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7 FB 1회차 관람, 2016/11/17 쩜오계정쓰기 시작. 뭘 기준으로 잡든 지난 주말이 딱 100일차 되는 날이었다. 주말내내 복통이 너무 심해서 뭐 자축할 겸 사먹으려는 계획은 망했지만…^.ㅠ 100일된 김에 내 그린델도어 덕질을 되돌아봄 아 서ㅊ방지랑 내 트윗이 ㄱㅜ글박제되는 게 너무 무서워서 맨날 내 쵱컾, 우리애들 이렇게 돌려말하다가 커플명 쓰려니까 넘나 어색한걸
1.치임
내 덕통의 시작은 짤 2개에서 비롯되었다…… 중요하니까 똑같은 거 세개올림 정확한 날짜와 시간도 기억함 왜냐하면 갤러리에 짤 저장한 시간이 그대로 남아있으니까. 2015년 11월 21일 오후 6시였음. 모처에 올라온 그린델도어 영업글을 내가 봤던 게ㅋㅋㅋㅋㅋㅋ 당시 나는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을 보내고있었고 초순에 치였던 킹ㅅㅡ맨에 대해서는 덕통 초반에 비해 어느정도 뽕이 빠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 게시글을 아무생각없이 클릭한순간 봐버린 것이다 저 원앤온리짤과 문제의 그 짤을...... 나는 해포와 같이 성장했고 매년 새로운 책, 새 영화를 도키도키 기다리며 자란 세대긴 했지만 '덕질'의 대상으로 바라본 건 맹세컨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냥 해포 좋아하는 일반인 수준ㅇㅇㅇ 그리고 AD 쿠ㅣ어컨펌은 들었어도 음 그렇군 하고 넘겼고 영화를 보긴 봤지만 쟤네 분량이 워낙 나노인지라 기억에 전-혀 없던 상태였다. 그런데 저 겔러트 짤 보는순간 미친 바로 사랑에 빠져버림 뭐야 시발 쟤가 걔야? 미친 존나 잘생겼잖아 미친?<<<< 약간 이 상태. 그렇다 제이미의 외모는 너무나 내 취향 이데아 수준의 스트라이크 존이었으며..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음 원앤온리짤 영알버스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예뻤던 것……… 그 당시 내가 했던 생각이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 미친 덤ㅂ도어가 어려서 저렇게 예뻤다는 거야?????????? 존나 청순하쟈나????? 이 비슷했을 것.. 왜냐면 지금도 맨날 그생각을 하니까요 미친존나이뻐! 게다가 부가설명 때문에 완전 치임 어려서 짝사랑했다는 게 공식설정이라며? 또 무덤 지키기 위해서 말 안하고 죽었다며? 미친 개쩌네 시발 와………… 그리고 며칠, 혹은 몇주.. 아마 얼마 안됐을 거임 그렇게 짧게 불살랐다.. 그당시는 FB도 개봉안했고 뉴 인풋이란 게 거의 없는 상태였기때문에 그렇게 얼마정도 짧게 달리다가 알아서 식었고, 아 걔네 좋았지 하고 그냥 기억에 남은 채 묻어뒀던 거 같다
2.또 치임
그리고 2016년 11월 17일, FB를 보러갔다. 사실 별 생각없었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와 해포 스핀오프래~ 하고 시놉시스만 대강 훑어보고 갔음. 11년이후 5년만에 다시 해포 오슷과 제목폰트가 뜨는 걸 영화관에서 혼자 감동해서 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는 기분으로 봤다. 그리고 겔 이름으로 도배된 신문기사 오프닝시퀀스가 지나가고, 국쟝님이 왜 덤브ㄹ도어가 널 아꼈지???? 하는 순간만해도 나는 정말 맹세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와 내가 아는 이름 나왔당^^* 끝. 사실 영화 자체는 내 기대보다는 쏘쏘해서 음 걍 그렇네ㅇㅅㅇ하고 왓ㅊㅑ에 3.5를 매긴 후 집에와서 탐라와 커뮤들을 켰는데 나는 또다시 봐버린 것이다 영업글 내지 관계성 설명글을………… 새삼 1년만에 다시 마주한 오피셜 앵슷대서사시 축약과 존나이쁜 영 겔알과 '저때 늍 질투한 거 같지않아여?'하는 쓰니의 첨언에 저는 눈이 돌아가버리고말았던 것이었어요.. 미쳤네… 이건 파야겠네…………+그런데 왜하필 ㅈㄴㄷ이야 시발놈들아 엉엉 콤보로 하루정도 본계에서 울다가 아 이럴게 아니라 공계로 나가야겠다 싶어서 지금의 쩜오계로 나오게 됨. 당시 쩜오계는 ㅂㅓㅋㅣ냇에 식은 후로 방치중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새로 해포계 팔걸 포풍후회
3.덕질의 시작
이하 내 인생을 조진 짤들………… 그리고 그렇게 망망대해에서 덕질을 시작하였다 하 정말 내 덕질의 개연성은 애들 얼굴에서 시작해서 얼굴로 끝난다 얼굴보니까 또 좋네^^;;;; 화려한 미인공x청순한 얼빠수 죽기전에 파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렇게 소원성취하고 갑니다 재덕통이 더 무섭다더니.. 게다가 배우 필모짤들 보면서 더 쎄게 치이고 관짝을 덮고야 만 것이다 대강 내가 치이는데 기여한 짤들 올려봤음 현 플사로 쓰고있는 맨 위짤 내가 좋아하는 이유가 워낙 무비에서 엄근ㅈㅣㄴ해서 원작의 명랑발랄 묘사와 잘 연결이 안됐는데 마치 미씽링크처럼 느껴져서+예뻐서 좋아함. 100일째 폰 잠ㄱ배경으로 쓰고있지만 안 질리네요 그리고 아 필유 짤도… 노ㅂㅏㄷㅣ짤들 넘 앳되고 예쁘고 청초하고 예민하고 우울하고 섬세한 소년같아서 진짜 좋음 요새 원앤온리짤 두고 자꾸 노ㅂㅏㄷㅣ 비주얼로 머릿속에서 어리고 예쁘장한 청순청초 천재소년 되어가서 미칠지경 그리고 카이우스 짤도 제가 참 좋아하는데요 저 짤 본 순간 와 존나 미ㅅㅗ녀;;;;;하고 반해서.. 학생겔=저 비주얼로 상상하게되었기 때문ㅋㅋㅋㅋㅋㅋ 또 원문 겔 묘사가 merry wild라는 거 안 순간 나는 그대로 관뚜껑에 못질했음 쨌든 정말 5년만에 열렬한 덕질을 했따.... 썰도 존나 풀고 원문도 외울정도로 들이파고 짤도 줍고 정말 한오백년만에 글도 쓰고.. 카운트 안해봤는데 일단 10만자 이상 쓴 거 같긴함 원래 국내 연성러가 10명 이상인 게 육안으로 보이면 연성 안하는데 이번은 흑흑.. 모국어로 된 뉴연성 넘 읽고싶어서.... 그나마 중웹가서 연성 보는 걸로 만족하고있긴한데 흑흑흑 아 이제 더 뭘 써야할지 모르겠네 쨌든 도화선은 오피셜 관계성+(((애들 얼굴)))+줬다뺏긴 애들얼굴이랑 ㅈㄴㄷ캐슷…
4.해석 뭘 더 쓸까 고민하다가 지난 100일동안의 캐해석 및 컾해석 변화나 써볼까 했는데 음… 일단 나는 초기에는 마왕과 현자인데 어케 내새끼라고 부르겠어요~했지만 지금 너무나 자연스레 내새끼 우리애라고 지칭하고있으며.. 또 정말 플라토닉으로만 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음… 아직도 공식에서는 키스도 안한 사이, 성적 접촉 없는 사이라고 믿어의심치않지만 2차에서는 키스를 했든 더한 걸 했든 이제 별 상관없다. 그러라고 하는 2차 아니겠어요? 초반엔 주로 원작기반으로만 상상하다가 요샌 오만가지 AU 다 상상하고있고.. 앵슷 그렇게 안 좋아해서 이제 해피하게 연애시켜주고싶다. 지금의 캐해석은 일단 둘 사이의 우정은 진짜였음>어느순간 영알버스가 겔한테 사랑에 빠짐>애가 자기 좋아하는 거 겔이 더 먼저 눈치채고 어라?한 후 일종의 애정권력관계 형성>영알버스가 자기 감정 자각>골든썸머 끝… 이런 느낌으로 상상하고있다 인터내셔널 센츄리얼 트루 럽이었기에 평생 잊지못하고 45년에 스스로 첫사랑 모가지를 따고, 하지만 단한번도 상대에게 보답받을 거라고는 상상 못하고..
5.해석2 영알은 천부적으로 비밀과 거짓말에 능숙한 천재고 온화하고 차분하지만 내심 명예욕과 야망 짱짱하고, 4학년때 커튼 불싸지르고 모르겠어요><한 것처럼 여우처럼 구는 면모도 아예 없는 건 아닌 거 같고, 하지만 난생 처음 조우하는 사랑의 감정앞에 무장해제 되어서 질질 흘리고 다닌 애, 정도? 한번 빠지면 헌신과 순애 다 가져다바칠 거 같고 순수하지는 않은데 순진한 면이 있는, 특히 성적으로는 면역없는 타입. 겔 아무리 좋아해도 성적으로 그렇고 그런 상상으로는 못 넘어갔을 거 같다 배우 때문에 자꾸 머리속에서 핵동안에 청초하기까지한 예쁜천재소년 되어가서 환장~ 나름 소소하게 수요있었을거같은데 넘나 천재셔서+고백해도 정중하게 까버리니까 쟨 사람은 안 좋아해 우린 여자로도 안볼걸?하고 절벽위의꽃 취급 받았을 거 같기도. 겔은 갠적으로 무자각쌍방으로 밀어서 막상 떠나고나서야 아....하고 후회했다는 설정으로 밀고, 미련 철철 넘치는 상태였을 거 같고 그렇다 45때 일부러 속죄 겸 져줬을 거 같고.. FB는 아주 굉장한 걸 줬습니다 미련과 집착 쩌는 ㄱㅜ남친.. 1899때나 1926때나 좀 끓는점 낮고 성격급해서 분ㅈㅗ장 있는 거 같고… 래디컬한 이상주의자, 빻은 사상을 교묘하게 돌려서 표현하는데 일가견있는 그릇된 혁명7ㅏ느낌. 라이토랑 어느정도 일맥상통하는 점 있는 거 같음. 오클ㄹㅓ먼서에 환영까지 보고 천재고 변신술도 개존잘이고…… 전형적인 jkr식 능력은 있으나 그릇된 선택을 한 능력자타입인가. 영알 있었음 효과적인 브레이크 됐을 거 같다 당장 편지만 봐도 막나가는 애 달래면서 거친 사상 매끈하게 다듬고 세련되게 포장해주는 느낌이라 FB에서 크레덴스나 티나한테 대하는 걸 보면 자기 매력을 십분 잘 파악하고+남녀가리지않고 홀리는 마성의 미남★설정인가 싶긴한데 시발 그럼뭐해 껍데기는 그새낀데
6.사족 영알 열여덟살 생일 얼마 안남은 상태에서 집 돌아오고 둘이 두달가량 있었대고 차남 왈 호괏으로 돌아갈 날(9/1) 다되어서 사건 터졌다니 생일은 8월말, 처녀자리로 밀음. 첫사랑이 떠나고 열일곱살도 끝나고 여름도 끝나고 꿈과 환상도 끝나고……… 그리고 겔은 11월생 전갈자리였음 좋겠다. 개인적으로 연상공 파인데 얘넨 겔이 햇수로 2년이나 더 어리다는 게 날 너무 미치게 함.. 동년배같아도 겔이 어리단 게 티가 날 때 넘 좋다
7.엔딩 트루엔딩1(겔회귀) 루트A: 감방에서 저주맞고 깨어나보니 열서너살 학생으로 회귀. 방학 되자마자 고드릭골짜기 ㄱㄱ 당장 모르는 사이인거 깜박하고 바로 매달리다시피 끌어안고 글썽글썽하는 거 예쁜 얼굴로 살살 녹여서 해피엔딩! 트루엔딩1(겔회귀) 루트B: 회귀하는 건 이하동일, 다만 바로 뛰어가는 게 아니라 여름까지 넘 시간이 오래 남은 바람에 일부러 모든 국제대회 다 출전하면서 알짱거렸다 와 우연이다^^하고 여름에 찾아가는거? 갑자기 생판 처음 보는 애가 대회에서 턱밑까지 추적해와서 기분별로 안좋아서 언짢고 경계심 max찍은 영알 살살 녹여서 함락시켰으면 그동안 친구인지 연인인지 애매하게 지내다 졸업식날 일부러 교복입고 찾아와서 졸업 축하해, 하고 키스하면서 도장찍고 1617 여름부터 연애시작해서 해피엔딩 제일 개쩌는 것은 알버스 빨리 취직했어도 겔은 최소 만18살까진 학생이란 것이다…… 트루엔딩2(양자회귀): 둘다 회귀해서 겔은 이번엔 절대 안놓친다고 집착하는데 영알은 아예 시작도 안하려는 거. 일부러 마주치는 거 피하는데 얼굴보면 사랑했던 그 얼굴이고 괴로워서 어쩔줄 모르는 거? 겔은 겔대로 아 뭐지 왜 1회차랑 다르지 하고 애타서 더 들이대는데 영알 비극 되풀이될까봐 계속 도망치는 거 보고싶다 그리고 zipzip해서 손목 끌어당겨서 키스하는데 우리 이러면 안돼/뭐가?/널 좋아하게 되고싶지않아/이미 좋아하잖아 하는 대화 있었음 좋겠다 영알 저거 말하면서 울고있었으면 좋겠고… 둘이 시작하려면 여동생부터 고쳐줘서 비극잉태 자체를 막고 애가 졸업장들고와야 이번에는 다른가;하고 믿을 수 있을거같음 어쨌든 둘이 잘되도 서로 회귀했다는 거 알면서도 끝까지 모르는 척 하는 거 보고싶다
굿엔딩: 한 반년 지나서 이성 돌아온다음에 아 니 얼굴은 옳지만 니 생각 존나 빻았어 하고 수정펀치먹여서 데리고 사는 거
노멀엔딩: 원작 그리고 알버스 혼자 회귀한 거. 아예 첨부터 눈길도 안 주고 친해지지도 않을 듯. 대신 애가 마왕되는 걸 막지도 못함. 1945되기 전 미리 자기 손으로 꺾어버리고 평생 혼자 사는 거
배드엔딩: 무비버스요 시발 반백년 처박혀있으면서 회개갱생도 안한 개새끼됨
8. 이제 쓸만한 건 다 쓴 거 같은데ㅇㅅㅇ 아니 겨우 5초도 안나오는 애들한테 치여서 이러고있는 게 말이 되는 일이야 마왕과 현자가 내 인생을 망쳤다!
