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만에 사랑니를 발치했다. 첫 사랑니였다. 아릿한 아픔을 수반하며 잇몸을 뚫고 올라오는 사랑니를 결국 뽑아버렸을 때 제임스가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해방감이었다. 사랑니가 신경 근처와 맞닿아있다거나, 뿌리가 휘어있다던가 혹은 이가 누워있지 않고 똑바로 나주었기에 발치 자체는 간단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발치가 아니라 그 이후에 찾아왔다.

 "아…… 진짜 아파…"
 "언젠 하나도 안 아프다며?"
 "이제는 아프거든? 놀리지 마, 패드풋."

 얼음팩을 뺨 옆에 바싹 가져다 댄 채 누워있던 제임스는 알싸하게 밀려오는 아픔에 미간을 찌푸렸다. 마취가 풀리고나자 서서히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당연히 통각도 그 안에 포함되어있었다. 치료사의 솜씨가 어쨌든 생니를 통째로 뽑아냈는데 아프지 않을리가 없었다. 아, 이거 의외로 아프네.

 "넌 사랑니 아직 안 났냐?"
 "오, 프롱스. 난 벌써 열다섯 살 때 뽑았다고."
 "이 형님보다도 먼저 사랑니가 나다니…… 건방지구나, 친구."
 "딱 보기에도 너보단 내가 성숙해보이지 않아? 외모로든 지적수준으로든?"
 "우리의 우정과 멀린의 수염에 맹세코, 그건 절대 아니지."

 그래도 가장 절친한 악우와 투닥거리다 보니 고통은 조금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내일은 오늘보다는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며 내내 시리우스와 농담 따먹기를 하던 제임스가 절망하기까지는 채 1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확인하기 전까지.

 "내 얼굴……!"
 "프롱스, 아침부터 왜 난리── 와. 너 지금 몰골 진짜 굉장하다."

 절망했다! 거울 앞에서 나라 잃은 듯한 표정으로 망연자실하게 서있는 제임스의 뒤에서 시리우스가 포복절도하기 시작했다. 머리칼이 정돈 안 된 듯 뻗쳐있는 것은 괜찮았다. 항상 이랬으니까. 그런데 내… 내 얼굴. 내 잘난 얼굴이. 제임스의 손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 오른뺨을 느리게 매만졌다. 거울 속의 오른뺨은 평소와 다르게 퉁퉁 부어있었다. 왼쪽 얼굴에 비해 1.5배정도 더 퍼진 면적이며 알사탕이라도 문 듯 툭 튀어나온 흉한 모양새라니. 못생겼잖아! 이제까지 본 거울 속 내 모습 중 제일 못생겼어!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으로 제임스는 부어오른 뺨을 의미없이 더듬었다. 부기 때문인지 유난히 피부 표면이 뜨거웠다. 그리고 턱이 뻐근했다.

 "이, 이거 왜 이런 거지……?!"
 "원래 사랑니 빼고 나면 다음날에 엄청 부어. 몰랐어?"
 "몰랐어! 왜 진작 말 안해줬어!"
 "프롱스, 대체 얼음찜질은 뭐 때문에 했다고 생각한 거야? 부기 예방하려고 하는 거잖아, 그거."
 "찜질 했는데! 하라는 대로 열심히 했다구! 근데 왜 이러지?"
 "몰라. 네가 제대로 안 했나보지."

 한껏 빵빵해진 얼굴로 하늘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한 채 서 있는 친구에게서 등을 돌리며 시리우스는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
 제임스 포터는 마치 여름의 태양같은 인물이었다. 365일 웃는 얼굴로 지내는 듯, 밝고 활기차며 주변에 제 에너지를 나눠주는 듯한 인간상. 그런 제임스가 저렇게 절망한 듯한 표정으로 구는 걸 볼 수 있다니 희귀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저 광경 보여줄 겸 리무스랑 피터도 여기로 부를까, 시리우스는 몇 초 정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차피 저 부기도 며칠 지나면 알아서 가라앉을텐데 평생 가는 것 마냥 괴로워하는 제임스의 표정이,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을 만큼 웃겨서.

 "제임스, 어차피 사나흘 지나면 다 가라앉아."
 "뭐? 그럼 그동안 이 못생긴 얼굴로 지내야한단 말이야? 어디 나가지도 못하게 생겼잖아!"
 "음…… 그건 어쩔 수 없지."
 "말도 안 돼! 지금 나 완전 흉측하다고!"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후다닥 제 침실로 달려가더니 바로 침대 시트를 뒤집어쓴다. 알아주는 퀴디치 선수 아니랄까봐 잽싸기 그지 없는 몸놀림이었다. 시리우스는 어이 없다는 눈빛으로 제임스- 로 추정되는 시트 가운데 툭 튀어나온 부분을 응시했다.

 "지금 에반스라도 부르면 볼 만하겠다?"
 "끔찍한 소리 하지 마. 릴리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어."

