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스가 그 사진을 발견한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겔러트가 기거하고 있는 백셧 여사의 집에 들렸다가 거실 한켠에 놓인 커다란 은액자를 보게 된 것은. 바틸다 백셧은 매우 저명한 학자이자 유명한 마녀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알버스와 교류하는 몇 안되는 인근 주민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부터 쭉, 그리고 아리아나의 존재를 알고 있는 아주 소수의 이웃. 몇년간 알고 지낸 백셧 여사에게 대조카가 있다는 것 자체도 금시초문이기는 했지만 그 대조카와 이렇게 가까운 사이가 될 줄은 더욱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요새는 백셧 여사보다 그 대조카인 겔러트와 더 자주 만나고 서신교환을 했던 터라, 이 집에 방문하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간만에 들린 백셧의 집안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방금 알버스가 발견한 은액자에는 겔러트의 사진들이 여러 장 끼워져있어, 바틸다 백셧이 그녀의 사랑스러운 대조카를 매우 아낀다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만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자신과 함께 찍었던 사진 역시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알버스는 약간 멋쩍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정쩡하게 떨어져있는 듯한 거리, 그리고 웃지 않고 앞을 응시하는 겔러트의 무표정 역시 둘 사이가 묘하게 서먹서먹해보이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네 웃는 얼굴, 정말 해사하고 예쁜데. 좀 미소라도 머금고 찍지.
 애정을 담아 손톱 끝으로 사진을 가볍게 톡 친 후 하나하나 뜯어보던 알버스의 시선이 찰나 한 군데 고정되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오직 겔러트 -그리고 가끔 알버스 자신의- 의 사진 뿐인 액자에서 다소 이질적인 어린 소녀의 사진이었다. 열살 전후쯤 되었을까, 앳되다 못해 어린 얼굴이 은액자 속에서 말갛게 웃어보인다. 어깨 즈음까지 기른 찰랑찰랑한 금빛 머리채와 푸른 눈망울, 갸름한 얼굴형. 전반적으로 새침한 인상이었으나 마치 요정처럼 예뻤다. 입고 있는 옷의 팔랑팔랑한 레이스 탓에 더욱 살아있는 인형처럼 보이는 소녀였다. 그러고보니 오밀조밀하니 선이 고운 이목구비가 누군가를 닮은 것 같기도 한데── 아, 설마. 알버스는 돌아서서 상대를 불렀다.

 "겔러트, 이 여자애는 누구야? 널 닮은 거 보니까 혹시 여동생?"
 "나 여동생 없는데. 뭘 보고 그러는 거야?"
 "이 사진……"
 "사진? ─아. 이거."

 성큼성큼 곁에 다가온 겔러트의 시선이 알버스가 들여다보고 있던 소녀의 사진에 닿았다.

 "이건 내 어릴 때 사진인데."
 "뭐? 잠깐, 너라고?"
 "나 맞아. 아홉살인가 열살 즈음에 찍었던 거였던가."

 자… 잠깐만. 순간적으로 천재소년의 총명한 뇌는 자신이 방금 받아들인 정보를 해석하고 수용하길 거부했다. 그러니까, 이 사진 속 인물이…… 겔러트의 여동생도 아니고 심지어 생물학적 성별이 소녀도 아니라고.

 "미안한데 이 사진에서 네가 입고 있는 옷이, 어, 음, 여아용 아니야……?"
 "우리가 어릴 때 머글들 아동복 유행이 저런 거여서 그래. 그런 취향이셔서 말이지. 다시 생각만 해도 짜증나네."

 정말로 싫은지 사진을 응시하는 눈매가 별로 유쾌해보이지는 않았다. 여전히 혼란에 빠진 알버스를 내버려둔 채 겔러트가 은액자의 표면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 사진 별로 안 좋아한다고 분명 말씀드렸었는데…… 굳이 여기에 끼워넣으셔야했나, 대고모님도 참."

 조각같이 반듯한 옆모습 위로 사진 속 소녀의 웃는 얼굴이 느리게 겹쳐진다. 그러니까, 정말로 저 애가 겔러트구나. 가끔 그가 어릴 때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다는 생각을 한 적 있기는 했지만 저렇게 예뻤을 줄이야. 새삼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바람에 알버스는 겔러트가 눈치채지 못하게 심호흡을 했다. 한때 늪같은 우울과 절망감 속에서 익사해가고있던 자신을 밖으로 끌어내준 매혹적인 베르길리우스. 바다 건너의 이국에서 등장한 나의 구원자. 그런데 유년기의 모습은 차라리 베아트리체에 가까웠다니.
 새삼 이제껏 그와 함께하지 못했던, 그가 부재해있던 시간들이 아쉬워졌다. 너의 열다섯, 너의 열넷과 열셋, 그리고 열두살과 열한살, 열살 이전은 내가 영원히 알 수 없을 순간이기에. 진작 만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알버스는 억지로 미련들을 떨쳐냈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이제 남은 시간들은 계속 함께할 수 있을 터였다. 열일곱, 열여덟, 스무 살- 그리고 아마 그 이후에도 계속. 서로가 있는 한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너만 있으면 괜찮아. 알버스는 새삼 마음을 다잡으며 눈앞의 상대와 그의 유년 시절 편린을 번갈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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