상대의 금발 위에서 쫑긋거리는 귀를 알버스는 낯선 생물을 보듯 응시했다. 그러니까, 분명 고양이 귀였다. 얼룩진 털로 덮여있는 세모난 모양새 자체는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그게 자리잡은 위치가 문제였을 뿐. 원래 귀는 정상적으로 있는 거 같으니까 설마 얘 지금 귀가 두 쌍인거야? 겔러트의 등 뒤에서 날렵한 모양새의 꼬리가 존재감을 과시하듯 벽을 탁탁 쳤다. 역시 귀와 동일한 색상의 꼬리였다. 고양이 귀, 그리고 꼬리.
"진짜 고양이 꼬리네……"
아연해지는 기분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자 부드러운 털결이 손끝에 감겼다. 체온을 품고있는 진짜 귀였다. 장식이나 가짜가 아니라. 얼결에 놀라서 손을 거뒀지만 피부에 닿았던 촉감만은 아직도 생생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몰라. 지팡이가 오작동됐나봐."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는데?"
다른 신체부위는 멀쩡한데 오직 고양이 귀와 꼬리 한 쌍만 튀어나오는 건 어떤 마법의 오작용이지? 폴리주스도 아닐테고. 혹시나 효과가 영구적인 건 아닐지, 저걸 파훼해서 원상복구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가 복잡한 자신에 비해 정작 본인은 태연한 표정이어서 알버스의 기분은 조금 미묘해졌다. 워낙 생긴 게 고양이상 내지는 여우상에 가까워서 나름 잘 어울리는 것도 사실이기도 했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귀와 꼬리에서 억지로 시선을 잡아떼자니 겔러트가 씩 웃었다.
"그냥 만져봐도 돼."
"너는 네 몸인데 걱정도 안 돼?"
"돌아오겠지 뭐. 아니라도 네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하지만."
"괜찮아, 괜찮아."
손목을 끌어다쥐고 거침없이 제 머리 위에 얹는 태도가 태연자약했다. 손가락 사이로 사금처럼 흘러내리는 금빛 머리칼과 뾰족하게 솟은 한쌍의 귀를 어루만지고 있다보니 자신마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상념이 들기 시작했다. 본인이 괜찮다면 정말 괜찮은걸까. 정 안되면 성 뭉고 병원에라도 데려가보면 될 테고. 새삼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홍채의 빛깔이 새끼고양이들 특유의 파란 눈망울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알버스."
"응?"
"이러고 있으니까 꼭 네가 나 귀여워해주는 거 같아서. 네 애완동물로 사는 것도 별로 나쁜 삶은 아니었을텐데. 이참에 나 안 키워볼래?"
뭐야, 그게. 귀와 머리카락을 쓰다듬다 말고 웃음을 터뜨리고 있자니 정말 고양이라도 된 것처럼 겔러트가 체중을 실어가며 어깨에 매달려왔다.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알버스의 몸이 기우뚱 뒤로 넘어갔다. 다칠세라 머리 뒤로 손을 받쳐준 채 명랑하게 웃고있는 얼굴 위로 고양이 귀가 별개의 생물처럼 쫑긋 움직였다.
"관심없어? 나 말 잘 들어."
"그럼 손 내밀어 봐. 자, 손."
이런 건 고양이라기보다는 애완견에게나 시키는 거던가? 본인이 시켜놓고 긴가민가해진 알버스의 손바닥 위에 겔러트가 냉큼 한쪽 손을 올려놓았다. 잘했다고 칭찬해달라는 듯하는 뿌듯한 눈빛에 정말로 애완동물을 키웠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기분이 엄습했다. 애완묘치고는 조금- 아니 많이 잘생겼지만. 입모양으로 농담이야, 속삭인 겔러트가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더니 곧 가벼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정말 키워본 경험 같은 거 없어? 부엉이 말고."
"없는데…… 겔러트 넌?"
"나도 없어. 그런데 네겐 평범한 동물보다는 뭐랄까, 불사조같은 게 어울릴 것 같긴 한데."
불사조? 난데없는 소리에 알버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불사조는 고결하고 희귀하면서 까다로운 생물이었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불꽃에 스스로를 불살라 도로 부활한 후 삶을 반복하는 새. 적어도 알버스가 알기에 이제껏 불사조를 길들인 마법사는 한명도 없었다.
"불사조를 어떻게 키워? 애완용으로 길들이는 것 자체가 무리일텐데."
"혹시 모르지. 알버스 너라면 가능할지도? 아무리 희귀한 생물이래도 나보다 더 걔를 예뻐해주면 안돼."
"애초에 못 키운다니까."
"아무려면 어때. 앞일은 모르는 거야."
꺄르르 웃는 얼굴에 잠시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눈꺼풀이며 이마 위에 장난하듯 입맞춤이 연달아 떨어졌다. 시선 저 편에 보이는 꼬리는 수직으로 곧게 서 있었다. 분명 고양이들이 기분이 좋을 때는 꼬리를 저렇게 세로로 세운다고 어디선가 봤던 것 같았는데. 눈을 가늘게 뜨고 꼬리의 움직임을 응시하고 있자니 마디가 늘씬하게 뻗은 손가락이 알버스의 뺨에 감겨왔다. 어딜 봐, 나랑 있을 때는 나만 봐야지. 네 꼬리 보고 있었어. 아 내 꼬리?
"다음엔 너한테도 귀랑 꼬리 한쌍 달아줄게."
"어, 그건 사양하고 싶은데."
"이미 내 귀 만졌잖아. 그러니까 거부권 없어."
"아까는 네가 만져도 된다며?"
억울함에 목소리를 높이자 겔러트가 다시 깔깔 웃으며 어린아이를 어르듯 알버스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마주댔다.
"무슨 동물 귀꼬리 달고 싶은지나 미리 생각해놔. 사슴? 토끼? 뭐가 어울릴까."
"난 동의한 적 없는… 설마, 이러려고 일부러 그거 달고 나온 건 아니지?"
"그럴 리가."
비죽 웃고있는 모습이 어째 수상하다고 느끼는 순간 겔러트가 딱, 소리 나도록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금발 위에서, 등 뒤에서 유유히 흔들리던 귀와 꼬리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역시 일부러 그런 거였잖아!
"너 의외로 순진한 면이 있는 거 같더라. 정말 믿었어?"
"아 진짜……"
놀리려고 한 건 아닌데. 미안. 애교스럽게 속살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미 사라지고 없는 고양이 꼬리가 살랑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다음엔 애니마구스에 도전해볼까봐. 무슨 동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땐 더 예뻐해줘."
"난 사람인 네가 더 좋은데."
"그건 나도 알아, 그치만 가끔씩은 신선하고 좋잖아?"
애니마구스는 알버스의 입장에서는 딱히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분야기는 했지만 상대가 도전한다는데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겔러트는 어떤 동물이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역시 생긴 것처럼 고양이과 생물일까? 아니면 여우?
"성공하게 되면 나한테 제일 먼저 보여줘야 해."
"당연하지. 같이 도전할래?"
"아니, 그냥 보는 걸로 만족할게."
같이 하면 재밌을텐데 아쉽게 됐다며 장난스레 웃는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고양이를 닮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겔러트가 정말로 애니마구스가 되는데 성공하게 되는 것은 몇개월 후의 이야기.
이거 어떡해. 울상을 짓고있는 표정이 조금은 낯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일 낯설게 여겨지는 건 머리 위의…… 귀 한 쌍. 원래 머리카락과 비슷한 색깔의 적갈색 털로 덮여있는 세모꼴의 귀가 시선 끝에서 쫑긋 움직였다. 아무리 봐도 고양이 귀였다.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히 움직이는 걸 봐서는 머리띠같은 건 아닌 거 같고, 애초에 성격상 이런 깜찍한 이벤트를 할만한 타입도 아니고. 그런데 웬 고양이 귀? 오늘 무슨 날인가? 대충 달력을 보며 가늠했지만 딱히 걸리는 것은 없었기에 겔러트는 자신의 감상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택했다.
"아, 고양이 귀네. 귀엽다."
"그렇게 말할 게 아니라 도와줘! 이거 못 없애겠어."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데? 네가 혼자 못 없앨 정도면 엄청 지독한 거 아니야?"
"나도 모르겠어."
시무룩해할 때 귀 끄트머리가 조금 처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착각이겠지. 설마 세트로 고양이 꼬리까지 생긴 건 아닌가 슬쩍 등뒤를 쳐다봤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꼬리는 없었다. 있었으면 더 귀여웠을 거 같긴한데, 내심 아쉬움을 느끼며 그는 찬찬히 알버스의 머리 위에 솟은 귀를 뜯어보았다. 볼수록 완벽한 한 쌍의 고양이 귀였다. 생긴 게 워낙 차분한 인상이라서 고양이과와는 많이 멀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또 나름대로 어울렸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언짢아 하겠지만 귀염성 자체는 별로 없는 애다보니 이 상황 자체가 일종의 서프라이즈처럼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런 모습을 보겠어. 내심을 숨기며 겔러트는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마법약? 지팡이 역발사? 주문?"
"새로운 변신술 논문 준비하면서 테스트를 해봤는데 실수가 있었나봐."
"와, 너도 실수란 걸 하는구나? 그런데 이거 만져봐도 돼?"
