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레 생일이라길래 서두만 써놨던 옛글 급하게 재활용
 

-
 10년이라는 세월은 길었다. 홀로 덩그러니 빈집에 남겨진 어린애가 어설프게나마 귀족다운 품위를 갖춘 계집으로 성장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다. 자신을 새초롬하게 올려다보는 비취빛 눈동자와 마주할 때마다 그는 종종 소녀를 박제하는 상상을 했다. 자신의 두 손으로 가느다란 목덜미를 움켜쥔 뒤 단번에 비틀고, 여린 몸뚱아리를 절개하여 대신 포르말린과 나프탈렌을 채우고, 제 사제관 한 켠에 박제되어버린 소녀를 세워놓는 상상을. 할 수만 있다면 그 찬란하게 느껴지는 생명력까지도 모두. 숨이 끊어지는 순간 스러져버릴 소녀의 한 줌 생기마저 공기 중으로 헛되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그는 소녀를 사랑했다. 그 나름대로의 사랑이었다. 그는 스승으로서, 또한 후견인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친애의 정을 소녀에게 품고있었던 것이다. 그가 이제까지 손아귀에 쥐었던 것들 중 가장 연약하며 동시에 가장 강인하고 또한 가장 아름다운 예술품. 제 아버지의 등을 느찌른 검을 끌어안으며 끝내 울음을 터뜨릴 듯 파르르 떨리던 어린 입술의 모양새를 기억한다. 그 순간 그의 척추를 찌르르 울리며 관통하던 날선 쾌감 역시도.
 린, 나는 정말이지- 네가 좋다. 당차고 야무진 계집아이, 토오사카의 어린 여당주. 되바라졌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는 그만의 사랑스러운 피후견인. 그렇기에 그는 그녀를 돌아오는 성배전쟁의 제물로서 선택했다. 소녀는 성배의 핵이 될 것이고,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 종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정성을 다해 고이 길러온 순결한 어린양을 번제에 바치는 목자의 심정이 이러하였을까. 조금만 더 있으면 성배전쟁이 시작된다. 겨울로 접어든 이후 그는 답지않게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소녀가 제발로 저를 찾아온 날 당일까지 역시.


 "키레이."
 "네가 먼저 나를 찾아오다니, 감동이군. 린. 용건이 있다면 전화라도 먼저 했으면 좋을 것을…… 아아, 너는 심각한 기계치였지. 잊고 있었다. 방금의 실언에 대해서는 사과하마."
 "이익……!! 기껏 찾아온 사람한테 그게 무슨 실례야! 역시 당신이란 남자는!"


 정말 싫어! 하는 환청이 그 뒤로 이어진 것 같다면 착각이겠지. 그는 뒷짐을 진 채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열을 내는 소녀의 모습을 잠자코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네가 여기까지 친히 방문한 이유가 있을 터인데."
 "…으,우, 그러니까. 당신 말이야. 오늘이 생일이잖아. 당신같은 괴팍한 신부 따위가 자기 생일 같은 거 챙길리도 없지만…… 어쨌든 사와 봤어. 예의상."
 "호오."


 소녀가 여태껏 등뒤로 숨기고 있던 오른팔을 쑥 내밀자 그곳에는 케이크 상자가 어울리지 않는 물건처럼 들려있었다.
 그는 과장되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린, 아아… 이럴 수가. 날 위해서 네가 이런 갸륵한 짓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군. 주님께 감사드려야겠어."
 '흥, 됐네요! 키레이 당신이 밉살스럽긴하지만 어쨌든 내 후견인이니까, 그러니까 챙겨온 거 뿐이야."
 "고맙다, 린."
 "감사인사 따윈 됐다니까!"


 냉큼 쥐고 있던 상자를 그에게 떠안기다시피한 소녀는 목적은 달성했다는 듯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돌아섰다. 하여튼 귀염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제자였다. 그게 더 귀여운 면이지만. 그는 잠자코 소녀의 뒷모습을 응시하다 그녀가 묵직한 교회문을 열고 나가버리기 전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린."
 "……왜? 사이비 신부."
 "챙겨줘서 고맙군. 이왕 네가 사온 건데 좀 들고 가겠나?"
 "……됐어. 그런 거 먹어봤자 군살만 늘어날 뿐이라고. 어쨌든 생일 축하해, 키레이. 그리고 연말 잘 보내."
 

 묘하게 한 풀 꺾인 듯한 기세의 목소리를 남기고 다시 문이 닫혔다. 이 어찌나 사랑스럽지 않은 아이인가. 동시에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인지. 정말이지, 그의 소녀는 앞으로의 계획에 있어 더할나위 없이 안성맞춤인 보석이었다. 그는 한동안 빈 교회에 홀로 서서 자애롭게 웃음을 터뜨렸다. 가장 멋진 생일이었다.

'tx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씀  (0) 2017.01.19
kingsman/퍼록시 baptize  (0) 2017.01.01
fate/흑앵늠 단문  (0) 2016.12.24
크오/사혁자성 단문  (0) 2016.12.10
크오/제임스자성 단문  (0) 2016.09.2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