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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왜 나를 구해준 겁니까."

 뒤돌아선 남자의 뒷모습은 온통 칠흑이었다. 부러질까 위태로울 정도로 꼿꼿하게 세워진 등은 던져진 질문에도 미동없이 고요했다. 마치 장례식장의 상주마냥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까만 정장, 새까만 머리칼, 그리고 고개를 돌려 저를 응시하는 표정 없는 눈동자마저도 온통 칠흑인 가운데 오직 그 흰 낯만이 유령처럼 창백했다. 마치 물에 빠져죽은 익사체처럼 핏기없는 낯빛. 호리호리한 허리춤 근처에 늘어뜨려진 손목에 매인 조잡한 짝퉁 명품시계로, 반들반들 윤이 나는 검은 구두코로 제임스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최후로 시선이 안착한 곳은 책상에 올려져있던 명패였다. 금박으로 새겨진 황금성의 새 주인의 이름이 시커먼 명패위에서 어슴푸레 빛을 반사했다. 골드문 회장 이자성. 제임스는 나지막히 입안으로 제 앞에 서 있는 상대의 이름을 굴렸다. 단순히 마주하고 있을 뿐인데도 마치 끝을 모르고 아가리를 쩍 벌린 심연이나 늪 앞에 맨몸으로 서 있는 것 같은 감각이 전신을 엄습한다. 잠깐 방심하면 바로 그 바닥없는 무저갱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착각. 고작 백년을 사는 인간이 마치 천년의 권태 속에서 살아온 듯한 허무한 눈알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입이 저절로 바싹 메말랐다. 전대 회장 석동출 사후 서열 3위까지 고스란히 다 잡아먹고 철왕좌에 오른 불길한 인간이라는 흉흉한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깨달았어야했는데. 감정을 담지 않은 채 저를 향한 이자성의 무심한 눈빛이 오늘따라 유달리 안면을 저미는 칼날처럼 서늘했다.

 "왜 당신을 구해줬는지 아직도 궁금하오?"
 "당연한 거 아닙니까."

 -허울이나마 기업의 수장인 당신과 달리 이쪽은 엄연한 뒷세계에 속한 인간이니까.
 이어질 뒷말이 혀끝에서 맴돌다 스르르 꼬리를 감췄다. 골드문이 알음알음 조직폭력이니 사채니하는 음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기업이라고는 하나 엄연히 법인 명패를 달고 양지에서 운영하는 기업이었다. 그에 비해 자신은 장기말들 뒤에서 움직이며 은행을 털고, 필요하다면 살인마저 불사하지않는 그런 뒷세계에 속해있는 인간.
 처음에는 꼼짝없이 경찰 측에게 붙잡힐 거라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그 어두침침한 터널에서 저를 붙잡았던 앳된 계집애를 내팽겨치고 활로를 찾아 허위허위 발걸음을 뗄 때까지만해도, 제 말로를 내심 각오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치 않은 구원의 손길은 난데없이 찾아왔다.

 "타시오."
 "……?!"
 "어서! 이대로 죽고싶은 거요?"

 처음에는 이것마저 자신을 잡기 위해 교묘하게 배치된 함정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다급한 상황에선 눈앞에 디밀어진 동아줄이 멀쩡한 것이든 썩은 동앗줄이든 우선 붙잡고 보는 것이 인간의 본성 아니겠는가. 제게 뻗은 남자의 손을 부여쥐고 그 안에 몸을 싣는 순간 차는 빠르게 출발했다. 마치 관을 운반하는 장의사의 것처럼 불길하도록 새까만 밴이었다. 그리고 구원의 손길처럼 느껴졌던 그 손의 주인 역시 갈가마귀처럼 새까맣고, 또 생령처럼 창백한 남자였다. 그가 타고 있는 밴을 인간의 형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처럼.