"응? 응……"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겔러트는 냉큼 머리카락 위로 뾰족하게 솟은 귀에 손을 가져갔다. 얄팍한 감촉과 부드러운 털결. 나름의 온기를 품고있는 고양이 귀 특유의 촉감이 맞았다. 비록 그걸 달고 있는 건 제 또래의 소년이긴 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귀를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알버스가 갑자기 한두걸음 뒤로 물러서며 몸을 뺐다. 고개를 숙인 채 묘하게 쥐어짜낸 듯한 목소리가 더듬거리듯 흘러나왔다.
"저, 겔러트. 그만 만지면 안돼?"
"아팠어? 너무 내 마음대로 만졌나."
"아니, 아픈 건 아니지만- 간지러우니까 기분이 이상해서."
"얼굴 빨개졌는데?"
"그냥 보지 마……"
갑작스레 고양이 귀를 달고 나타나더니 성격마저 고양이처럼 변덕스러워지기라도 했나 싶었다. 쟤 왜 저래? 다소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으려니 상대가 주춤주춤 뒷걸음질치다가 2층으로 후다닥 사라졌다. 얼떨결에 혼자 남겨진 입장에서 황망하기 짝이 없었다. 도와달라고 불러놓더니 도망가버리면 나더러 어떡하라고…
다시 귀를 떼어버리고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알버스가 부끄러워서 죽어가는 듯한 표정으로 어제 일은 잊어달라고 부탁한 것은 다음날이 되어서였다. 혼자서는 못 없애겠다더니, 잘만 해낼 거면서 대체 왜 불렀던 거야. 어제 왜 그랬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루만에 고양이 귀를 떼버린 것은 솔직히 약간 아쉬웠다. 그 모습 꽤나 귀여웠는데, 나중에 머리띠나 마법으로 한번 더 달아줘볼까. 다른 속내를 품은 채 겔러트는 알버스를 향해 생긋 웃어보였다.
+영알 귀가 약할 거 같다는 동인설정이 있음 원래 겔만 쓰려다가 영알버스한테도 달아주고싶어서 2천자 미만으로 짧게. 바니에 이어 ㄴㅋㅁㅁ라니 정말 이래도 괜찮은가
여동생의 장례식이 끝난 후, 첫사랑이었던 소년이 떠나버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었다. 그 통에 아랫쪽 잇몸이 온통 부어오르고 시큰거리며 아팠다. 사랑니가 올라오는 것이 원래 이렇게 아픈 것이었던가? 며칠 참아보았지만 통증은 더 심해져만 갔다. 필연적으로 음식물을 씹어야하는 식사 때는 당연하고 살짝 스치기만 해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프기 시작했다. 꼭 널 닮았네, 이렇게까지 지독한 걸 보면. 소년은 이미 떠올리는 것 자체가 고통인 첫사랑의 얼굴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아픔을 반추동물처럼 짓씹었다. 오직 하나밖에 남지않은 가족인 남동생은 장례식 이후로 자신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싫어했기에,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할 수조차 없어 홀로 앓기만 했다. 알버스가 결국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일주일도 더 지나서의 일이었다.
심각하네. 굉장히 아팠을 것 같은데 이제까지 어떻게 버텼던 거니? 당장이라도 뽑아야 하겠어. 유명한 마법사 병원에서 치료사로 근무했다던 중년의 마녀가 입안을 들여다보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인맥이 풍부한 백셧 여사의 소개로 추천받은 마녀였다. 그렇게 심각한가요? 간신히 묻자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니가 나는 것도 나는 건데…… 매복 사랑니구나. 가로로 누워있어. 그런가요. 당장이라도 뽑아야 할 것 같은데 솔직히 많이 아플 것 같구나. 괜찮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잇몸이 있는대로 부어있다보니 혀를 움직여서 말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발치가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지금도 충분히 아파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으므로. 열병 같았던 첫사랑이 속절없이 끝나버리고, 그를 대신하듯 잇몸을 뚫고 올라오기 시작한 사랑니는 모질도록 아팠다. 발치를 위해서 준비되어있는 자리에 누우며 알버스는 생각했다. 만약 이걸 뽑아버리면, 생령처럼 여전히 제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상대에 대한 미련도 같이 사라져버릴까. 발치 과정은 생각보다 길었다. 마취된 상태에서 잇몸이 절개되고, 사랑니가 여러 조각으로 잘려나가고, 그 조각들이 끌어내지는 일련의 과정이 무감각한 상태에서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아마 마취가 풀리고나면 딱 죽고싶을만큼 아프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진짜 고통은 발치가 끝나고 빈 집으로 돌아와 몇시간 흐른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잇몸을 째고 이를 잘라내어 긁어냈으니 안 아플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생각보다 더 심하잖아. 참기 힘든 아픔에 눈꼬리에서 저절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알버스는 여동생의 장례식장에서도, 그가 떠난 것을 알았을 때도 울지 않았었다. 감히 눈물 흘릴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다름아닌 나 때문에 여동생이 죽었고 그는 떠나갔다. 내가 그에게 정신팔리지만 않았어도. 그 때문에 여동생에게 소홀하지만 않았어도. 겔러트가 한없이 위험한 사상을 품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있었다. 우리 마법사들이 힘을 지녔으니 머글들을 지배할 자격이 있다고? 다름아닌 알버스 자신의 모친 역시 머글태생인데 그 논리의 결함을 모를래야 모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를 비판하는 대신 거친 사상을 매끄럽게 다듬어주었고, 그의 태도를 지적하는 대신 그를 위한 캐치프레이즈를 선물해주었다. 한없이 위험한 계획을 부추기고 찬동하는 공범이며 공모자로서. 그는 틀렸다. 더 커다란 선은 한낱 보기 좋은 허울에 불과했다. 뻔히 알면서 눈감고 그를 막지 않았던 대가는 이토록 가혹하게 돌아왔다. 아, 아리아나. 내 가엾은 여동생. 전부 내 잘못이야. 새삼 슬픔이 응어리처럼 북받쳐 오르면서 눈물이 뺨의 궤적을 타고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지금 여동생의 죽음이 슬퍼서, 겔러트가 떠나버린 것이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발치한 후의 통증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사랑니를 뽑고 난 후의 그 상실감과도 같은 허전함 때문에.
길고도 짧았던 여름의 막바지, 강렬했던 첫사랑이 끝났고 무식하게 잇몸을 뚫고 올라오던 첫 사랑니가 뽑혀나갔으며 그와 함께 소년의 열일곱 살 역시 끝났다. 알버스가 열여덟 살 생일을 맞기 전 며칠 전의 일이었다.
트윗쓸땐 괜찮아보였는데 막상 글로 풀어쓰려니 별로 맘에 안들어서 흑흑.. 45년에 겔 때려잡고 나머지 사랑니 다 뺐음 좋겠다
알파는 다른 알파의 알파 페로몬을 느꼈을 때 본능적으로 상대방에게 경쟁심, 혹은 호승심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반응이라고 했다. 다만 양자간 너무나 월등한 격차가 날 때는 당장 턱 밑에 칼이라도 들이밀어진 것 같은 서늘한 공포감과 생명에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고. 오메가가 우성 알파의 묵직한 페로몬을 느꼈을 때 본능적으로 몸과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고자하는 충동을 느끼듯, 우성 알파의 페로몬을 느낀 보통 알파는 당장이라도 싸움에 패배한 짐승처럼 배를 드러내고 상대에게 순종하고자 하는 굴욕감과 싸워야만 했다.
그리고 알버스는 아주 평범한 알파였다. 어설픈 열성도, 압도적인 우성도 아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러트사이클 때는 억제제를 복용하며 넘겼고, 알파 페로몬이 몸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게 항상 잘 갈무리를 했다. 알파는 오메가에게 끌리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라던데 7년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알버스는 단한번도 그러한 성적 끌림을 경험하지 못했다. 아마 또래 집단으로부터 감히 다가가기 어려운 천재, 연애대상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머나먼 절벽 위의 꽃 취급을 받은 것 역시 한몫했을 것이다. 차라리 평범하게 베타였으면 좋았을텐데─ 가끔씩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알버스는 오직 지식과 이성의 상아탑에 틀어박힌 채 학문에만 열중했다. 상장과 트로피, 영광과 명성을 안고 졸업하기까지 쭉. 1899년의 여름, 고드릭 골짜기에서 열여섯 소년을 만나기까지는. 겔러트 그린델왈드는 첫눈에 알아볼 수 있을만큼 매우 강한 알파였다. 분명 저처럼 페로몬을 잘 갈무리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다가가는 순간 헉, 하고 숨을 들이쉴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이 느껴졌다. 꼭 발톱을 숨긴 채 집고양이 시늉을 하는 고양이과 대형 맹수를 연상케하는 위압감이었다. 분명 알파가 다른 알파의 기운을 느끼면 반발심이나 굴종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했었지. 희미한 동유럽 악센트가 섞인 발음으로 제 이름을 소개하며 먼저 악수를 청해오는 소년의 손을 맞잡았을 때 알버스가 느낀 것은 양자 그 어떤 감정도 아니었다. 이유모를 떨림과 고양감이 척추를 전류처럼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닫게 된 것은 두 사람이 절친한 친구가 된 후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지나서였다. 자신은 처음 본 순간부터 상대에게 반해있었다. 두 사람 모두 알파임에도 불구하고.
(중략)
"나, 나는 알파야. 너처럼."
"그게 뭐가 어때서? 너는 날 원하고 나도 네가 필요한걸. 네가 알파든 베타든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오, 알버스. 상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제 이름은 마치 짤막한 시구 같았다. 겔러트는 언제나 노래하듯 혹은 시를 읊듯이 제 이름을 발음하고는 했지만 오늘따라 유독 그렇게 느껴졌다. 길쭉길쭉하게 뻗어있지만 결코 가녀리거나 연약하게 느껴지지 않는 손가락이 턱과 뺨이 이어지는 선을 매만졌다. 나를 사랑하잖아. 응? 상대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나도 네가 필요해. 나른한 목소리가 속살거리듯 귓전을 스쳤다. 고행 중인 수사를 유혹하는 악마와도 같은 달큰함이었다. 순간 코끝을 싸하게 스치는 향내에 알버스는 어깨를 굳혔다. 알파 페로몬. 언제나 그랬듯 겔러트의 알파 페로몬은 청량하고 강렬했다. 분명 같은 알파의 페로몬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생리적인 반응일진대, 이상하리만큼 반발심은 없었다. 아니- 반발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만두라고 해야할지 망설이는 동안 옷깃 사이로 타인의 체온이 스며들어왔다. 어? 놀란 나머지 저도 모르게 상대의 가슴팍을 밀어내버리고 어쩔 줄 몰라하자 그가 씩 웃었다.
"왜, 키스부터 먼저 할까?"
"아, 나는, 저……"
자신도 모르게 혀가 꼬였다. 아무리 저명하고 이름높은 마법사 앞에서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한번도 더듬거린 적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 앞에서만큼은 한없이 서툴러진다. 이렇게 당황해하는 모습 따위는 보여주고싶지 않았는데. 대답을 미처 기다리지 않고 겔러트가 먼저 입술을 포개왔다.
"너 키스 처음이구나, 그렇지?"
내가 네 처음이라니 기쁘네. 마주친 눈동자는 정말로 즐거워보여서 알버스는 눈부신 것을 본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 눈꺼풀을 내리깔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입술이 맞닿았다. 입이 열리고 혀가 엉켰다. 숨이 가빠서 헐떡이자 상대가 작게 웃었다. 방금까지의 팽팽한 긴장감을 잊어버릴만큼 명랑한 웃음소리였다.
(중략)
차라리 내가 오메가였다면, 아니면 베타라도 되었다면 좋았을걸. 그럼 널 붙잡을 수 있었을텐데. 이제껏 단 한번도 제 형질에 대해 불만을 품은 적 없었건만 그를 만난 이후로 알버스는 매번 그 생각을 했다. 간혹 베타와 알파가 본딩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알파와 알파가 맺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단 한번도 듣지 못했다. 지금은 날 원해준다고 해도 이게 그저 한 철의 불장난일 뿐이라면? 언젠가 그가 말했던대로 곧 떠나버린다면? 한번 깃든 두려움은 들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타고난 형질은 결코 바꿀 수 없다. 아무리 대단한 마법으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헛된 소망은 쉽사리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네 아이라도 가질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럼 정말 확실히 붙잡아둘 수 있지 않았을까. 네가 나를 떠나지 말았으면 좋겠어. 겔러트. 무용한 고뇌를 되풀이하며 알버스는 얼굴을 감싸안았다.
