거야?"
 "……미안."
 "알버스."
 "역시 못 하겠어. 겔러트. 그건…"

 눈물이라도 떨어뜨릴 것 같은 표정이 낯설다고 그린델왈드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제가 알고있는 열일곱 소년은 단 한번도 저런 얼굴을 한 적 없었으니까. 하루종일 붙어다니며 열정적으로 토론하던 때를 기억한다. 그들이 대화에 올리는 소재들은 폭넓고도 다양했다. 현학적인 내용부터 다소 피상적인 이야기들까지. 그러고도 모자라 동이 틀 때까지 부엉이를 날려보내며 서로 편지를 교환했던 나날들. 그시절 우리는 얼마나 열렬하며 야망에 차 있었던가. 짧았던 1899년의 그 여름. 하나뿐인 나의 벗, 친애하는 나의 알버스. 그때만 해도 우리가 이런 식으로 마주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지.
 몇번 경련하듯 기계적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려다 실패한 듯 덤블도어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울대에 겨눠진 지팡이가 미묘하게 떨리는 것이 얇은 피부 너머로 느껴졌다. 못하겠어, 속삭이는 목소리는 승리자의 당당함이라기에는 한없이 처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더 참을 수 없어졌다. 너무 늦었고, 이제 와서 용서받을 수도 없으며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들이라고 해도 지금 여기서 내뱉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알버스, 미안해."
 "……"
 "미안해. 전부 다."

 그는 언젠가부터 멈춰야할 때라고 생각해왔던 것일지도 몰랐다. 다름아닌 네 손에 의해서. 네가 나를 가로막으러 오기 전까지만이라고 결심했던 것이 어느덧 40년 가까이 흘렀다. 네가 나를 멈추러 오는 상황은 수십수백번도 더 상상했지만 단 한번도 지금 같은 상황은 가정한 적 없었기에. 그린델왈드는 만약을 상상했다. 만약 그때 네 여동생이 죽지 않았더라면, 내가 너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가정들은 무의미했다. 지금 이 상황만이 현존하는 현실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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