 부기 때문에 입이 잘 벌어지지도 않는 상태일거면서 말은 잘도 했다. 시리우스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제임스가 릴리 에반스에게 목을 매기 시작한 것도 벌써 몇년 된 이야기였고, 둘이 사귀기 시작한 것 역시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직도 릴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주제에, 지금 릴리를 불러온다는 말에도 질색하는 걸 보니 정말 충격이긴 한 모양이었다. 진짜 실물이 나타나면 어쩔까. 그래도 저렇게 시트 뒤집어쓰고 안 나오려나? 짓궃은 마음이 스멀스멀 일어나는 통에 시리우스는 깃펜과 양피지를 놓아두었던 책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학이 시작하고나서 단 한번도 손댄 적 없었던 물건들이었으나 지금 당장은 필요했다.
 친애하는 릴리, 방학 잘 보내고 있어? 나는 제임스의 집에서 같이 지내고 있어. 다름이 아니라…… 그는 중간중간 슬쩍 뒤를 돌아보면서 사각사각 편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
 발치 이후로 이틀이 더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기는 약간 완화되었을 뿐 거의 그대로였다. 이제 더이상 통증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 원래 얼굴이 영원히 안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제임스는 여전히 불안에 떨며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걱정과 불안감에 의해 거의 만 하루 가까이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한 상태였다. 얼음찜질도 하라는 대로 했는데 왜! 어째서! 억울해! 그깟 사랑니가 뭐라고?!
 그 순간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보나마나 패드풋이겠지, 열기 싫다고 거부하려는 찰나 익숙한 목소리가 예상치 못한 이름을 들먹였다.

 "프롱스? 에반스가 왔어. 문 좀 열어봐."
 "릴리? 릴리가 어떻── 지금은 안 돼!"

 릴리가 지금 어떻게 우리집에 있는 건데?! 릴리와 함께라면 언제 어느때 어느곳에라도 항상 오케이지만 지금은 정말 아니었다. 제임스가 살면서 릴리 에반스를 피하고 싶은 유일무이한 순간을 고르라면 당연히 지금이었다. 이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란 말인가. 뺨은 퉁퉁 부었고 입은 제대로 벌어지지도 않는데다 평소보다 배는 더 못생겨져있는데! 이윽고 문 너머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제임스는 더욱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제임스?"

 진짜 릴리잖아, 내 릴리! 언제 들어도 나이팅게일의 지저귐처럼 맑고 예쁜 목소리였다. 어쩌면 목소리까지도 예쁠 수가 있지, 완벽한 내 사랑……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목소리에 잠시 상념에 빠져있던 제임스를 강제로 현실에 끌고온 것은 장난기 가득한 시리우스의 목소리였다.

 "릴리를 이대로 밖에 세워둘 셈이야? 뭐, 네가 안 열면 따고 들어가면 되니까."
 "뭐?!"
 "알로호모라."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방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언뜻 보인 실루엣은 두 개. 제임스는 본능적으로 시트를 머리 끝까지 덮어썼다. 소년의 허세라고 해도 좋지만 릴리에게는 항상 멋지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싶었다. 부끄러운 모습들을 보였던 건 사귀기 전에 있었던 사건들로 족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아니야.
 누군가 타박타박 걸어서 다가오나하더니, 제임스가 누워있던 침대 한켠이 무게를 싣고 가볍게 기울어졌다.

 "제임스, 나 왔어."
 "릴리……? 어떻게?"
 "시리우스가 부엉이를 보냈었어. 네가 사랑니를 뽑고나서 많이 침울해져 있으니까 내가 있으면 도움이 될 거라고."
 "패드풋 너-"
 "계속 얼굴 안 보여줄 거야?"

 아무리 지금 얼굴이 말도 아니더라도,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 제임스는 자신을 걱정해서 방문했다는 여자친구를 계속해서 무시할만큼 매정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그 대상이 릴리 에반스라면. 패드풋, 진짜 가만 안 둘거야. 기어이 릴리를 불러온 시리우스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며 제임스는 천천히 시트를 내렸다. 빼꼼 눈 바로 아래까지 내리자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상대와 눈이 마주쳤다. 붉은빛이 도는 긴 갈색 머리칼을 단정하게 한쪽 어깨로 넘긴 채 차분하게 응시해오는 녹안. 정말 릴리였다. 예쁘다. 릴리를 마주하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제임스의 눈에 릴리는 항상, 언제나 예뻤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못생겼잖아, 이런 꼬락서니를 릴리에게 보여야한다니. 그는 풀죽은 눈빛으로 낮게 웅얼거렸다.

 "그런데…… 나 지금 정말 못생겼어."
 "넌 안 못생겼어."
 "진짜야…… 보면 실망할거라고."

 릴리가 나한테 실망하면 어쩌지, 내가 봐도 못생겼는걸. 사랑니는 대체 왜 존재하는 거고 빼버리고나서도 이렇게 문제인걸까. 울상을 지으며 제임스는 바투 쥐고 있던 시트를 느리게 아래로 내렸다.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마자 부드러운 것이 뺨에 와닿았다. 릴리의 손이었다. 자신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다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어, 릴리……?"
 "제임스 포터, 너 하나도 안 못생겼어."

 웃고 있는 릴리의 얼굴이 너무 예뻐서 순간적으로 눈부신 것을 본 사람처럼 눈앞이 아득해졌다.

 "나한테는 여전히 잘생겼어, 예쁘고."
 "어……"
 "그러니까 얼굴 숨기려고 하지 마. 사랑니 뽑느라 고생 많았어, 제임스."

 입술에 온기가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홀린 것처럼 멍한 표정을 한 제임스에게 릴리가 다시 생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시리우스에게 듣기로는 어제부터 제대로 식사도 못 했다며. 내려가자, 간단하게 스프라도 만들어줄게."

 보드라운 손이 살며시 제 손을 잡아끌어온다. 릴리에게 끌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는 중에 거울을 지나쳤으나 이번에는 제 모습이 아까처럼 끔찍해보이지는 않았다.
 제임스의 부기가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그로부터 사흘이 더 지나고 나서의 일이었다. 첫 사랑니가 뽑혀나간 잇몸이 완전히 아물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달 가까이 지난 후의 일.




사실은 저번주에 제가 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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