알x오 알x베 써봤으니 알x알도 써봐야할 거 같아서.. 라는 의도였는데 떡 쓰기 싫어서 끊어버림 누가 나 대신 써줬으면
팔마시온은 대 마키시온 제국의 귀퉁이에 처박혀있었다. 국내외 왕족과 황족들이 한데 모여 교육받는 제국의 공식 황실교육기관 치고는 다소 초라한 위치였다. 하지만 마차에서 내려 그 웅장함을 마주하는 순간 그가 품고있던 생각은 곧 바뀌었다. 일개 소국의 왕궁보다 훨씬 호사스럽고 화려해보이는 건축물은 오만한 신들을 모시는 신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여기가 내가 몇년간 머물러야할 곳인가, 겔러트는 설원에 선 채 건물들을 찬찬히 올려다보았다. 마차에서 내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뺨이 에일 정도로 추웠다. 그깟 실험 좀 했다고해서 여기까지 사람을 쫓아내다니 빌어먹을 황실 같으니. 팔마시온의 악명은 높았다. 겉으로는 공식 황실교육기관이라는 번지르르한 타이틀을 달고있지만 실제로는 무법천지라는 곳. 아직 어린 아이들도 가차없이 설원에 내몰고 학생들끼리의 갈등도 전혀 중재하지 않는 철혈의 교육기관. 마치 맹수가 제 새끼를 벼랑 끝에 내몬다는 표현처럼.
"황자님이십니까?"
"그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오세요."
잠시 마노와 황금으로 호화롭게 장식된 정문을 올려보던 와중 칼같은 제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팔마시온의 관리인인가 싶어 빤히 쳐다보자 먼저 깍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손짓했다. 외관에서 느껴졌듯이 팔마시온의 내부 역시 필요이상으로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웠다. 뭔가 복잡한 방식으로 난방을 한다더니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따뜻한 온기가 얼어붙었던 몸을 녹였다. 그러나 그를 안내하는 관리인의 걸음은 숙소일 법한 문들이 늘어서있는 복도를 거침없이 빠르게 지나쳤다.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건지 막연한 의문을 품는 순간 복도의 끝에 다다랐다. 육중한 철문을 밀어젖히자 지하로 내려가는 듯한 어두침침한 계단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하? 뭔가 묻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계단에 발을 디뎠다. 한두 층 정도 내려왔을까, 상대가 낡은 문 앞에 발을 멈췄다.
"앞으로 황자님께서 머무르실 곳입니다."
"……하."
어이가 없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그러니까 이게 망할놈의 황실이 내게 허락한 거처란 말이지. 지하에 위치한 숙소는 좁았다. 철제 책상과 그 옆에 붙은 평범한 침대 2개, 그리고 딸려있는 화장실. 황궁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하인들의 거처만도 못한 방이었다. 위대한 대 마키시온 제국의 혈통을 이은 고귀한 피가 묵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곳이었다. 사람을 쫓아낸 것도 모자라서 이런 굴욕까지 주다니 분노가 치밀었으나 애써 눌러참았다.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관리인은 황실의 눈이고 귀일 것이다. 아마 여기서도 한바탕 날뛰어주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는 법이고, 그럼 그때는 정말로 모가지를 따려 들지도. 겔러트는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관리하며 관리인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나가 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관리인이 가벼운 목례 후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 홀로 남은 실내를 비추는 전등의 빛마저 어두웠다. 애초에 명목은 팔마시온에서 교육받고 오라는 것이긴 했지만, 이것이 일종의 징계이고 경고라는 걸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사고'로 죽어주기라도 하면 노친네들이 제일 좋아하겠지. 겔러트는 신경질적으로 주위를 노려보다말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예상했던만큼 감촉은 딱딱했다. 침대가 맞은편에 하나 더 있는 걸 보니 룸메이트가 하나 더 들어오려나 본데, 과연 이 복마전에서 하필 제 룸메이트가 될 정도라면 얼마나 박복한 신세인지 감도 안 잡혔다. 누가 될 지 모르는 룸메이트와 자신의 신세를 애도하며 겔러트는 그대로 몸을 뒤로 젖혔다.
*
아무리 볼장 다 보고 살아온 인생이래도 문을 열자마자 만년필 끄트머리가 급소를 노리고 날아오면 놀랄 수밖에 없는 법이다. 정확도나 민첩성이 떨어지는 걸 보니 전문 암살자는 아닌 거 같고, 그럼? 아슬아슬하게 만년필을 휘두르는 팔을 피해 물러선 후 겔러트는 가차없이 상대의 팔목을 붙들었다. 팔목이 붙들리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몸부림을 쳐댔다. 반쯤 열린 문 뒤로 이제까지 비어있던 침대 위에 놓인 트렁크가 눈에 들어왔다.
"너구나, 내 룸메이트가. 누군가 했더니."
만년필을 쥔 손목을 낚아채 가까스로 바닥에 찍어누른 후에야 몸부림이 멎었다. 가까이에서 마주본 상대방의 얼굴은 앳되다 못해 어렸다. 열네살? 아니면 열다섯? 그런데 벌써부터 여기 처박히는 신세라니, 그 나이에 꽤나 윗선에게 미움받았던 모양이네. 왜일까, 생긴 건 꽤 귀여운데. 자신과 같은 벽안이지만 색채가 훨씬 옅은 푸른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자신을 똑바로 응시해왔다. 눈빛만 봐서는 호락호락해보이지 않는데, 어떠려나.
"난 너 오늘 처음 보는데. 왜 이래?"
"……"
"말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다음 질문. 어느 나라 출신이야?"
"…베르스."
"아, 그─"
약소국 말이지, 내뱉을 뻔한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베르스라면 현존하는 국가들 중 최하위에 가까울 정도로 국력도 약하고 뒤처지는 나라 아닌가. 웬만한 마키시온 내의 소왕국들보다 더 뒤떨어지는 국가였다. 군사력이든 생산단위든. 명목상으로는 황실교육기관이니 베르스 출신의 왕족이 팔마시온에 있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팔마시온이 학생들을 소속 국가의 국력으로 차별하는 분위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하필 이 초라한 숙소를 자신과 쓰게 된 것 역시 그다지 충격적인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 다짜고짜 만년필을 휘두르려고 한 것은 조금 의외고. 팔마시온 내의 학생들은 국가의 위상이 어떠하든 전원 모두가 왕족 혹은 황족이었으며, 학생들간의 작은 충돌이 국가간의 분쟁으로 불거지는 사태 역시 소소하게나마 존재했다. 비록 황실에 거의 내쳐진 상태긴 하지만 자신 역시 마키시온 제국의 혈통의 소유자였고, 그 고귀한 피에 과하게 집착하는 황실이라면 아무리 내버리다시피한 황족에게 향해진 만년필 끝마저 반기의 뜻으로 해석하고도 남았다. 물론 자신이 황자인 걸 몰랐겠지만 앞으로도 쭉 이렇게 행동한다면 팔마시온에서의 적응은 꽤나 힘들어질 것이다. 겔러트는 힐끗 소년의 손에 아직도 쥐여있는 만년필에 시선을 던졌다. 팔마시온의 물건답게 쓸데없이 화려한 물건이었다. 이게 무기로 쓰일 거라고는 갖다놓은 관리인도 몰랐겠지만.
"다신 나한테 이걸 안 휘두르겠다고 약속하면 놓아줄게."
"…싫다면?"
"글쎄, 어쩔까."
*
"그냥 내 애 둘만 낳아줄래? 너 어차피 돌아갈 곳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가 홱 돌아갔다. 알버스에게 따귀를 맞았다는 것을 자각한 것은 몇 초 지나서의 일이었다. 아, 꽤나 아프군. 청순하게 생겨서 어울리지 않게 손힘은 꽤나 셌다. 모욕감이라도 느꼈는지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자신을 쳐다보는 눈매가 싸늘했다. 곧 부어오를 것 같은 뺨을 매만지며 겔러트는 비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별로 나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날 모욕하지 마."
"그럴 의도 없어. 대제국의 황후 자리를 탐내는 영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너한테 거저 주겠다잖아. 네가 마음에 드니까."
"헛소리야, 어떻게-"
"우리 제국 과학 연구소의 저력을 얕보면 곤란하지."
마키시온의 제국과학연구소, 소드람은 대륙 전체에서 가장 발달된 과학기술을 자랑하고 있었다. 임시적으로 남체에 자궁 하나 달아주는 건 일도 아니지, 그는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있는 소년을 응시하며 씩 웃었다. 순진하고 얌전한 얼굴을 하고 유배지에서도 여전히 야망에 불타는 눈을 한 약소국의 왕족. 처음 본 순간부터 상대가 마음에 들었다. 나만큼 똑똑하고, 나만큼이나 야심이 있고, 나만큼이나 이 팔마시온을 싫어하는 존재.
"그게 싫다면, 도와줄게. 옥중에서 사망한 네 부친의 명예도 복권시켜주고 아프다는 여동생도 제국 최고급 의료진에게 진료받게 해 줄 수 있어."
"……"
"그리고 알버스 넌 베르스의 왕이 되는거지. 어때. 괜찮은 제안 아닌가?"
거절할 수 없을 제안을 했다. 썩어도 준치라는 옛말처럼 이 팔마시온에 처박혀 있어도 그는 여전히 제위 계승권 1위 후보였으며, 잘나고 존귀하신 황제의 아들이었다. 베르스 같은 일개 약소국에 개입해 정치판도를 뒤집어놓는 것은 당장 내일이라도 가능할 수 있을만큼 쉬웠다. 물론 네가 원한다면. 숨기지 못할 만큼 야망과 명예욕이 있는 주제에 가족은 끔찍히도 생각하지. 어차피 끈 떨어진 왕족의 말로는 비참했다. 게다가 천재적이고 영리하다면 더욱 더.
"아. 그러고보니 첫날의 그 소동, 날 암살하면 널 도로 고국에 돌려보내준다고 누가 그랬어?"
"? 어떻게……?"
"다 알게 되는 방법이 있지. 팔마시온에는 벽에도 눈과 귀가 있으니까."
"-그건 미안해."
"미안하면 갚아, 그런 기본 지식쯤은 왕실에서 가르치지 않나?"
왼손을 끌어다쥐고 손끝마다 느릿느릿 입을 맞추자 당황했는지 알버스가 몸을 비틀어 빼려했으나 놓아주지 않았다.
*
"역시 겔러트 네 도움은 필요 없어. 난 베르스로 돌아갈거야. 내 앞길은 내가 개척해."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어."
겔러트는 선선히 물러섰다. 팔마시온의 최우수 학생이자 수석 졸업생. 관례대로 알버스의 초상화는 역대 수석들의 초상화가 걸린 벽에 나란히 걸렸다. 수많은 초상화들 중에서도 가장 앳되고 어린 얼굴이었다.
"그럼 난 이제 어떻게 할까. 세계 일주라도 해볼까? 아니면 황궁으로 돌아가서 생물학적 아버지 모가지나 따고 황제노릇이나 할까?"
이제 드디어 지긋지긋한 팔마시온을 벗어난다. 누군가들의 바람대로 죽지도, 부상을 입지도 않은 채. 다만 자신의 옆에 서있는 상대와 끝까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아, 그때 내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니까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말해."
"내가 싫어!"
정말 싫은지 질색하는 표정이 귀엽게 느껴져 겔러트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에는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날 것처럼 구는 어린 천재의 인간적인 민낯을 본 것은 팔마시온에서 자신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처음 이곳에 도착해 마차에서 내릴 때의 기분을 되새기면 한없이 유쾌했다. 어쩌면 팔마시온에 보내진 것은 행운이었을지도 몰랐다. 널 만날 수 있었으니까.