 "…그래서, 당신은 누굽니까? 여긴 어떻게 알고 나타난 거죠."
 "궁금합니까?"
 "그럼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만년필 하나로 사람도 서슴없이 도륙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자라 들었는데 감사해야 하는 사람은 알아보는 모양이오."
 "누굽니까, 당신."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태워 사라질 때부터 이미 자신이 누군지 알고있는 인간이란 걸 파악했어야 했다. 살려놓고 이제와서 뒤통수를 후려치겠느냐만은, 그래도 자신이 모르는 인간이 자신을 알고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언짢아졌다. 제임스는 도시를 배회하는 그림자였다. 사람을 죽이고, 때로 은행을 털더라도 그의 존재를 인식하는 인간은 없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이 자는 자신을 잘 알고있다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죽여야 하나. 죽일까. 갈등이 찰나 뇌리를 섬광처럼 관통했다. 그런 제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했는지 시커먼 정장 차림의 남자가 희미하게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왜, 날 죽여야겠다는 생각이라도 들었소?"
 "……"
 "나는 골드문 회장 이자성이오. 당신이 이 자리에서 나를 찌르고 뛰어내릴 수는 있겠지만, 그게 별로 바람직한 선택지는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소?"

 이자성. 골드문.
 낯설게 느껴지는 명사들은 아니었다. 깡패들이 세우고 운영하는 기업이라고 은근히 홀대당하고 있다는 바로 그 기업. 그리고 얼마 전 사망한 전 회장의 뒤를 이어 그 자리에 올랐다는 이자성. 피튀기는 계승싸움 후 즉위한 신왕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현 회장의 뒤로는 항상 호사가들의 입방정이 따라다녔다. 그 중에는 한없이 사실에 가까운 것도 있을 것이고 날조에 가까운 헛소리도 있겠지. 하지만 이런 인상의 인간일줄은 몰랐다. 이자성은 묘하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양발을 걸치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린 것 같기도 했고 살아있는 시체 같기도 했다. 특히 박제된 동물의 것을 연상시키는 그 유리알같은 냉막한 눈동자. 그에게서는 무미건조한 동시에 위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음지에서 구를만큼 구르며 살아온 제임스이기에 더 날카롭게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이자는, 그와 동류였다. 혹은 더 악랄할지도 모르는.

 "좋습니다. 회장님을 죽이는 건 일단 접어두기로 하지요."
 "언제라도 날 다시 죽일 수 있다는 말투로 들리는데…… 좋소. 마음에 드오. 어차피 나도 당신을 내 조커로 사용하기 위해 살려준 것 뿐이니까."

 언제든지 자신의 경동맥을 따버릴 수 있는 위험한 맹수를 앞에 앉혀둔 채로도 이자성은 더할 나위 없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내 그림자가 되어주시오. 보수는 아쉬울 것 없이 챙겨주겠다고 약속하지."

 위험한 분위기의 인간이 위험한 제안을 건넸다. 독이 든 잔과 같은 약속을 그는 승낙했다.

 "좋습니다. 이회장님의 그림자가 되어드리죠. 다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뭡니까?"
 "나를 왜 살린 겁니까? 당신이 명색이 골드문의 회장이라면 나보다 유능한 말들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텐데요."

 이자성은 침묵했다. 어찌보면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날 제임스의 물음에 끝내 답을 주지않았으며, 그 침묵은 제임스가 본격적으로 이자성의 숨겨진 히트맨으로 활동하게 된 후에도 지속되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내가 당신을 배신할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반쯤 치기로 내뱉은 말이었다. 그는 왜 자신을 살렸단 말인가. 그리고 왜 지금까지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 것인지. 그 순간 가면처럼 무표정하던 이자성의 얼굴 위로 실금같은 균열이 미세하게 떠올랐다. 죽어가는 여인의 얼굴에 떠오른 최후의 이지러짐같은 웃음을 머금은 채, 이자성은 대답했다.

 "괜찮소, 이미 이쪽도 배신이라면 이골이 난 몸이니까."

 그러니 제임스 당신이 날 배신한다해도 상관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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