내가 왜 썼는지도 모르겠다 김ㅊㅓㄹㄱㅗㄴ의 스크트au 간만에 스크트 읽고 마ㄹ넬로x아ㅇ히만 넘 땡겨서 배틀ㅎㅁ삘로 해봤는데 망했읍니다 역시 영알은 겔이 간이든 쓸개든 달라면 빼줄만큼 눈이 멀어있어야지
가상2세 만들어보고 내 애 낳아달라는 드립 치는 겔/따귀 날리는 영알 보고싶어서 au까지 끌어왔는데(원작기반이면.. 낳아달라면 둘이든 셋이든 낳아줄거 같거든.... 가능한가는 둘째치고......) 별로 마음에는 안듬ㅠㅠㅋㅋㅋㅋㅋㅋㅋ 캐붕대잔치에 au로서의 의미도 없어보인다..
나름 뒷설정..은 스크트 원작처럼 알버스는 베르스 돌아가서 재무대신되고 겔은 황제되서 둘이 평생 못만나는 걸로 하자
모 사이트에서 그린ㄷㅔㄹ도어 2세 만들어 봄. 원래 평균얼굴 만들러 간 거였는데ㅋㅋㅋㅋㅋㅋ 원앤온리짤 말고 그냥 애들 짤 사용함 앱으로 작성하자니 접기기능이 없어서 그냥 올림
그냥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돌렸을 때. 애들이 다 벽안이라 무조건 벽안으로 나옴
아들로 설정했을 때ㅋㅋㅋㅋㅋㅋㄱ 음 순한 인상이며 헤어컬러까지 알버스 유전자가 열일했군요 아들은 모를 많이 닮는다더니 진짠가보군..(? 헤어컬러까지 어번이었음 좋았을 걸 토비 필모에 어번헤어는 없어서 아쉽
그리고 딸로 설정했을 때. 와 진짜 넘 예뻐서 깜짝 놀람ㅋㅋㅋㅋㅋㅋㅋㅋㅋ 특히 2번째는 이목구비도 그렇고 애긔라기보단 좀 많이 자란 느낌인데..
애들이 워낙 이뻐서 가상2세들도 다 예쁜듯. 딱히 얘네 파면서 2세물이나.. 그런 건 생각해본적 없었는데(19+상황에서 무리야 애 못 낳아!;;하는 건 상상했어도) 2세들이 넘 예뻐서 갑자기 생각난다 원래 어느장르를 가도 2세를 만드는 과정+그리고 임ㅅㅌ나 ㅇ산으로 인해 앵슷으로 빠지는 걸 좋아했지 꽁냥꽁냥 육Aㅏ물은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아름다운 얼굴과 내 뛰어난 지성을 닮은 아이를 낳아줘!하고 프로포즈하는 겔이라던가(알:걍 니가 자가생식을 해;), ㅅㄴㅇㄴㅁㄲ처럼 누멘ㄱ드 납ㅊㄱ금 루트타고 내 애 셋만 낳아주면 놓아줄게^^라던가? 생각나는 게 죄다 정상적이진 않은거같군^_T Jㅔ릴에서도 좋아했던 상황인데 애 태어나고나서 아 날 닮은 건 좋은데 너무 나만 닮은거 아닌가;하다가 애가 눈을 뜨니까 하늘색에 가까운 색소옅은 푸른 눈동자 보고 알버스 네 눈이네,하고 웃는 겔 보고싶긴함.
원래 이런 기념일 전혀 안챙기는데 매번 연성하게 만드는 두 예쁜이에게 대신 감사의 말씀 전하고싶네요
이쯤되면 CA는 3차창작같고ㅋㅋㅋㅋㅋㅋ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 CA쪽이 마음에 영 안차서 계속 붙들고 있다가 결국 하루 넘겼는데 겔알 짧게나마 급하게 써서 올림..
오늘 발렌타인 데이잖아. 응?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요구해오는 상대의 시선을 알버스는 애써 외면했다. 싫어. 왜 싫은데? 그런 거 싫다고 전부터 말했잖아. 그러니까 왜? 부끄러우니까 그렇지! 알버스 너 설마 내가 부끄러워? 정말로?
"아, 자꾸 이상한 쪽으로 화제 끌고 가지 말랬지! 내가 언제 네가 부끄럽댔어?!"
"그거야 사랑하는 네가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니까…… 오늘은 연인들의 날이래잖아."
"겔러트, 제발 좀!"
결국 소리가 높아졌다. 얘는 대체 어디서 이상한 것만 주워들어와서 이래?!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처럼 겔러트가 제 뒤에 찰싹 들러붙어서 속살거렸다. 화난 거 아니지?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명색이 연인의 날에 그거 하나 정도 못 해줘? 아. 정말. 홱 고개를 돌려 마주한 새파란 눈동자가 순진무구한 척 반짝였다. 얘가 이러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란 걸 뻔하게 알면서 약해지는 나도 글러먹었다고, 알버스는 내심 탄식했다.
"너 진짜 제멋대로야."
"그러니까 네가 날 좋아하지."
반박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게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게 제일 분한 지점이었다. 착실한 모범생으로 궤도 내에만 살아왔던 자신에게 동년배 소년은 곧 자유였고 일탈의 동의어와도 같았으므로. 이번에도 결국 져줄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알버스는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제 옆에 굴러다니던 초콜릿 박스를 집어들었다. 이런 걸 왜 하고 싶다는 거야, 얘는. 바스락거리는 금빛 포장지를 벗기고 내용물을 입에 털어넣자 바로 체온이 낮은 손길이 알버스의 양뺨을 감싸쥐고 끌어당겼다. 입술이 맞닿나 싶더니 바로 열린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장난스레 혀끝으로 치열을 몇번 톡톡 치는 것도 잠시, 흐무러진 초콜릿 조각을 제 입에 문 겔러트가 떨어져나갔다. 약간의 달콤한 여운만을 남긴 채 자신의 입안은 도로 비어있었다.
그러니까 보통 이런 걸 초콜릿 키스라고 하는 거 같긴 하던데 나는 영…… 알버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소감을 입밖으로 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위생적이야…"
"알버스 너 이럴 때 진짜 분위기 깨는 거 알아? 보통 로망이란 게 있잖아?"
나름 기대하는 표정이었던 겔러트가 김이 샜다는 듯 억울한 표정으로 항의했다. 네 로망이지 내 로망이야? 난 처음부터 별로라고 했잖아. 아무래도 넌 꿈과 로망이 부족한 거 같아. 이런 로망은 사양할래.
"그럼 그냥 하는 건 괜찮지?"
"어──"
대답하기도 전에 입술이 다시 닿았다. 말다툼하는 동안 상대의 입안에서 초콜릿 조각이 다 녹아버린 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입맞춤은 충분히 달았다. 연인들의 날에 어울릴 만한 달큰함이었다.
무려 인류가 철기 문명에 접어들기 이전 태어난 존재와 교제하는 게 쉬울 거라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한 적 없었다. 당장 5-10년만 나이터울이 벌어져도 인식의 차이가 느껴지는 와중에, 세기 단위로 차이가 난다면 더할 나위도 없는 셈이었다. 게다가 당연지사 종족마저 다르다. 마치 하이틴 전용 로맨스작품에나 나올만한 이야기였지만 이렇게 된 걸 어쩌겠냐고 알버스는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상대는 호머 서사시의 배경이 된 미케네 문명 시절부터 살아왔다는 흡혈귀였으며, 예쁘고 재력도 상당한데다 심지어 자기네 세계에서는 왕족 비스무리한 거라고 했던가. 어쨌든 생긴 건 제법 흠잡을 데 없는데다 솔직히 얼굴만은 내 취향이고. 일단 나한테 이렇게나 목을 매는 상대가 앞으로 나타날 것 같지도 않고. 당장은 너처럼 변할 생각이 없다고 못박아놨을 때 좀 불만스러워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그에 합의했었으니, 연애대상으로서 이보다 더 나은 후보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첫 연애가 몇천살 연상의 이종족 유사인류라는 건 어째 기분이 오묘해지지만 상대도 자신이 처음이라니까 뭐. 성격은 조금- 아니 많이 급하고, 앞에서는 안 내색하려고 해도 그동안 어지간히 안하무인으로 살아왔구나 싶지만 어찌 되었든 내가 좋다는데. 신분이 나름 왕족 급인데다 그동안 몇천년 간 쌓아올린 부 탓에 소비 스케일의 수준이 틀려서 종종 사람을 당황시키기는 하지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그런데, 대체 이게 뭐야. 알버스는 황망한 표정이 되어 제 앞에 펼쳐진 광경을 응시했다. 빈말로도 좁다고 할 수는 없는 공간에 야무지게 들어찬 다양한 크기의 박스들과…… 저건 또 뭐지, 꽃? 장미에 수국? 그리고 그 옆에 태연한 표정으로 서 있는 원흉.
"…카이우스. 이게 다 뭐야?"
"오늘이 인간들이 챙기는 기념일이라길래 약소하게나마 준비해봤는데. 왜, 너무 적어?"
"그 반대야!!"
환장하겠군. 얘네도 혹시 세금 같은 거 걷나? 설마 세금으로 이렇게 낭비를 하고있는건가? 얘가 이렇게 돈을 물쓰듯 펑펑 써도 아무도 터치하지않는건가? 알버스의 머릿속에서 수십가지 의문들이 불꽃놀이처럼 연이어 터졌다. 일단 잔소리를 하기 전에 제일 가까운 곳에 놓여있는 진홍색 작은 상자부터 열어보았을 때 그 내용물은 정석적이게도 초콜릿이었다. 이름을 들어본 상표는 아니었으나 보나마나 손이 떨리는 가격일 것이라는데 제 상장 컬렉션을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어, 설마 이거 다 초콜릿은 아니지……?"
"날 뭘로 보는 거야? 그 정도의 상식은 있어."
"아니, 넌 좀 더 평범한 일반인들의 상식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어……"
왠지 더이상 열어보면 안될 거 같다. 알버스는 다시 열었던 상자의 뚜껑을 고이 닫고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구애를 승낙한 후로 카이우스의 저세상 경제관념과 소비패턴에 놀랄 만큼 놀랐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놀랄 게 더 남아있었다는 사실이 제일 놀라웠다.
학교 7년을 다니면서도 단 한번도 챙겨본 적 없었던 발렌타인 데이였다. 다른 동급생들이 손을 잡고 호그스미드에 놀러가니 데이트를 하니 핑크빛 기류를 형성할 때 도서관에 처박혀 있었던 기억밖에 없었다. 혹자는 재미없는 인생이라 평할지 몰라도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더 흥미로운 유희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몇천년 넘게 살아온 흡혈귀에게 코를 꿰이면서 팔자에 없는 할리퀸 로맨스에나 나올만한 상황을 종류별로 겪어보고 있었다. 저번에 굳이 볼테라까지 가서 살고싶지 않다고 거부했더니 '그럼 네 이름으로 섬이라도 하나 사줄까?'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알버스가 침묵하자 불호의 뜻으로 알아들었는지 카이우스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내가 이번에 또 실수를 한 건가? 넌 너무 어려워."
"아니, 화난 것도 아니고 언짢은 것도 아니야. 그냥 가끔씩 네 경제관념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이 정도면 알아들을 때도 됐을텐데, 대체 볼투리 가문은 어떤 방식으로 자금운용을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애써 눌러 참았다. 거의 수장 한 사람당 개인 자산규모가 어지간한 국가 하나와 맞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나한테 펑펑 쓰는게 가능할리가.
"고마워, 매번 날 위해서 이렇게 신경써주는 거."
"네 표정은 별로 아닌 거 같은데."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그런데 저번에도 분명히 말했잖아? 네 기준은 내게 너무 부담이 크단 말이야."
"……많이 부담스러워? 나름 처음 계획보다 줄인 거다만."
"그러니까 그 기준이 부담스럽다고. 몇천년 넘게 살았을 너한테야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매번 기겁해야하는 제 심정도 이해해줬으면 한다. 그게 어려운 거겠지만. 알버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되었든 상대는 자신을 위해서 준비한 서프라이즈 이벤트라고 생각할텐데 너무 면박을 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나는 준비한 것도 없는데.
"그리고 난 아무것도 안 준비했는데 어쩌지. 살면서 이런 날을 챙겨본 적이 없어서. 그거라도, 할래?"
"별로 안 좋아하잖아."
"오늘은 나름 특별한 날이라니까… 아, 목은 말고. 거긴 싫으니까 손목으로 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목덜미에 싸늘한 것이 닿았다가 이내 도로 떨어졌다. 팔목에 닿은 손끝의 체온은 언제나와 같이 차가웠다. 제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앉은 카이우스가 허락을 구하듯 슬쩍 눈을 위로 떴다. 괜찮아, 고개를 끄덕이자 맥박 위에 키스하듯 입술이 와닿았다. 이윽고 서늘한 감각이 손목의 얇은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아. 몇번 겪어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에 입에서 짧게 탄식이 새어나왔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통증 자체도, 체내의 혈액이 강제로 빨려나가는 기분은 낯설기만 했다. 차라리 아프기만 한 거라면 괜찮겠는데 이상하게 묘한 기분이, 들어서. 아픔 속에 섞인 미묘한 감각에 구두 속에 갇힌 발끝이 오그라들었다. 그저 피 좀 빨리는 것 뿐인데, 왜? 마치 상대에게 매달려서 애원하게 될 것만 같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만하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이를 악물고 충동을 이겨내는 것도 잠시 카이우스가 떨어져나갔다. 제3자가 보았다면 방금까지 뭘 했는지 알아채지 못할 만큼 입가는 깔끔했다.
"매번 표정 귀엽네."
"그 와중에 보고 있었어?!"
"보이니까. 그리고 원래 그런 거니까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
"그, 그러니까 뭐가?"
"피 빨릴 때 느끼는 거."
"뭐, 뭘 느껴……?"
순간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 같은 기분이 엄습했다. 뭐가 어쨌다고? 제가 미리 말하지 않았냐는 듯이 카이우스가 눈을 깜박였다.
"가끔씩 인간들은 그걸로도 느끼는 경우가 있는 것 같더라고."
"너 그걸 이제서야 말하면 어떡해?!"
"그야 네 표정이 귀여우니까."
"그렇다고 지금까지 안 알려줬다는 게 말이 돼? 이제까지 몇번씩이나…!!"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뺨이 확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지만 가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런 건 좀더 일찍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거였다면 처음부터 허락도 안 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상대에게 그런 욕구를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거라느니 해서 마음이 약해지는 바람에 처음 수락했었고, 이후 가끔씩 단발성으로 허락했던 건데. 자신이 더 화낼 거라고 생각했는지 카이우스가 눈치를 보는 듯 몇마디 더 덧붙였다.
"미리 말 안해준 건 미안해. 그리고 전에 지중해 가보고싶다며, 밖에 전용기 불러놨는데… 이건 거절 안 할 거지?"
"저것들은 다 어떻게 하고."
"우리 돌아올 때까지 보관해놓으라고 할게. 그래도 한번씩 열어보기는 해줘."
자신이 상자 딱 하나만 열어본 게 마음에 걸리는지 상대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저번 성탄 때처럼 다 합하면 작은 성 하나는 사고도 남을 값어치일까봐 조금 겁나긴 하지만…… 알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닿는 곳에 놓여있던 붉고 푸른 수국꽃다발을 집어들었다. 이건 같이 가져갈까. 수국의 꽃말은 진심과 변덕이라던데, 새삼 선물해준 상대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변덕스럽지만 항상 내게 진심인 황금빛 눈동자의 연인. 좋든 싫든 내가 선택한 짝이고, 언젠가는 나 역시 너와 같이 되겠지. 싸늘한 체온과 영롱한 금안, 더이상 심장이 뛰지 않는 채로 영겁을 살아갈 불멸의 존재가. 언젠가 그의 경제관념에 익숙해질 날도 올까, 그것만은 별로 닮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차피 먼 훗날의 일이었고 지금은 그냥 제게 주어진 유예기간을 만끽하는 걸로 만족하고 싶었다. 스케일은 많이 당황스럽지만 카이우스 본인에게도 몇천년동안 아무 의미 없었을 -최소한 그가 인간일 때는 없었을 날이니까- 인간들의 기념일을 챙겨준 것도 기특하고. 전에 흘리듯 지중해 연안 쪽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던 걸 용케 기억했다는 것 역시.
"아무튼 해피 발렌타인. 챙겨준 건 고마워."
"──해피 발렌타인."
사실 이렇게 누군가와 어떤 날을 기념하며 같이 보낸다는 기분 자체가 낯설었다. 아마 카이우스가 없었다면 평생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혈액 외의 일반적인 음식물들은 일절 입에 안 댄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날이 날인만큼 가는 길에 초콜릿이라도 한번 먹여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알버스는 상대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17년간을 통틀어 가장 요란한 발렌타인 데이의 시작이었다.
한 편당 대략 12000-15000자 정도 분량 잡을 예정인데 얼마나 편수가 늘어질지는 미정.
영생에 가까운 뱀파이어의 삶은 길고 무료했다. 몇백년, 몇천년의 밤을 지새우다 보면 본디 가지고 있었던 감각의 역치는 조금씩 무뎌져 가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수면을 취하지 않았고 인간의 혈액을 제외한 음식물의 섭취는 실질적으로 필요하지 않았기에, 인간일 때 존재했던 기본적인 욕구들은 대개 흡혈에 대한 욕구 하나로 수렴되어버리고는 했다. 인간 시절 존재했던 기본적인 욕구의 소멸은 인간성 자체가 마멸(磨滅)되어간다는 징조이기도 했다. 고작 백여년을 사는 필멸자와 불로불사를 누리는 불멸자의 희로애락의 기준은 철저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법. 그렇기에 뱀파이어의 삶에 있어서 오락은 꽤나 중요한 요소였다.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서, 흐르는 세월에 그 이성마저 마모되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런 점에 있어서 카이우스가 택한 오락은 가장 과격하고 강렬한 것이었다. 처벌과 고문, 그리고 처형. 비록 뱀파이어가 되며 개화하게 된다는 개인의 특수능력은 끝내 발현하지 않았고, 그것은 내내 마음 한켠의 응어리였으나 그에게는 몇천년간 쌓아올린 볼투리의 막대한 권력과 부가 있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뱀파이어라고 한들 인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어찌되었든 카이우스는 볼투리 가문의 공동수장 중 하나였고, 뱀파이어 세계의 왕족이나 다름 없었다. 그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자들은 오직 그의 형제들 뿐이었다. 아로와 마르쿠스, 몇천년간 함께 살아왔기에 거의 피붙이에 가까운.
카이우스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부재를 인식하지 않고 넘겨버렸는가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무리 차고 넘치는 권력과 황금이 발 아래 있어도 그 부재만은 결코 채울 수 없는 갈증이었다. 그는 아로처럼 피부 접촉을 통해 마음과 기억을 읽을 수 없었고 마르쿠스처럼 타인들의 관계를 읽어낼 수도 없었다. 형제들은 카이우스의 결핍에 대해 단 한번도 언급한 적 없었으나 그것은 잊고 넘길래야 잊어버릴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게다가 아로는 능력이 있는 자들을 매우 사랑했다.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 속해있는 클랜의 꼬투리를 잡아 파괴하고 그들을 볼투리의 휘하로 데려오는 것이 아로가 택한 여흥이자 오락이었던 것이다. 능력이 있는 자를 아끼는 형제와, 세 수장들 중에서 유일하게 홀로 개인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신. 아무도 감히 면전에서 카이우스의 부족함을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그에 대한 스트레스는 죄인에 대한 더 잔인한 처벌과 가혹함으로 이어졌다. 그는 무소불위의 권위와 부귀영화를 쥐고 있으면서도 항상 억눌린 분노를 떨쳐내지 못했다. 능력을 소유하지 못한 자신과, 그런 자신을 타인이 얕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나를 우러러 보게 할 수 없다면 최소한 두려워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 카이우스는 매번 그렇게 생각했다. 가혹한 처벌은 아주 동물적인 수단이었고 주위의 복종과 공포심을 끌어내기에는 충분했다. 로마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항상. 그는 그렇게 자신만의 유희를 즐기며 세 수장들 중에서 가장 잔학해졌고, 또 가장 교활해졌다. 몇천년 가까이 그러한 삶의 방식이 반복되었지만 생각보다 질리지 않는 여흥이었다. 하지만 그런 류의 말초적인 오락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언제나 단조로웠다. 심지어 카이우스는 몇천년을 살아가면서도 반려 또한 맞이하지 않았다. 배우자로 삼을 만큼 매력을 느끼는 인물을 만나지 못하기도 한데다 굳이 반려를 찾고싶지는 않았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반려가 능력이 있어도, 없어도 둘다 기분이 오묘할 것 같았으니까.
그렇기에 매일 반복되던 그의 일상에 일어난 작은 이변은 몹시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탈출이라고요?"
"그렇단다, 형제여.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지……"
아로의 목소리는 언제나와 같이 실크처럼 매끄러웠으나 형제를 오래 알아온 카이우스는 지금 아로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나 소식을 듣자마자 그에게 엄습한 감정은 불쾌감이나 분노가 아니었다. 신기함과 호기심. 원래 볼투리 가는 피를 마시기 위해 일개 클랜처럼 일일이 사냥을 하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 제물이 될 인간들을 유인하여 볼테라로 이송해오는 것은 꽤나 오래된 전통이었다. 그들의 식사는 언제나 안전하고 신속하며 편리했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볼테라까지 이송되어온 제물들 중 한명이 탈출했다고 했다. 한낱 인간인 주제에 볼투리 가의 호위병들마저 모두 따돌리고, 그 포위를 뚫은 채 달아났다고. 그런 게 가능한 거였나? 갑작스레 일어난 호기심을 굳이 숨기지 않으며 카이우스는 느슨하게 다리를 꼬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아로?"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지요,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하이디의 말로는 어린 소년이었다고 하던데, 평범한 인간같지는 않았다고…… 마치 우리들처럼 희한한 능력을 쓰며 탈출했다고 하지 뭡니까!"
"호오, 애초에 인간이 맞긴 한건가요? 실수로 다른 일족 중 하나가 우연히 끼어들어간 건?"
평소 과묵한 성정의 마르쿠스마저 이 놀라운 소식에 관심이 생기는지 앉아있던 의자에서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러나 아로는 우아하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것은 절대 아니라는군요. 확실히 인간 소년이었답니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저희의 영지이자 왕국인 이 볼테라에서……?"
"그게 문제란 거란다, 내 어여쁜 형제여.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했던 것인지──"
아로의 반듯한 미간이 서서히 좁혀졌다. 볼투리 가가 군림하는 천년왕국이나 다름없는 이 볼테라에서, 그것도 먹이로 끌고 온 인간이 도망쳤다. 이것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서 알려지게 된다면 볼투리의 권위 자체에 금이 갈 수 있는 사건이었기에. 침묵하는 마르쿠스와 명백히 언짢은 기색의 아로와 다르게 카이우스가 느낀 것은 다른 감각이었다. 인간이 혼자 이 볼테라에서 도주했다고. 그것도 우리와 비슷해보이는 능력을 발휘하여. 몇천년간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이변이었다. 볼테라는 일종의 식충식물의 덫과도 같았고 이제껏 제물로 낙인찍힌 자들 중 살아서 돌아간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이 어찌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니란 말인가.
"아로, 대체 어떤 자이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미 추적대를 보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제대로 알아본 후 결정해야겠지……"
어떻게 죽일지. 딱히 덧붙이지 않았는데도 형제의 속내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아마 그땐 용케 살아 도망쳤을지 몰라도 이번에는 확실히 죽일 것이다. 고문과 처벌에 도가 튼 카이우스 만큼은 아니어도, 아로 역시 몇천년간 볼투리의 정점으로 군림해온 절대군주였다. 아로 특유의 냉혹함을 카이우스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궁금한걸. 무려 사자 아가리와도 같은 이 볼테라에서 도망친 상대였다. 난데없이 그 얼굴이 알고싶어졌다. 그렇기에 그가 내뱉은 말은 거의 충동적인 변덕에 가까웠다.
카이우스는 보통 성에서 잘 나가지 않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필멸자들을 경멸했고, 외부에서 같은 인간인 척 위장하며 인간들과 섞이는 행위를 썩 내켜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이렇게 그가 자발적으로 나서는 모습에 두 형제는 꽤나 의외라는 눈치였다. 잠시 옆에 앉아있던 마르쿠스와 시선을 교환하던 것도 잠시, 아로가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안될거야 없지."
"감사합니다. 아로."
허락은 떨어졌다. 정말 간만의 외출이로군. 카이우스는 생각했다.
뱀파이어들의 능력은 아직 '살아있었을 때', 즉 인간이었을 때의 경험과 연관되어 발현된다고 한다. 화형당해 죽어가던 알렉이 그 고통을 차단하고 싶다는 염원을 품었기에 현재의 능력을 가지게 된 것처럼. 그렇기에 각자 발현되는 능력 역시 상이했다. 한번 점찍어둔 표적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 역시 이미 가문 안에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영국, 영국이라. 영국의 고드릭 골짜기…에 있는 것 같다고. 지구 반대편까지 달아났나 싶었더니 생각처럼 그렇게 멀리 도망가지는 않았다. 아마 쫓아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거겠지만. 거의 청동기 시대부터 쭉 축적해온 볼투리의 재력은 무시무시했고, 전용기 한두대 띄우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용기에 몸을 실은 채 카이우스는 잠자코 창밖을 내다보았다. 추적능력을 지닌 경호원은 그저 상대의 위치만을 말했을 뿐, 정확한 생김새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찾아야 하나. 하이디의 보고대로라면 소년이고, 적갈색에 가까운 머리칼이었다는 것밖에 단서가 없던데. 일단 제가 나서서 자원하기는 했지만 새삼 막막해지는 기분이 엄습했다. 그런 단편적인 정보밖에 없다니 찾아내는 것 자체도 생각처럼 쉬울 것 같진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카이우스 님. 정말 혼자서 가시겠습니까?"
"몇번을 말하게 하는 거지? 나는 되풀이하게 하는 자를 싫어한다."
비행 자체는 몇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도착해서 막 내리기 전 조심스레 저를 붙잡았던 조종석의 경호원이 하지만,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설마 경호가 없다면 내가 내 몸 하나정도 못 지킬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일개 인간 하나한테서? 치밀어오르는 모욕감과 분노를 억지로 가라앉히며 카이우스는 지면에 발을 디뎠다. 만약 제인이 지금 자신의 곁에 있었다면 당장 제 앞의 경호원을 고문하라고 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인은 저 멀리 볼테라에 있었고 그는 고드릭 골짜기라는 낯선 지역에 있었으며, 당장 이 자를 죽여버리면 돌아갈 때 새로운 자를 불러오도록 요청하는 것도 귀찮아진다. 형제들이 거기까지 가서 성격을 못 죽였냐며 한소리할지도 모르고. 제 불쾌함을 느꼈는지 새파랗게 질린 경호원을 무시한 채 카이우스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사냥의 시작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알버스가 택한 것은 세계 여행이었다. 유럽에서부터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장장 1년이 넘는 긴 여행계획이었다. 그동안 그는 학교 내외에서 우수하고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 여행은 7년간 치열하게 달려오기만 했던 자신에게 주는 일종의 휴식이자 선물과도 같았다. 어차피 취직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능력과 성적, 재능이라면 그 어떤 직장이라도 그를 환영해 마지않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무엇보다 조금은 쉬고싶었고 학교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보고싶었다. 여행의 파트너는 신입생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도지였고 그들이 제일 먼저 들리기로 한 나라는 이탈리아였다. 시칠리아 섬에서부터 나폴리, 폼페이, 로마. 그리고 문제의 그 일이 벌어진 것은 그들이 토스카나 주의 볼테라에 들렸을 때였다. 잠깐 도지와 떨어졌던 사이 그는 거대한 인파에 휩쓸렸고, 군중에 섞여 볼테라의 중심부에 위치해있던 고성의 입구로 밀려들어갔다. 그리고 곧 생지옥이 시작되었다. 비명과 애걸이 난무하고 마치 갇힌 닭떼들처럼 갈팡질팡하는 인파 사이에 끼여서 알버스는 탈출을 감행했다. 머글들이 주위에 있을 때는 마법을 쓰지않는다는 건 기본적인 원칙이었으나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라면 마법부 장관이 온대도 이해해줄 것이다. 대체 뭐였지? 그 자들은? 마치 양떼를 몰아 도축장으로 몰아넣는 사냥개들과 같았던 능숙한 태도. 번제의 제물을 간택하는 것마냥 익숙해보이는 모습들이었다. 도지와 간신히 조우하고나서도 그 의문점은 알버스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그는 결국 양해를 구한 후 여행을 중단하고 귀가했다.
뭐였을까, 그 광경들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출구를 봉쇄한 후…… 마치 사냥같기도 했고 도살같기도 했다. 뱀파이어. 그동안 뇌리를 맴돌던 단어를 알버스는 천천히 혀끝으로 발음했다. 뱀파이어는 존재한다. 이미 호그와트에서의 7년간의 정규 교육을 통해 여러 유사인류의 존재는 익히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일종의 둥지를 틀고 그 곳으로 먹잇감을 유혹하여 끌어들이는 뱀파이어 무리에 대한 이야기는 생전 듣도 보도 못했다. 뱀파이어들은 본래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개체였다. 소규모의 클랜을 형성하여 유사 가족집단에 소속된 채 살아가거나 홀로 외로운 늑대처럼 살아가는 개체가 대다수라고 배웠건만, 자신이 볼테라에서 봤던 풍경은 차라리 왕국과 그 군대에 가까웠다. 자신의 영지에서 절대자로 군림하는 중세 군주의 모습이 그러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순간 창가에서 느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자신의 방이 2층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반박자 늦은 이후였다.
"……?"
찰나 알버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닫힌 창문을 두드리고 있는 상대는 이 근방에서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얼굴이었다. 깔끔하게 뒤로 빗어넘긴 금발이 달빛을 머금고 반짝였다. 소년인지 소녀인지 미묘하게 구분하기 힘든 선이 가느다란 이목구비는 앳된 인상이었으나 쉬이 연령대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10대처럼 보이기도 했고, 20대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순간적으로 셀 수 없이 나이가 많은 노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홍옥처럼 새빨간 눈동자가 유리창 너머로 뚫어져라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선명한 빛깔의 핏빛 눈동자, 그때 볼테라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Ciao."
예쁘장한 외모 탓에 구분하기 힘들었던 상대의 성별을 알버스는 그 목소리를 통해 겨우 구분했다. 목소리 톤은 소년처럼 낮았다. 그리고 저 이질적인 분위기와 피처럼 붉은 홍채.
"뱀파이어구나, 당신."
낮은 속삭임과도 같았으나 용케 알아들었는지 창가의 상대가 입꼬리를 느슨하게 끌어올렸다.
"정답. 그러니 창문 좀 열어주겠어?"
뱀파이어는 집주인의 초대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의 집 안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였던가? 그저 머글들의 미신이고 오래된 전설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이었던 모양이었다. 뱀파이어의 완력이라면 저 얇은 유리창 정도는 쉽게 깨부수고 들어올 수 있을텐데 굳이 제게 요청하는 걸 보면. 상대의 매혹적인 외모와 목소리는 한껏 독을 품고 핀 꽃처럼 유혹적이었으나 알버스는 고개를 저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 동네에 뱀파이어가 살고있다는 말은 십여년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굳이 여기까지 나타난 걸 보면 이유는 뻔하잖아. 뒷덜미에 식은땀이 흘렀다. 내 지팡이가, 아까 어디쯤에 놨었지. 등 뒤로 뻗은 손이 지팡이를 찾아 미친듯이 책상 위를 더듬었다.
"싫어. 설마 복수하러 온거야? 내가 거기서 도망쳐서?"
"설마. 반은 맞고 반은 틀려. 우리는 자비롭지 않으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는 너그러우니까."
"무슨 소리야……?"
"궁금했을텐데 알려주러 온 셈 치지. 네가 도망친 볼테라는 우리 볼투리 가문이 다스리는 영지다. 마침 운나쁘게 제물들 틈 사이로 딸려들어간 모양이더군."
볼투리? 영지? 제물? 혼란스러운 가운데 낯선 단어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니까 내가 재수없게 뱀파이어들의 한끼 식사로 낙점된 인파들 사이에 끼어들어가서 험한 꼴을 당했다 이거란 말인가. 겨우 책상 어딘가에서 찾아낸 지팡이를 움켜쥐며 알버스는 생각했다. 인간이 육식을 하는 것처럼 뱀파이어가 인간의 피를 마시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순리라고 생각한다. 생물로서의 본능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그런 방식으로. 인간 역시 공장식 축산산업을 운용하는 것 역시 잘 알고있으면서 왠지 거부감이 들었다. 지팡이를 쥐고 있던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그저 그 장소를 탈출하는 것으로 끝난 악몽이라고 생각했건만, 저를 쫓아온 편린이 창가에서 질 나쁜 꿈처럼 미소했다.
"…볼투리는 대체 뭐야? 당신 가문의 이름인가?"
"우리의, 그리고 나의 가문 이름이지."
그러니까 창문 좀 열어줘.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흡혈귀가 다시 한번 유리창을 두드렸다. 그 눈웃음에 홀려 몇발짝 창가로 다가갔던 것도 잠시 알버스는 심호흡을 하고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고작 투명한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둔 상대를 겨냥한 채 그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콘프링고."
거한 폭발이 일어났다. 창유리 뿐만 아니라 창틀이 통째로 날아갔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뭐 나중에 수리하면 될 것이다. 집을 부숴먹었다면서 남동생이 어지간히 잔소리를 하기는 하겠지만. 당연지사 상대 역시 창문과 같이 나가떨어져 있었다. 정말 인간이 아닌 게 맞긴 한건지, 난데없는 폭발에 휘말려 비틀거리면서도 용케 지면에 착지하는 모습이 고양이과 맹수처럼 날렵했다. 그 정도 폭발이면 어디 한군데 생채기 하나쯤은 났음직한데 여전히 설화석고처럼 매끄러운 안면을 보며 알버스는 새삼 생각했다. 진짜 뱀파이어가 맞나보구나.
"뭐야, 방금 그건?"
너 인간이 맞기는 한건가? 방금 전과 다르게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경계심이 섞여있었다.
"나는 마법사니까."
"마법사?"
치켜올린 지팡이를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으며 알버스는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금발 흡혈귀의 앳된 낯 위로 미묘한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마법이라, 그래서…… 볼테라에서 달아날 수 있었던 거였군. 그런 방법으로. 언젠가 들은 적 있지, 인간이면서 우리와 비슷한 능력을 사용하는 부류가 있다고…"
"……"
"그럼 그 지팡이만 없으면 되는 건가?"
미처 놀랄 새도 없이 상대의 모습이 알버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릴 새도 없이 체온이 낮은 손이 바이스처럼 제 손목을 낚아챘다. 어떻게? 바로 코앞에서 오만하게 웃고있는 얼굴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아름다웠고, 현실감이 없었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같은 속도였다. 그에 놀라기도 전 뼈를 부러뜨릴 것 같은 무시무시한 악력에 둔중한 고통이 엄습했다. 귀여운 장난감이네. 이것만 꺾어버리면 더이상 날뛰지 못하게 되는건가? 길고 매끄러운 손가락이 제가 쥐고 있는 지팡이로 향하는 순간 알버스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프로테고!"
무형의 방패가 순식간에 상대방을 밀쳐냈다. 자유의 몸이 되기 무섭게 그는 빠르게 연이어 주문을 읊조렸다. 임모바러스. 소녀와도 같은 외모의 뱀파이어가 그 자리에서 움직임의 자유를 박탈당한 듯 정지했다. 자신이 조금 헐떡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은 그때가 되어서였다. 지팡이를 고쳐쥔 채 몇발짝 다가가자 서로 눈이 마주쳤다. 찰나 인간의 눈동자 뒤로 짙게 드리워진 맹수의 그림자를 엿본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난 더이상 너희와 엮이고 싶지 않아. 고작 너희 식탁에서 벗어난 게 여기까지 쫓아올 만큼 자존심상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돌아가서 전해. 더이상 서로 관여하지 말자고."
다시는 내가 너희의 도시 근처에 발을 디딜 일은 없을 거야. 알버스는 또박또박 덧붙였다. 세상에 뱀파이어가 존재하며, 왕국과도 같은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살아가는 조직적인 클랜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에 대한 교습료치고는 많이 비쌌다.
어쨌든 이제 더이상 엮일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순순히 말이 통했기만을 바라며 알버스는 뒤돌아섰다. 일단 이쪽의 의사를 전달해두긴 했지만 여기까지 집요하게 추적해온 상대방에게 쉽게 먹힐 것 같지는 않다는 불길한 감각이 엄습했다. 아무래도 당분간 집 근처에 보호마법이라도 시전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알버스의 예감이 현실화된 것은 만 하루도 되지 않아서의 일이었다.
"……?!"
똑똑똑.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부엉이가 편지를 가지고 돌아왔겠거니 별 생각 없이 창문가로 시선을 던졌으나 부엉이가 아니었다. 창백한 여름달 아래 푸르스름하게 물든 백금발과 어깨 위에서 흘러내린 검은 망토. 어제 제 창가에 깃들었던 소녀같은 용모의 뱀파이어가 다시 알버스의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다시 엮이지 말자고 했던 게 고작 어제 일인데! 굳은 표정으로 지팡이를 움켜쥔 채 벌떡 일어선 알버스를 향해 나이를 알 수 없는 상대가 입매를 느슨하게 휘어보였다.
"그때는 미안하게 됐군. 이번에는 그러려고 온 것이 아니다, 긴장하지 않아도 돼."
"뱀파이어 따위와 그러고싶지 않아. 돌아가."
"어제는 미안하게 됐다고 하지 않았나? 정식으로 소개할까. 나는 볼투리 가의 공동수장인 카이우스."
무려 수장이라고? 아무리 뱀파이어의 외모와 실제 나이는 상관없다지만 알버스는 일시적으로 당황했다. 게다가 겨우 그런 일로 수장급씩이나 되는 인물이 여기까지 방문했단 말인가. 상대방에게서 공격적인 기세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상대는 몇백년, 몇천년을 묵었을지 모르는 흡혈귀였고 결코 자신에게 우호적인 인물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어제 손목을 낚아채던 그 악력. 아직까지 시퍼렇게 멍자국이 남아있는 손목에 힐끗 시선을 떨어뜨렸다가 알버스는 방어적인 자세로 팔짱을 꼈다.
"더이상 하고 싶은 말은 없다고 했을 텐데."
"방금 사과했잖나?"
"사과했다고 뭐든지 해결되는 건 아니지."
지지 않고 받아치자 카이우스의 표정이 묘해졌다. 가문의 수장이면 거의 왕자님쯤 되는 건지, 평생 거절도 안 당해보고 살았나. 애초에 집안으로 들이지도 않긴 했지만, 알버스는 최후의 축객령을 내렸다.
"더이상 할 말 없으니 돌아가줘."
"…도도하네. 좋아. 그 일 때문에 왔던 건 맞지만 앞으로 더이상 널 귀찮게 할 일은 없을거다.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당연하게도 동화처럼 박쥐로 변해서 사라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카이우스의 모습이 순식간에 창가에서 사라졌다. 한여름밤의 환영이었던 것처럼. 돌아가라고는 했지만 이렇게 깔끔하게 돌아갈 줄은…… 알버스는 자신도 모르게 창가로 몇발짝 다가갔다. 창밖의 낯익은 풍경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 * *
"출발해."
"카이우스 님,"
"어서 출발하라고. 분명히 두번 말하는 걸 싫어한다고 말했을텐데?"
위협적으로 노려보며 짜증을 내자 그때서야 조종석에 앉아있었던 상대가 조종간을 잡았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긴장한 듯한 목소리를 듣고나서야 카이우스는 좌석에 몸을 기댔다. 원래라면 죽였어야 했는데. 그 애. 볼투리는 그들의 권위에 도전한 자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인간이든, 뱀파이어든. 그리고 카이우스는 누구보다 볼투리의 그러한 기조에 앞장서는 편이었다. 죄인을 고문하고 처형하는 것은 지난 수천년간 지겹도록 반복해왔다. 그런데 오늘은 왜? 그가 굳이 이 타국에까지 행차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볼테라에서 그들을 망신시키고 도망친 인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확인한 후 정말 위협적인 요소일 거 같으면 제거해야 하니까. 마법사라고 했었던가? 인간이면서 뱀파이어와 비슷한 능력을 사용하는 부류가 존재한다는 것은 일찍이 알고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강한 존재들인지는 몰랐었다. 이제까지 별로 마주칠 일이 없었으니까. 볼투리의 권역 내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바로 코앞에서 일어난 것이고, 공동수장으로서 그는 위신을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감히 볼투리 가문의 권위에 먹칠을 한 자는 즉결처형했어야했다. 그래야만 했는데──
왜 내가 죽이지 않았지? 카이우스는 신경질적으로 기내의 내장재를 노려보았다. 겨우 스무살도 안되어 보이는 어린애였다. 열다섯? 아니면 열넷? 수천년의 밤과 낮을 지새워온 카이우스에게는 하루살이와 비슷한 수준의 티끌같은 미물에 불과했다. 붉은기가 감돌던 머리카락 아래 침착하게 자신을 응시하던 벽안이 환영처럼 아른거렸다. 꽤나 앳되고 어린 용모였다. 직접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면 혼자서 볼테라를 탈출한 장본인이라고는 믿지 못했을 것이다. 죽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난데없이 폭발이 일어났을 때, 팔목을 틀어쥐고 그 지팡이를 꺾어버리려고 한 순간 강제로 밀려났을 때는 솔직히 약간 당황했었지만. 만약 우리의 혈족이었다면 꽤나 아로에게 예쁨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소년은 인간이었다. 무려 볼투리의 권세를 코앞에서 짓밟은 상대이고. 뒤늦게 형제들에게 뭐라고 보고해야할지 골이 아파왔다. 솔직하게 고드릭 골짜기까지 찾아가긴 했지만 돌아가라고 해서 순순히 돌아왔다고 할 수는 없는데. 그럼 거짓으로라도 죽였다고 해야하나? 그의 형제이자 대표수장인 아로의 능력은 피부접촉을 통한 마인드리딩이었고 거짓말은 어차피 통하지 않을 터였다. 어떻게 둘러대야 하나 고심하면서 카이우스는 나른하게 상체를 뒤로 기댔다. 이미 차갑게 굳어버린지 오래인 심장 한구석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끈질길만큼 사라지지 않았다. 그로서는 처음 느끼는 낯선 감정이었다. 소년을 죽이지 않은 자신에 대한 의아함도 아니었고, 돌아가서 무슨 소리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불편함도 아니었으며 감히 일개 인간에게 휘둘렸다는 분노도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이름도 알아오지 못했군. 정작 내 이름은 알려줬는데. 이름이 뭐였을까. 어째서 자신이 그런 것을 궁금해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으나 카이우스는 기꺼이 상념을 받아들이며 눈을 감았다.
-알라스테어, 만약 내가 나쁜 사람이 되면 용서하지 않을 건가요? -그럴리도 없겠지만 록산느 네가 나쁜 짓을 하게 된다면 화낼 거란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보다 더 몇배로 더 화내겠지. 넌 좋은 아이니까. -다행이다. 알라스테어한테 혼나는 거라면 괜찮아요.
언젠가의 기억을 되새겼다. 분명 그런 대화를 했었던 것만 같았다. 내가 나쁜 사람이 되면, 나쁜 짓을 하면 혼내준다고 했었죠?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경쾌하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늘어붙은 불순물과 핏자국이 구두 밑창에 찌걱찌걱 달라붙는다. 좁은 고문실 내부의 공기는 혼탁했다. 절망, 고통, 그리고 피를 비롯해서 인간의 신체가 쥐어짜낼 수 있는 모든 체액들이 반복해서 남겼던 흔적은 몇번 청소한다고 해서 쉬이 지워지지는 않으니까. 방 가운데 놓인 의자에 팔이 뒤로 꺾인 채 묶여있던 남자는 여전히 고개를 떨군 채였다. 아까 나가기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꽤나 값나가보이는, 그러나 지금은 피먼지로 얼룩지고 구겨진 수트가 현대판 기사의 갑옷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수트를 비롯하여 그가 몸에 지니고있었던 안경, 구두, 우산, 반지 등등의 소지품들 역시 보이는 그대로의 물건이 아니라는 것 역시. 어떻게 모르겠어요, 알라스테어? 나 역시 기사의 이름을 받았었던 몸인걸. 나는 랜슬롯, 그리고 당신은 퍼시벌.
"알라스테어. 나 다시 왔어요."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그 발치에 무릎을 꿇은 록시가 속삭였다. 눈 떠봐요. 대답 대신 한쪽 알이 부서져버린 안경이 남자의 콧대 위로 삐딱하게 흘러내렸다. 내가 알고있는 당신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항상 단정하고 깔끔한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헝클어진 머리에 망가진 안경을 쓰고 핏자국도 제대로 지우지 못한 모습이라니. 사랑하는 사람의 낯선 모습에 새삼 가슴이 뛰었다. 당장이라도 감겨있는 눈꺼풀에 입맞추고 싶었지만 록시는 치밀어오르는 충동을 꾹 참았다. 나의 신사님. 나의 기사.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이 나네요. 엄청 어릴 때였죠. 그땐 당신이 내게 자장가를 불러줬었는데."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괜찮아요, 이제까지 당신도 나를 기다려줬으니까 나도 당신을 몇분 더 기다리는 것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어렸을 때부터 당신을 좋아했다. 항상 각잡힌 수트와 안경 너머의 진중한 눈동자, 브로그 없는 옥스포드. 당신이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을 보고 싶었고, 당신의 옆에 동등하게 서고 싶었다. 처음 당신이 날 후보생으로 추천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그나마 처음으로 인정받은 거 같아서. 언제나 알라스테어는 저 멀리에 있고 나는 그 뒤를 간신히 쫓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팔을 뻗어 퍼시벌의 뺨에 손을 댔다. 피부에 와닿는 감촉은 싸늘했다. 언제까지 일어나지 않는걸까, 당신은. 마치 가시나무숲에 갇혀서 잠에 빠진 왕녀의 침상 앞에 선 용사가 된 기분이었다. 키스하면 눈을 떠줄까? 이제 오직 나만을 바라봐줄 수 있나요?
"더 일찍 알았어야 했어요. 당신의 동료가 된다고해서, 당신을 내 곁에 잡아둘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오래된 전설 속 기사들의 이름을 코드네임으로 지닌 요원들은 혼자, 혹은 2인1조로 위험한 임무에 파견되었으며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 심지어 누가 사망해도 그 추모주를 마시기 위해 화상으로 모이는 판이었으니. 기껏 당신과 함께 있기 위해서 이 자리까지 왔는데. 만약 당신을 잃기라도 한다면. 퍼시벌은 우수한 기사였지만 가장 최고의 요원이라던 구 갤러해드- 현 아서 역시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죽을 뻔 하지 않았던가? 몇번의 소소한 사고를 거치면서 불안과 애욕은 점점 증폭되었고, 총명했던 뇌를 빠르게 잠식해갔다. 고결한 기사의 이름을 지닌 채, 제가 수호해야할 가치관과 반대되는 무리와 손을 잡기까지 했으나 후회하지 않았다. 내겐 알라스테어만 있으면 되니까. 애초에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그 모든 과정을 통과했던 게 아니었어, 다름아닌 당신을 위해서였지. 당신이 영원히 나를 용서하지 않게 된다고 해도 당신을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낫다. 화를 내도, 혼낸다고 해도 괜찮아요. 이번만큼은 그냥 나쁜 아이로 남을래요. 그동안 당신의 착한 소녀였으니까 한번 정도는 용서해 줄 거죠? 일어나지 않는 자신의 기사가 눈을 뜨기를 기다리며 록시는 나지막히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Rock-a-bye baby, On the tree top, When the wind blows, The cradle will rock.